'미스고플라워즈' 플로리스트
나는 제주의 서쪽 애월에서 꽃, 그리고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갖가지 소재들을 찾아다니며 살아가는 ‘미스고플라워즈’의 플로리스트, 고은혜다.
내 일상은 자연의 흐름을 따라다닌다. 계절이, 또 날씨가 가져다주는 수많은 것들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자연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내 주요 업무는 웨딩 이벤트나 공간의 플로럴 디렉팅, 그리고 플라워 클래스의 진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올해부터는 팝업스토어를 하루 3시간씩 운영하고 있는데, 자연 소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제주에서 여행의 설렘을 발견할 수 있는 아이템을 디자인하고자 한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은 작업실 옆 꽃밭을 가꾸며 보낸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 조금이라도 짬이 날 때마다 꽃밭으로 들어가 잡초 정리를 한다. 특히 비가 온 다음날은 어김없이 밭으로 향한다. 손도 많이 가고, 아기를 다루듯 온 신경이 항상 꽃밭에 가 있어 가끔 일이 고되다는 느낌도 받지만 언제든 꽃밭으로 달려가는 일이 행복하다. 꽃밭에서의 이 단순한 노동은 ‘자연의 변화’와 ‘알맞은 때’라는 것을 내게 알려준다.
꽃의 얼굴만 알았던 이전까지의 나의 삶과는 다르게 이제는 모든 식물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그 끝을 점차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각 단계를 채우는 모든 순간순간들이 소중함을 깨닫는다. 꽃밭은 절화 시장에서는 쉽게 구하지 못하는 자생식물이나 야생화, 심지어 잡초의 아름다움도 발견할 수 있게 해 준다. 꽃밭은 플라워 클래스 때 바로 아름다운 풀들을 채집할 수 있는 나의 보물 창고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20대 초반 즈음일 것이다. 사촌 결혼식에 참석하러 제주에 왔는데, 동네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며 며칠 씩 열리는 결혼 잔치와 예식을 즐겁게 치르는 것을 목격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했고 또 보기도 좋았다. 그때 생각했다. “한 15년 뒤에 제주에 웨딩 베뉴를 만들겠다”고. 그때부터 나는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유럽에서 이벤트 플로리스트로 일을 했다. 우리나라처럼 시간에 쫓기는 결혼식장이 아닌 아름다운 정원이나 자연과 함께 머무르며 행복한 시간을 오랫동안 음미하는 유럽인의 삶을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한국에서 저렇게 근사한 장소를 디자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2013년에 귀국해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제주에서 ‘3달 살아보기’였다.
제주는 부모님의 고향이기도 하고, 친척들이 아직도 삶의 터전을 이루며 사는 곳이기에 생각보다 쉽게 다가설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동안의 시간을 지내보고, 또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일을 하던 중 드디어 결심이 섰다. 사실 내가 하는 일은 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달려가 장소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채워주는 일 아니던가. 제주로 가지 못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다시 찾은 제주, 그 사이 제주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어쩐지 제주의 시골 마을이 점점 도시처럼 변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조금 빨라진 제주에서 변하지 않은 것들을 찾아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옛 것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날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으며 천천히 제주에 스미는 삶을 시작했다. 그 느린 시간들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흐트러지면 흐트러진 대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내 꽃 작업에 담을 수 있도록 나를 성장시키는 듯했다.
제주의 삶은 들판에 아무렇게나 핀 작은 풀잎 하나하나를 엮어보며 새로운 소재를 돌아보게 만들고 변화무쌍한 날씨가 주는 고유의 냄새와 드라마틱한 하늘과 바다 모습은 일상의 모든 것이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매 순간 깊고 아름다운 여운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 차곡차곡 쌓여갔다. 제주에서 나는 봄에 산딸기를 채집한다. 조개를 캐서 파스타에 넣어 먹곤 한다. 여름에는 아침 일찍 바다수영을 나가고 곽지과물 노천탕에서 용천수를 맞는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면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날 수도 있다. 가을에는 억새밭을 거닐고, 겨울엔 눈으로 새하얘진 한라산에 올라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 못 해 감격하곤 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은 또 매해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찾아온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는 아름다운 새의 노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만 뜨고 한동안 그 소리를 듣는다. 비가 와도 우산은 잘 챙기지 않는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우산의 존재가 무색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살려면 날씨의 변덕을 받아들일 준비가 언제든 되어 있어야 한다.
육지 사람은 “제주 사람은 날이 안 좋으면 일을 멈추어 게으르다” 말하곤 하는데, 막상 살아보니 자연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적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불편하지만 불평하지 않는 삶, 인간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알게 되는 것 또한 축복이다. 그럴 때는 가만히 앉아 창 밖을 바라보거나 비를 맞으며 산책을 해도 좋다. 제주는 내게 어디를 가든 깊은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곳이자 소음이 들리지 않는 평화로운 그림책이다.
✈ 프로젝트 <나다운 진짜 제주>는 나답게 제주도를 경험하고 있는 제주 로컬 8인에게서 영감을 얻었어요. 마이리얼트립은 여행자가 제주에서 나다움을 실현하길 바라요. 소수만 알고 있는 제주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해 여행하려 해요. 우리가 소개할 가장 제주다운 동네, 작은 가게, 숨은 풍경이 여행자의 마음에 쏙 들었으면 좋겠어요. 훗날 마음에 담아둔 제주 곳곳에서 “나다운 진짜 여행”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시골에서 살면 아침 일찍 여유 있게 앉아 커피 한잔 마시고 싶지만 여의치가 많다. 우선 일찍 여는 카페가 없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카페 이시도르는 매우 이상적인 장소다. 카페 이시도르로 가는 길에 성 이시도르 목장에서 자유롭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말들과 소들의 아름다운 목가적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일상과 동떨어진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아침 9시에 카페가 문을 열기 전인 8시쯤 찾아와 주변을 한참 산책한다. 계절의 변화를 진하게 느낄 수 있고 새소리와 꽃 향기를 누리며 한참을 걸을 수도 있다. 즐거운 아침 산책, 커피 그리고 빵. 차분하고 고요한, 그리고 기분 좋은 아침을 열고 싶다면 아침 일찍 카페 이시도르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매일 09:00 ~ 17:30 (라스트 오더 16:30)
☎ 064-796-0677
‘곽지 Bar다’를 정말 행복하게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여름날 바다 수영 후 이곳에서 맥주 한잔, 혹은 비 오는 날 따뜻한 쌀국수와 짜조, 그리고 또 맥주 한잔. 이곳에 들어서면 우선 이국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분명 익숙한 바다인데 이곳의 창문은 제주의 바다를 머나먼 남쪽의 어느 섬나라로 만들어 준다.
만약 내가 술을 좀 더 잘 마시는 사람이라면 오랫동안 앉아서 더욱 진한 이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곳만이 지닌 어떤 공기가 특이한 낭만을 선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육지 친구들이 제주에 오면 나는 항상 이곳을 찾는다. 독창적인 맛의 새우 배추찜, 쌀국수 국물도 일품인데 가끔은 문어 샐러드를 포장해 바다 앞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먹기도 한다. (단 음식을 담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가야 한다.)
11:30 ~ 23:00 ┃ 목요일 휴무
☎ 010-2344-3929
♢ 곽지 해수욕장 정류장에서 도보로 5분
이곳은 한림에서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알게 된 장소다. 진열대에 깨끗한 얼음을 부어놓고 가지런히 생선을 진열한 모습이 왜 그런지 퍽 인상적이었고 기분이 좋았다. “이토록 심플하고도 멋진 디스플레이라니, 이토록 깨끗한 생선가게라니!” 작품처럼 놓인 생선들을 바라보자니 하나하나의 생김새와 무늬가 경이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과연 나는 그동안 내가 먹어 온 생선들의 모양을 제대로 알고 있다 말할 수 있는가? 외관만 멋진 것이 아니라 이곳의 생선은 맛도 품질도 좋아 어느새 내 최애 단골집이 되었다. 딱새우가 들어온 날에는 손질해서 회로도 먹고, 머리만 모아 라면이나 파스타에 넣어도 좋다. 매일 잡은 신선한 생선을 전시하기에 믿고 살 수 있는 이곳, 운이 좋으면 생물을 얻을 수 있을까 지나가는 길에 어김없이 들르곤 한다. 풍경도 좋지만 맛있는 음식이 있어야 삶이 더 즐거워지는 법이니까.
블로그: https://blog.naver.com/will629
☎ 064-796-0629
이곳은 나의 오래된 산책로이자 채집로이다. 주변이 개발되면서 아쉽게도 지나가는 차들이 좀 많아졌지만 아랫길은 아직 한적하고 아름다워 산책하기에 좋다. 봄과 여름이면 목초지의 풀들이, 가을과 겨울이면 억새들이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멀리 비양도도 한눈에 펼쳐져 있다. 근처 밭에서 콩을 재배하면 노랗게 물드는 콩잎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데 이게 또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나는 이곳에서 채집한 풀과 꽃들을 엮어 리스를 만들곤 한다. 화려한 꽃들도 좋지만 이렇게 들판에 아무렇게나 핀 무성한 꽃들과 풀들에게 나는 훨씬 더 애정이 간다. 늦봄에는 산책하다 들판 곳곳에 열린 산딸기를 따 먹곤 한다. 따가운 한낮만 아니라면 아침나절이나 해지기 직전에 아름다운 하늘과 땅을 만날 수 있는 나의 소중한 비밀의 화원이다.
♢ 평화로 방면 9.81파크 가기 직전 오른쪽 도로에서 첫 번째 골목, 9.81파크와 무병장수테마파크 사이
글: 고은혜
사진: 전신재
에디터: 지은경
제작: 마이리얼트립
✈ 마이리얼트립에서 나다운 진짜 제주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