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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희 Oct 04. 2018

삯바느질

엄마와 나의 수공업 이야기

난 편집자이므로 내 업을 잘 설명하는 캐릭터는 방망이 깎는 노인이다그러다 회사 세울 즈음에는 회사에 의상실 가봉용 마네킹을 하나 세워둘까 하는 생각을 했다노인에서 재단사로 변신한 게 좀 생뚱맞긴 하지만부티끄를 지향한다는 의미에서많지 않은 책을 정성들여 잘 만든다는 뜻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 이를 닦으며 괜히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내가 꼬맨다는 표현을 가끔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앞뒤 문단이 갑자기 점프하거나 결론이 급커브일 때한두 마디를 넣거나 한두 문장을 넣거나 하여 읽을 때 얹히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이게 편집자로서 나의 꼬매기그러고 보니 편집자는 바느질을 잘해야 하는군.


순전히 의식의 흐름 따라 쓰는 것이니만큼이 생각은 전문 바느질꾼이었던 엄마에게로 흘렀다거즈 접기 같은 초보 알바부터 스웨터 뜨기 같은 약간 고급의 부업까지 가내수공업을 두루 거친 엄마는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동네 한복집에서 한복치마를 만들기 시작했다어떻게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장에게서 재단하는 것부터 배워가며 부업을 시작했다엄마 시집올 때 가져온 재봉틀은 그때부터 진가를 발휘해 나중에는 전기모터를 달고서 맹활약하다가전문가용 재봉틀이 들어오면서 명예롭게 은퇴했다


하여튼그때 엄마가 시작한 5폭 공단치마 단가는 2천원쯤이었다음식 빼곤 손으로 하는 모든 걸 잘하는 엄마는 일을 빨리 배웠던 모양이다어찌어찌 연이 닿아 마침내 예식용 한복을 전문으로 하는 동대문시장의 한복집 일을 하게 되었다그즈음 집 형편은 바닥을 쳤고, 2년에 50씩 100씩 낮춰 들어가던 전셋집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내가 중학생이었으니 엄마는 오빠들 대입을 몇 해 연속으로 치러내고 있었을 때다이래저래 엄마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을 시절이다

공단치마를 만들던 엄마는 전문공연자들만 가끔 만들어 입던 깨끼한복이 대중화되면서 깨끼치마 만드는 기술을 새로 배웠고, 5천원짜리 옷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가계를 반 책임지게 되었다

봄가을에는 결혼식 예복을겨울에는 명절옷을 만들고 여름 한 철만 한가한 시절이 4~5년쯤 이어졌던 것 같다한창때는 한 달에 버는 돈이 백만원을 넘기기도 했다5천원짜리로 백만원을 만들려면 200벌을 지어야 한다쉬는 날 없이 하루 7벌씩이다아버지가 다림질을 돕고내가 박음질과 배달을 도왔지만그때 엄마는 하루 3시간 이상을 못 잤다졸다가 가위질을 잘못한 적이 한 번밖에 없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아버지 일도 함께 잘되어서 그다음 이사할 때에는 내 방도 생겼다  


몇 년 전에 야근하고 집에 가던 길지하철 계단을 오르다 문득 

엄마는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 시절을 살면서 한 번도 짜증내거나 신세 한탄하는 엄마 모습을 본 적이 없다속상하면 이불 홑청을 뜯어다 북북 손빨래를 할 뿐이었다아버지가 말도 안 되는 어깃장을 부려서 엄마가 울던 날한복집 주인아줌마는 배달 온 나에게 

보살님 같은 늬 엄마가 웬일로 부루퉁하데?”

라며 의아해했다


보살님 같던 엄마는 요즘 불경 공부를 하고병원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초심으로 돌아가 거즈를 접는다!) 여전히 보살님 같은 삶이다

엄마를 닮아 음식 빼곤 손으로 만드는 온갖 것에 취미가 있는 나는하필 엄마를 어설피 닮아 글을 짓지는 못하고 꼬매기만 하고 있다하필 엄마를 덜 닮아 애들에게 화도 내고 신세한탄도 한다엄마를 전혀 안 닮아 귀찮아하고 게으르다대학 1학년 때합평회를 한다고 시를 지어오라 했을 때나는 글감을 열심히 찾는 대신 게으르게 엄마 이야기를 쓰며 제목을 한복이라 붙였다가 엄청 깨졌다사람들이 연상하는 한복과 별 상관없는 엄마의 고단한 노동만 담겨 있어서 공감이 덜 된다는 것이었다그런 이야기면 차라리 제목을 바꾸는 게 어떻냐 해서 또 한 번 게으르게 즉자적인 제목삯바느질을 붙였다

그걸 읽은 단골 술집 아저씨는 네 시가 젤 뭉클하더라고 품평했는데정작 나는 그날도 치마 몇 벌치를 술로 말아먹고 있었다엄마는 술을 입에도 못 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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