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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Oct 31. 2018

며느리의 일기장 18

여자가 임신을 하면...

 오늘 이야기는 내가 시댁에게 들었던 수많은 성희롱 중 일부이다.

더 많은 말들을 들었지만 과연 이 글에 담아내어도 될지, 담아낸다면 어디까지 담아낼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아무튼 오늘 내용은 빙산의 일각이다.


 하루는 아가씨들을 제외하고 나와 남편, 시부모님, 시삼촌이 함께 저녁을 먹고 기분 좋게 후식을 먹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또 임신 소식에 대한 이야기로 흐르게 되었다.

내 일기에서 상당 부분 차지하는 임신 소식...


 그날도 어김없이 가벼운(?) 성희롱이 시작되었다.

"너네 한 달에 몇 번이나 관계 갖니?"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네?"하고 되물었다.

그러나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시어머니께만 듣던 민망하고 부끄러운 얘기를 남편도 아닌 시아버지도 아닌 다른 분께 들으니 더 힘들었다.


 당황한 나에게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관계는 새벽에 가져야 아기가 잘 생긴다. 그리고...."

듣기 싫었다.

내가 왜 들어야 하는가. 저런 폭력적인 말을.

나는 내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음을 느꼈다.


 "여자는 임신을 하면 남자랑 관계를 못하니까 지혜로운 여자는 남편한테 돈을 쥐여주고..."

그 뒷말은 적지 않겠다.

아마도 대부분 다들 알고 있을 테니까.

수치스러웠고 그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앞으로 어떤 말을 더 들어야 할지 공포스러웠다.


 그때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남편이 "그만하세요."하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분은 멈추지 않으셨고, 남편의 손에 이끌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충격과 공포라는 말을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자주 했었는데, 그날 겪은 상황은 정말 충격과 공포였다.


 내가 누구와 결혼한 건지, 어떤 사람들과 가족이 된 건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앞으로 이분들과 함께 가족으로 지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과연 저분들은 어떤 생각으로 나에게 그런 말씀들을 하시는 건지... 가늠이 되지도, 납득이 되지도 않았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 알게 된다면 과연 나를 불쌍해할까 아니면 이런 사람들과 가족의 연을 맺은 나를 모자란 애로 생각할까 그것도 두려웠다.

내가 바보 같고 멍청해서 이런 결과를 낳은 건가 싶었다.

결국 나는 나를 자책하고 미워하게 되었다.

나란 존재는 늘 실수만 하는 헛똑똑이 같았다.


 대학을 나와 사회생활을 하면 뭐하나 싶었다.

내 삶은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나는 과연 사람다운 사람인가 싶었다.

이 모든 게 악몽 같았다.

그래서 볼을 꼬집어 보았다.

꿈이라면 이제 그만 깨고 싶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내 인생에서 결혼을 처음 해봤기에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때는 그 실수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내 모습을 내 친구들이, 내 결혼식에 왔던 사람들이 보고 손가락질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내 결혼을 축하하고 축복해줬는데, 그 결과는 처참했다.

나는 나 자신을 돌볼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시댁 문제에 있어서 더 이상 이전처럼 부드럽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헤어지자는 말을 참 많이 했었다.

그리고 남편도 지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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