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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Oct 30. 2018

며느리의 일기장 17

네가 뭐가 힘드니? 우리 아들이 더 힘들지!

 생각해보면 결혼 전 시집살이에 대한 약간의 조짐은 있었다.

내가 더 똑똑하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사랑에 눈이 멀어서였을까?

아니면 당시엔 친근하게 대해주시던 시어머니의 수많은 말들 중에 가시 돋친 말이 섞여있어서 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몇몇의 말들을 듣고 그만했어야 했는데, 역시 사람은 눈이 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나 보다.


 시어머니께서는 결혼 전 내가 시댁에 놀러 갔을 때 잘 챙겨주셨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어머님을 잘 챙겨드리기도 했었으니까.

시어머니께서는 지방에서 힘들게 사셨기에 꾸미는 방법을 잘 모르셨다.

주변에서 딸들이 잘 챙겨줬으면 좋았겠지만.

글쎄, 내가 보기엔 막내는 너무 어렸고, 둘째는 엄마를 사랑은 하지만 세심하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서 폐경이 온 것 같아 힘들다는 말씀을 듣고는 영양제를 챙겨드렸었다.

내 화장품을 사러 갔을 때에는 시어머니 것도 챙겨드렸다.

나도 아르바이트해서 열심히 번 돈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를 챙겨드리는 것이라 아깝지가 않았다.


 막내가 당시에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어린이날이나 생일 땐 항상 선물을 해줬다.

남자친구도 좋아했고 남자친구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그럴수록 아가씨의 질투는 늘어갔다.

그래도 그때는 사랑받는 줄 알았으니 별 걱정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계속 이렇게만 하면 될 줄 알았던 것은 내 착각이었다.


 하루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서 매일 같이 정시에 퇴근도 못하고 일하느라 당시 15kg 정도가 빠졌을 때였다.

그 직장에서는 1년 동안 4번의 평가를 준비하고 치렀었는데, 그게 참 많이 힘들었다.

그중에 하루 시간이 허락돼서 남자친구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서 간 적이 있었다.

매일 같이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일했던 터라 많이 피곤해 했었다.

하품을 하며 "피곤하다."라고 혼잣말을 했을 때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뭐가 힘드니? 우리 아들이 더 힘들지!"

나.. 참!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새로운 직장에서 야근하느라 매일 같이 바빴다.

우리 둘 다 바빴었다. 그래서 데이트도 잘 못했었다.

기가 막혔지만 그냥 웃으면서 답했다.

"요즘 직장에서 평가 준비하느라 잠을 잘 못 자서요."

하지만 그 말은 가볍게 무시당했다.

기분은 상했는데 많이 피곤해서 그랬는지 별생각이 없었다.

내 몸을 챙기기도 너무 힘겨웠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그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 이직을 했다.

그리고 아가씨는 졸업 후에 내가 일했던 같은 직종의 일을 시작했다.

아가씨도 이런저런 많은 일들을 겪었고, 그로 인해 힘들어하기도 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시어머니께서는 나에게 "네 아가씨가 요즘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모르겠다. 진짜 불쌍해서 안쓰러워 죽겠어."라고 말씀하셨다.

속으로 '저한테는 제가 뭐가 힘드냐고 하셨잖아요. 정말 너무하시네요.'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아냈다.

그저 "원래 그 직종이 정말 힘들어요. 아가씨도 고생이 많네요."라고 대답했다.


 자기 딸과 아들은 귀하고, 남의 딸은 귀한 줄 모르는 분이셨다.

그 속에서 나는 그런 시어머니가 되지 않겠다고 수만 번 다짐했다.

나에게 배타적인 시댁 속에서 나는 타인이 귀한 줄 알고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욱 노력했던 것 같다.

누굴 만날 때 조금 더 친절하려 노력했고, 남을 무시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무례한 사람들 속에서 내가 무례해질까 두려웠다.


 결론적으로 이혼을 한 지금, 나는 조금 바뀌었다.

화를 조금 덜 내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조금 더 이해하려 하고, 짜증을 조금 덜 내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일을 다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어려운 일을 겪어보니 세상 사는 거 그냥 둥글고 모질지 않게 살고 싶어졌다.

한 번 사는 삶, 하고 싶은 건 하면서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글을 더 열심히 쓰고 새로운 일들에도 도전하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나만의 삶을 살고 있다.

조금 더 나를 위해서, 지금의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게 무얼까 고민하면서.

그리고 결심한 건 실행에 옮기고 있다.

좋아하는 언어 공부도 다시 시작했고, 운동도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하려 노력하고, 사람들도 자주 만난다.

나다운 삶을 사는 것. 이게 나의 행복이었고, 지금 누릴 수 있을 때 충분히 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 보게 해주었고, 나만을 위해 살게 해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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