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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Oct 19. 2018

며느리의 일기장 13

걔 표정이 좋지는 않더라 2

 다 같이 모여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아가씨의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되어있었다.

아마도 시어머니께 여러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상해서 눈물을 흘렸던 모양이다.

나는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그동안 내가 힘들고 서운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시아버지께서는 아가씨에게 "네가 잘못했으니까 언니한테 사과해라."라고 말씀하셨다.


 나에게 사과하라는 말씀을 듣고 아가씨는 조금 억울해 보이기는 했으나 곧바로 사과를 했다.

사과를 받아준다고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싶었지만 이 상황을 마무리해야 했다.

아가씨의 사과를 받고 분위기가 정리된 후 우리는 결혼 준비를 다시 시작하였다.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주변에 있는 집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집을 보며 물은 잘 나오는지, 볕은 잘 드는지, 방음은 잘 되는지 등 여러 가지를 확인하고 있는 나에게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너 너무 재고 따지는 거 아니니? 나랑 네 아가씨처럼 좀 쿨해져 봐라. 이게 뭐 별거라고 그냥 결정하면 되지 뭘 그렇게 따지고 드니."

못해도 2년은 살 집인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이것저것 체크하고 대비하는 게 재고 따지는 일이라니... 그 말을 듣고 도대체 뭐가 잘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어머니께서는 계속해서 빠른 결정을 내리라며 보채셨다.

겨우 5집 살펴보았는데 옆에서 힘들어하시고 불편해하시니 그중 그나마 나은 집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같이 집을 봐주시고 도움을 주셨으니 감사했지만, 마음 한 편은 불편했다.

그날 밤 잠에 들기 전 내 속에서는 '너 너무 재고 따지는 거 아니니?'라는 말씀이 무한 반복되어 들렸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집을 계약한 후 도배와 살림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살림을 준비하면서도 이래저래 시어머니의 간섭은 끊이질 않았고, 그래도 어른 말씀이니 따라보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내 취향에 따라서 결정하거나 할 때에는 시어머니의 표정은 항상 굳어있었다.

도대체 시어머니 댁을 꾸미는 건지, 나와 내 남편의 집을 꾸미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어쩌겠나 싶었다.

이젠 가족이 되기로 했고, 앞으로도 계속 부딪히며 살아야 할 텐데 그 속에서 양보도 하고 서로 합의도 하며 지내야지.

그래서 내가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양보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설득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었다.

하지만 본인을 쿨하다고 여기셨던 시어머니는 속으론 쿨하지 않으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어머니는 나에게 1:1이 아닌 1:다수가 된 상황에서 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셨다.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흉이 보이면 작은 일에도 생채기가 더 났다.

쿨함을 요구하시는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그 자리에서 쿨하게 인정하고 개선의 의지를 보이길 바라셨나 보다.

그러나 난 그런 쿨함은 갖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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