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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Oct 28. 2018

며느리의 일기장 16

제발 나랑 헤어져주면 안 될까? 2

 이미 지독한 우울감을 경험했었던 나는, 두 번째 우울감에서 또다시 방황하고 길을 잃었다.

분명 한 번 지나왔던 길이라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을 텐데, 왜 때문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고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사는 게 참 지독하다고 느꼈다.

이전에 겪었던 우울증을 나는 지옥 같은 삶이었다 표현했었다.

내가 가진 종교에서는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데, 죽는 게 무섭지 않았었다.

이미 삶이 지옥인데 죽어서 지옥이라면 차라리 마주하지 않은 지옥을 경험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했다.


 매일 같이 우울한 나를 보며 남편은 걱정하기도 했고,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는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일상적인 말로 나를 공격하셨다.

평소 같았으면 웃어넘기기라도 했을 텐데 그날은 힘들었다.

내 안에 있던 긍정 에너지가 다 고갈되어서 바닥을 긁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결국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나를 달래주는 남편에게 무릎을 꿇고 손을 잡고 빌었다.

"제발 나랑 헤어져주면 안 될까? 내가 이렇게 빌게. 나 진짜 못하겠어."

남편은 당황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남편에게 나는 다시 얘기했다.

"나 지금 주방에 있는 칼 들고 가서 어머님, 아가씨 찔러 죽이고 나도 죽고 싶은 심정이야. 내가 지금 이렇게 정상적이지 않아. 너무 힘들다. 나 때문에 여보도 힘든 거 느껴져서 그게 더 힘들어."


 그때까지만 해도 내 편이였던 남편은 같이 울면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말했다.

아.. 진짜 뭐가 문제였을까? 그냥 나를 나로 봐주고 우리를 우리로 봐주는 게 그렇게 힘들었을까?

나와 남편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상처에 투사해 굴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들과 함께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힘겹게 느껴졌다.

버거웠다. 평생 어깨에서 내릴 수 없는 짐같이 느껴져서.


 그날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가뜩이나 어두운 촌 동네의 밤이 더욱 어둡게 깊어갔고, 그날 밤은 울다가 지쳐서 잠들었다.

그동안 낮에 자고 밤에 잠들지 못했던 내가 처음으로 제시간에 남들처럼 잘 수 있었다.

웬만하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잠들고 싶었는데.

평범한 건 이미 내 손을 떠나 있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고 대단한 일이라고 하던데,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인가 싶어서 더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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