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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링링 Nov 17. 2021

진짜, 너마저 이러기야?

당신의 기분은 얼마인가요?

'주문하신 상품의 배송이 완료되었습니다.'


일을 하고 있는데 전날 밤 온라인 마트에서 주문한 상품이 도착했다는 알림 메시지가 왔다. 한창 바빴던 때라 퇴근하고 마트에 식료품을 사러 갈 시간조차 없었던 나는 급하게 필요한 것들을 온라인 마트에서 종종 구매하곤 했다. 퇴근 후에 문 앞에 놓여있던 상품들을 옮기는데, 바나나 송이에서 바나나 한 개가 툭 떨어졌다. 이미 너무 익어서 껍질이 갈라지고 힘이 없어진 바나나는 살짝 힘을 줘도 낱개가 툭툭 떨어져 버다. 정신없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왔는데, 다 익어서 맛이 가기 직전인 바나나를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하아, 내가 좀 덜 바빴으면 싱싱한 바나나를 마트에서 직접 사 왔으려나.'



다행히도 고객센터가 운영하는 시간이라 상담원과 통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담당 직원은 교환이 진행되도록 처리하겠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지금은 해당 지점과 확인이 어려워서, 내일 확인하고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전화는 오지 않았다. 퇴근 후에 더 익어버린 바나나를 보전화가 오지 않았다는 게 떠올라서 다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된 다른 상담 직원에게 전날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하고, 다시 그 직원에게 내용을 전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신경 쓸 것도 많은데 바나나까지 말썽이란 말인가. 결국 그 다음날 전화가 왔을 때까지도 교환 처리는 진행조차 되지 않았고, 바나나는 익을 대로 다 익어서 초파리가 꼬이고 있었다. (지금은 시스템이 개선되어, 받은 상품에 문제가 있으면 사진으로 확인하고 바로 포인트로 환불을 해주더라. 굿.)



바나나 한 송이 교환을 받으려고  3일 동안 5번이 넘는 통화를 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워킹맘인 데다 일이 너무 바빠서 주말, 밤낮없이 일하던 때라 이미 스트레스가 가득했다. 퇴근하고 오면 점점 더 썩어가는 바나나를 보면서 나의 기분도 더 엉망이 되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삼천 원 정도 하는 바나나 때문에 3일이나 기분을 망쳤을까? 내 기분은 삼천 원짜리가 아닌데. 물론 적은 금액의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3일이나 내 기분을 망칠 만큼
중요한 일인가?



이후로는 어떤 신경 쓰이는 일이나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겼을 때, '이게 내 기분을 오랫동안 나쁘게 할 만큼 중요한 일인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일은 내 기분을 나쁘게 할 만큼,  또는 내 하루를 망칠 만큼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 아니더라. 고작 몇천 원 정도 때문에 생긴 일도 의외로 많다. 원래 사소한 걸로 기분 나쁜 게 더 오래가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잠시 생각해보면 어떨까? 내 기분은 얼마인지. 진짜 이 작은 일이 이렇게 내 기분을 망칠 정도로 가치가 있는지 말이다.  또 몇 천 원으로 기분 나쁜 것을 풀기 위해 더 많은 시발비용*이 드는 것도 이렇게 생각을 해봐야 하는 한 가지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아무렴 당신의 기분보다 바나나가 더 중요할까. 사소한 것으로 기분나쁜 일이 생겼을 때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의 기분은 얼마인가?


* 시발비용 관련 글 참고: 주변에 부쩍 물건이 많아졌다면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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