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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Oct 28. 2018

며느리의 일기장 15

제발 나랑 헤어져주면 안 될까? 1

 이전에 썼던 일기들이 시간 순으로 정돈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에 기록한 내용 이외에도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중에 너무 일상처럼 반복되어 사소한 일로 여겨져 기억이 나지 않는 일들도 있다.

그러한 일들 속에 나는 자존감을 잃고 일상생활이 지겨웠으며 그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울감에 빠져 쉬는 날 낮에는 아무 생각 없이 TV를 틀어놓고 있거나 대부분 잠을 자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해가 지면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주변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생활의 패턴이 무너지고 있었고, 나는 그 속에서 더욱더 무너져내렸다.

우울했고, 우울했고, 우울했다.

'나는 누구일까?'부터 시작해서 '지금 난 왜 이러고 있는 걸까?'까지 수많은 생각을 했다.

결론은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의 우울증. 단 한 번만 겪을 줄 알았던 그 어려움을 다시 마주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아빠께서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서 2년 동안 무기력하게 집에서 TV만 보며 자신과 싸우는 모습을 보았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맞벌이를 하셨던 엄마께서도 아빠의 몫까지 감당하느라 그 나름대로 지쳐있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학교에서 하게 된 우울증 검사를 통해 병원을 소개받았다.

결론은 지금까지도 왜곡된 시선으로 보여지는 정신과 상담을 엄마는 기피하셨고, 나는 방치되었다.

그 시절은 나뿐만이 아닌 우리 가족이 인생 최대로 맞았던 위기였다.


 다행인 것은 시간이 흐르고 좋은 멘토를 만나 나와 가족은 위기를 극복하였다.

멘토를 만나기 전, 가끔은 자해를 했었고, 담배를 피우며 매일같이 내 방 창문을 열고 4층에서 떨어지면 바로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을 멈추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푸른빛'으로 칠해져있던 내 마음에 다른 색의 크레파스 들고 새로운 색으로 칠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들도 점차적으로 안정을 찾고, 아빠께서도 새로운 직장에 취업하시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겪었던 우울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나의 어두운 면을 나의 밝은 면을 통해 새로운 장점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대학에 들어가서는 주변에 사람이 참 많아졌다.

한정적이고 제한적인 학교생활을 하던 내가 과대표를 하기도 하였다.

그 당시 친구들을 참 많이 사귀었었는데, 아직도 대학시절 지인을 만나면 "네가 학교에서 요즘 말로 핵인싸였지. 학교 벤치에 앉아있으면 너랑 인사 안 하고 지나가는 애가 없었어." 혹은 "너는 인간관계 스펙트럼이 넓어서 그런지 항상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그래서 이혼하고 겪는 어려움에서도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고."라고 말한다.


 아무튼, 그때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는 어떤 문제와 직면해도 잘 이겨낼 수 있겠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내 삶에 있어 두 번 다시 우울감이나 자살에 대한 생각은 앞으로 없을 거야.'

하지만 두 번 다시 마주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다시 겪은 우울감은 나에게 더 큰 패배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차갑고,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졌다.


 요즈음 김창옥 씨의 강연을 매일 같이 본다.

그렇게 강의를 잘하고 유쾌한 분도 우울증을 두 번 겪어보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밝은 사람 뒤에는 어두운 커튼이 하나쯤은 있다. 그 커튼으로 인해 그 사람의 밝은 면이 더 잘 보인다."

나는 내가 우울증을 겪었고, 삶에서 실패를 경험한 것이 부끄럽지가 않다.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 감추고 싶은 아픔이 아니라 드러내서 더 빨리 아물게 하고 싶은 상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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