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의 맛>, <꽈배기의 멋>을 만들다가 내가 하게 된 것
앞의 글 <삯바느질>은 1년여 전, 그러니까 2017년 9월엔가에 쓴 글이다. 일 때문에 쓰는 글이나 페이스북에 끼적이는 글 말고 순전히 개인적인, 게다가 일기도 아닌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쓴 글은 졸업하고 처음이지 싶다.
소싯적에 책읽기를 좋아하고 일기도 빠뜨리지 않고 쓰면서도 창작에 대한 열의가 없었던 것은, 중고등학교 때 질투 날 만큼 글을 잘 쓰는 아이들이 언제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 쓸 욕심은 지레 접고, 그래도 미련이 남기도 하고 다른 적성도 모르겠고 하여, ‘잘 쓰지 못한다면 잘 읽기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전공을 정했더랬다.
그러고 대학에 갔더니 술이 들어가면 (더러 밥이 들어가면) 아웃풋처럼 미문을 토해내는 사람들이 단체로 있길래, 청소년기 나의 주제파악이 얼마나 현명했던가 스스로 칭찬하다가, 한편으로는 글 잘 쓰는 그들이 심지어 비평도 잘하기에, 나의 욕심이 여전히 작진 않았구나 하고 한숨을 쉬곤 했다. 그러나 마음을 아예 접지는 못하여, 박완서 선생님도 아이 키우다가 마흔에야 등단했다는 이야기를 바람결에 듣고는 큰 위안을 얻었더랬다. 그래, 20대에 글 쓸 엄두는 안 나지만, 박완서 선생님도 그렇게 늦게 시작하셨다 하니 언젠가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박완서 선생님도'가 아니라 '박완서 선생님이니' 가능했던 일이라고 여겼어야 마땅하지만, 여하튼 그 이야기는 겁먹고 게으른 나를 달래주기에 아주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런 자기합리화가 오래 갈 리 없다. 스물일곱 살 어느 날은 출근길부터 심란했다. '이렇게 살다가 글을 쓰게 될 날이 올까', 하는 훨씬 현실적인 푸념이 홍대역 1번 출구를 나오는 순간 들었던 것이다. 그날의 체념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서서히 일기를 포함해 뭘 쓴다는 건 내 일상에서 점점 멀어졌고, 두 아이 육아일기 이후 개인적인 글쓰기는 깔끔하게 사라졌다.
그러다 저렇게나마 글을 쓸 마음을 먹게 된 계기는, 순전히 최민석 작가의 <꽈배기의 맛> <꽈배기의 멋>을 편집했기 때문이다. ‘등단한 작가의 에세이를 편집하게 되다니!’ 하고 감개무량하기도 했지만, 내가 기대한 것은 진지한 인생성찰보다는 <베를린 일기>의 포복절도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키득거리면서 슬쩍슬쩍 오자 교정을 보고 있자니, 슬금슬금 글을 쓰고 싶어지더라는 것이다.
<꽈배기> 글을 읽다 보면 으레 웃음이 나지만, 사실 그 글들은 대개 글쓰기의 고단함과 성실함과 다짐에 관한 것이다. 복통 같은 글쓰기 욕망 때문에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된 그는, 누가 뭐라든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써서 올리는 철저한 마감인생을 지켜왔다.
청탁받지 않은 글을 매일같이 쓰는 전업작가라니. 자신이 애써 선택한 길이 고단하여 자조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는 안 하는 결이 느껴져서, 그런 글을 수십 편 내리 반복해 읽고 있자니, 어느새 나도 글을 써보고 싶어지더라는 것이다. 하긴, 책을 내거나 매체에 기고하는 사람이 아닌 절대다수의 글쓰기는 모두 마음에서 우러난 끼적거림, '청탁받지 않은 글쓰기'일 터다.
20년 가까이 글에 대한 마음을 접었던 나조차 읽어주지 않는 글쓰기에 한자락 끼어볼 생각을 하게 만들다니, 이게 글 쓰는 사람의 힘이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썼는데, 그게 엄마에 관한 글이라니, 역시 게으르다. 오랜만에 <꽈배기>를 다시 읽으며, 다시 추진력을 얻어볼까.
이야기가 잠시 엇나가는 것을 허용해주길 바란다. 사실 나는 인도에서 날아온 한 편지에서 “부디 억눌린 12억 인도인의 영혼을 위해 매주 한 편씩 희망이 담긴 글을 써주세요”라는 읍소에 가까운 산스크리트 어의 애원을 접한 후, 강한 책임감에 억눌려 매주 주한 인도 대사관의 번역 감수를 받아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시인 고은 선생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에세이를 쓰면 무병장수한다네!’라는 충고를 들어서 쓰는 것도 아니다. 사실상 전부라 해도 좋을 정도로 거의 모든 원고를 일체의 청탁 없이 쓰고 있다. 마감을 어기면 원고료가 깎이는 것도 아니지만 . 당연하다. 청탁이 없으므로, 애초에 원고료란 게 없다 . 스스로 정한 마감일이 다가오면, 이틀 전부터 소재에 허덕이며 벽에 머리를 쿵쿵 박고 있다. 이번에도 나의 뇌는 골머리를 썩여가며 소재를 고르고, 주제의 의미를 검토하고, 퇴고를 하는 손가락의 이 수고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둔탁한 뇌가 얻은 결론이란 고작, ‘청탁받지 않은 달리기의 목표 거리량을 채우는 것과 청탁받지 않은 원고의 마감을 지키는 것은 효율적인 방식은 아니란 것’뿐이다.
원고청탁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하자면, 단 한 번 “등단작과 비슷한 분위기로 80매 분량의 단편소설을 써주십시오”라는 구체적인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 그 요구에 맞춰 단편소설을 썼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퇴짜를 맞은 원고가 됐다. 그때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부탁을 받고 하는 일에는 삶의 색깔이 전혀 다른 영혼을 감동시킬 설득력이 부족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록음악을 크게 들은 것도, 수업시간 책상 밑에 소설을 숨겨 읽은 것도, 먼 곳까지 갈 배낭을 꾸려 삼등 열차에 몸을 구겨 넣은 것도, 시 구절을 메모장에 옮겨 적은 것도 아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청탁으로 얼어붙은 한강변을 달린 것도, 스스로 마감일을 정해 매주 글을 쓴 것도 아니다. 누군가가 ‘거. 참. 비효율적이군’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 설명할 수 없는 멍청함이 지난한 일상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꽈배기의 맛>, ‘청탁받지 않은 달리기’ 중
아울러 주최 측에 따라 다르겠지만, 먼 길을 찾아와준 독자들을 위해 조그마한 선물을 마련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 역시 한 독지가의 기부를 받아 선물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아, 여기서 잠깐 이 선물을 선정하게 된 역사적 맥락과 배경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 인류는 극심한 질병에 고통 받고 있고, 이 질병은 특히 저개발국가의 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있다. 때문에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이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니, 그날이 바로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그리하여 세계 에이즈의 날을 공교롭게 이틀 앞둔 나의 북 콘서트에는 익명의 독지가에 의해 콘돔 300개와 캔 커피 150개가 전달됐다. ‘어째서 캔 커피와 콘돔이란 말인가. 잠자리를 가지기 전에 일단 커피라도 한잔 하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란 말인가. 아니면 성급히 일을 처리하지 말고,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면서 콘돔에 구멍이라도 난 게 아닌가 꼼꼼히 살펴보란 말인가. 아니면 일을 잘 치르고 커피 한잔을 하란 말인가’ 따위의 질문이 수십 가지 떠올랐지만, 그보다 더한 고민이 있었으니, 그것은 ‘과연 관객의 반응이 어떠할까’였다.
<꽈배기의 멋>, ‘CD는 문학행사의 사은품으로 합당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