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 있는 엄마
마냥 아기 같았던 딸이 커감에 따라 가끔은 내가 딸한테 빈정이 상하는 날들이 있다. 가령, 애써서 만든 반찬을 젓가락 한번 안 댄다든지, 나랑 한 약속을 너무 쉽게 어긴다든지 할 때 말이다.
오늘이 또 그러한 날이었으니... 침대에서 같이 빈둥거리다가 아이 머리와 내 턱이 부딪쳤다. 순간 너무 아파서 인상이 팍 구겨져 버렸고 평소보다 조금 더 감정이 섞인 말들이 나갔다.
"엄마 아프니깐 '미안해'라고 얘기해"
평소 아이는 수줍음이 많고 표현이 서툴러서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안 해 나를 비롯한 주변인들로 하여금 걱정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 문제로 한바탕 걱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 대다가 겨우 나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아이의 대답 대신 짓는 굳은 얼굴에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진다.
분명 머리로는 '미안해'라고 해야 하는 상황을 잘 알고 있을 텐데 가장 편한 엄마 앞에서도 그 말을 못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조곤조곤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 조금 더 부드럽게 얘기해줬으면 좋았으려나? 하지만 토요일 하루 종일 집콕 독박 육아를 하고 육퇴를 코 앞에 둔 나는 아이의 반응에 쉽게 기분이 상해버렸고 아이에게 삐진 듯이 행동하는, 아이가 절대 닮지 말았으면 하는 모습을 또 보이고 말았다.
평소 같았으면 둘째를 재우고 설거지를 하는 내 옆에서 귀찮을 정도로 닦달을 했을 아이가 웬일인지 조용하다. 거실에 나와보니 토요일이라고 특별히 엄마와 둘이 거실에서 자는 날, 일명 파자마 파티 day를 미처 기다리지 못하고 잠들어 있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연인 사이에 여자가 삐지면 남자는 이유를 모른 채 도대체 이번에는 또 뭐 때문인지 답답해하곤 하는데, 엄마의 삐진(?) 모습에 눈치를 살피다가 지쳐 잠든 아이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과를 못 받아서 딸한테 빈정이 상한 나나 하루 종일 장난감 택배를 기다리느라 현관문을 10번도 넘게 열어보는 7살 아이나 수준이 비슷한 거 같기도 하다.
아이에게 빈정이 상하는 나의 심리는 아마도 기대치 때문인 거 같다.
7살 내 딸에 대한 나만의 기준 혹은 상대적인 기준을 세워놓고 그 수준에 도달해 주길 바라는 기대치.
그 기대치를 내려놓으면 나는 좀 더 쿨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사과는 잘 못해도 뒤끝은 없는 딸을 좀 본받아야겠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아직 준비가 덜 된 거라고.. 자신의 때가 되면 보란 듯이 나를 놀라게 해 줄 딸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