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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Oct 12. 2018

며느리의 일기장 1

나는 보태줄 돈이 없다

 그날은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평소엔 끼지 않던 귀걸이 목걸이 반지를 하고 거추장스러워 데이트 때에도 잘 입지 않던 원피스를 입었다.

미리 주문해 놓은 꽃다발을 찾은 후 남자친구와 함께 장을 봤다.


 그날은 좋은 식당에 가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남자친구 댁에서는 그냥 집에서 만나자 하셨다.

그래서 내 월급엔 어림없었지만 소고기와 버섯 등 나름대로 장을 본 후 지방에 있는 남자친구 집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 내내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머님 아버님께 오늘 우리가 중요한 말씀드리기 위해 방문한다고 말씀드려놨는지,

어머님 아버님께서 혹시 오늘 평소와 같이 우리와 약속을 잡고는 다른 분들과 술자리 약속을 잡은 건 아닌지 거듭 확인하는 대화였다.

남자친구는 걱정 말라고 하였고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더 주고받은 뒤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 집에 가고 싶었다.

내 눈앞 광경은 잠옷을 입고 있는 어른 두 분과 손님 그리고 각자 손에 든 맥주캔이었다.

남자친구는 화를 내며 차를 돌리려 했다.

나는 그런 남자친구를 붙잡고 그래도 어른들과 한 약속이니 내려서 인사라도 드리자고 말하였다.


 남자친구를 진정시키고 차에서 내려 어머님께 꽃다발을 선물했다.

뭐 이런 것까지 준비했냐며 오늘 무슨 날이냐며 묻는 표정엔 정이 없었다.

시큰둥 했다. 아마도 차 전면 유리에 비친 남자친구의 표정과 입모양을 보신 것 같았다.

어머님은 고기 먹자고 하지 않았냐며 얼른 차리자고 하셨다.

어머님과 함께 버섯을 다듬고 씻고 상을 차렸다.

초면인 손님과 함께 어머님 아버님과 그리고 남자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됐다.

불편했다.


 어머님은 식사 내내 할 말이 뭔지 얼른 말하라고 하셨다.

도무지 불편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손님이 말씀하셨다.

보나 마나 중요한 얘기 같은데 내가 있어서 할 수 있겠냐며 안에 들어가서 얘기를 하라 하셨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 옳은 말씀을 해주셨으니 감사해야 하나 싶었다.

시큰둥한 표정과 목소리로 어머님이 물으셨다.

할 말이 뭐냐고.


 남자친구는 굳은 표정으로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왔다고 말씀드렸다.

그 말에 어머님은 표정을 한층 더 굳히시며 "나는 보태줄 돈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서운함과 답답함 그리고 처음부터 치밀었던 불쾌함이 한 번에 몰려오는 것을 누르며 말씀드렸다.

"양쪽 어른들이 모두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니 저희가 스스로 마련해서 결혼하려고 합니다.

예단, 예물 생략하고 저희가 혼수도 마련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제서야 어머님의 표정이 나아지셨다.


 대충의 결혼 계획을 주고받고는 어머님께서 밥을 더 먹을 건지 물으셨다.

처음부터 밥은 먹히지 않았었다.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어른들의 식사는 빨리 끝날 것 같지 않아 화가 난 남자친구를 달래기 위해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하였다.

남자친구 댁은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에 위치해 있어 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체면이 서질 않는다며 미안해했다.

솔직히 내 속에서는 이 남자랑 한 결혼 약속은 취소하고 헤어져야 하나 싶었지만 일단은 상처를 받았을 이 남자를 달래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자친구를 어렵게 달래고 돌아왔을 때에는 모든 것의 흔적이 없었다.

이미 식사를 마치고 부모님이 정리 후에 다시 한 잔 하시러 가신 것이었다.

남자친구가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고 술자리 중이니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하였다.

서운했다. 어른이지만 예의 없는 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자친구 차를 타고 왔었는지 버스를 타고 집에 왔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화를 누르며 집에 도착해서는 울어버렸다.

눈물이 나왔다.

남자친구와 헤어져야 하나 고민을 해봤다. 그런데 이 남자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답답했다. 왜 그런 대접을 받고도 나는 이 남자를 포기하지 못하는지...

그동안 가족에게 남동생과 차별받고 돈으로 상처받았던 나는 줄곧 집에서 혼자라고 느꼈었다.

집에 와도 방 안에서 내 생활을 주로 했을 뿐 아빠와 말을 안 한진 오래되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내가 아프면 죽도 끓여주고 취미생활을 위해 모아놨던 돈을 건네주며 죽 먹고 나은 후에는 맛있는 거 먹고 오라고 하기도 하고 잠들 때까지 기다려주고 매일 나를 보러 와줬다.

그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고 나는 결론을 지었다.

이 남자만 보며 살자.


 후에 어쩌다 남자친구 여동생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내가 걸었다. 고민 끝에 그날 있었던 서운했던 상황들에 대해 나름의 의논이 하고 싶어서.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우리 엄마 원래 그런 사람인 거 모르고 결혼한다 했어? 우리 엄마 원래 그런 날 차려입을 옷도 없고 원래 집에선 잠옷만 입고 있어. 언니는 음식 먹고 치우지도 않고 갔다며. 그래서 나한테 이런 말하자고 전화한 거야? 듣고 싶은 말이 뭔데" 라는 대답뿐이었다.

듣고 싶은 말.... 나는 같은 여자로서 그냥 위로가 받고 싶었던 걸까?


 사실 남자친구의 여동생과 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다. 그리고 아가씨를 통해 남자친구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 웃으며 오빠를 소개해줬던 그 애는 이제 내 앞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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