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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Oct 14. 2018

며느리의 일기장 2

나는 내 며느리가 그러는 꼴 절대 못 본다

 상견례는 별게 아니었다.

상견례 후에 결혼식도 잘 치렀고 우리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명절을 맞았다.

첫 명절. 명절. 설날. 나는 긴장했다. 그리고 긴장은 내 바디 리듬을 무너뜨렸다.


 결혼을 하기 전 나는 직장에서 겪었던 스트레스로 수면장애를 앓게 되었다.

결혼 후에도 내 몸은 내 마음대로 깨지도, 자지도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첫 명절은 우리 집에서 보내자는 시어머니의 의견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을 사랑방으로 만들어야 했다.


 하루 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화장실 청소, 방 청소, 주방 정리, 냉장고 정리, 그릇 정리까지 마쳤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어머님이 오시기로 했지만 나는 그저 5시까지 시계만 보며 잠들기를 기다렸을 뿐이었다.


 결국 해가 뜨고 잠이 들었고, 나는 어설프게 잠든 후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남편이 날 일으키고 흔들어도 나는 몰랐다.

어머님이 오신 후 곧바로 난 잠에서 깨어 부랴부랴 음식을 준비했다.

시어머니는 내가 수면장애를 앓고 있고 그로 인해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지만 나를 탐탁지 않아 하셨다.


 첫 명절. 시작부터 너무 꼬였다.

떡국을 끓이고 그리고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전을 부치는 내내 아가씨는 본인은 시집가면 절대 명절 음식은 하지 않겠다며 이야기했다.

처음엔 그냥 넘겼다. 그런데 같은 얘기를 20번째쯤 들었을 때에는 화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때 시어머니도 요즘 이런 거 돈 주고 사지 누가 만드냐며 아가씨는 시집가면 하지 말고 사라고 하셨다.

열심히 허리를 부여잡고 전을 준비하는 내가 병신같이 느껴졌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시어머니께 이번은 첫 명절이니 기분 낼 겸 만들었다 생각하고 나도 다음부턴 돈 주고 사도되냐고 웃으며 물었다.

아가씨한테 웃으며 이런 것쯤은 돈 주고 사라던 시어머니는 반색을 하고는 "나는 내 며느리가 그러는 꼴 절대 못 본다."라고 말씀하셨다.


 두 사람의 말에 내가 전날부터 준비했던 하루가 무너져내렸다.

남편은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못하고 토끼 눈으로 가족들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최악은 그다음이었다.

시어머니께서 동네 분들을 모시고 우리 집에 오셔서 고스톱을 치셨다.


 나에겐 술 상을 내 오라 하셨다.

그중엔 나도, 시어머니도, 시아버지도, 남편도, 아가씨들도 모르는 초면이신 분도 계셨다.

생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내가 술 상을 차려야 한다니.

전날 잠을 자지 못해 정신이 몽롱했고 몸이 쑤셨다.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 물었고 그 모습을 본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께선 손님들을 모시고 나가셨다.


 나는 당황하였고 그 상황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시어머니께선 내가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나가신 것 같은데, 사실 불편하고 불쾌했다.

하지만 시어머니를 내쫓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그저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기독교 집 안에서 태어나 제사도 지내 본 적 없고 또한 술 상을 차려본 적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도움을 요청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내 말에 수긍했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감정과 당황스러움을 확인하고 서로의 마음을 보듬었다.


 나는 시어머님이 주변 사람을 좋아하시고 그렇기에 오지랖이 넓어 그분들을 명절에도 챙기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명절을 우리 집에서 보내는 대신 낯선 사람과 이웃은 초대하지 않고 이번 첫 명절만큼은 가족끼리 보내자고 약속했었다.

시어머니께서는 흔쾌히 응하셨고 철저히 그 약속을 어기셨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남편도 시어머니의 불찰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없는 자리에서 시어머니를 찾아가 한바탕하고 온 것 같았다.

앞으로의 수많은 명절에 분명히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앞으로 명절에 나는 절대 바보같이 명절 음식을 준비하지 않을 것이며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을 때에 남편이 가만히 당황한 모습만 보인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남편은 내 말에 동의하고 사과했으며, 그날의 상황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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