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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Nov 01. 2018

며느리의 일기장 19

쟤는 쟤네 집 비밀번호도 안 알려줘.

 시어머니와의 갈등 더 나아가 시댁과의 갈등은 심화되었지만 그래도 시댁과 관계 회복을 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시어머니 눈 안에 들기 위해 애를 썼었던 것 같다.

하루는 시댁을 따라 남편 없이 저녁을 먹게 되었다.


 시아버지께서 따라오라 하셨고, 시어머니는 싫어하셨다.

"얘를 왜 데려가?"하시며 불쾌해 하시길래 "아버님, 어머님 저는 다음에 불러주세요~"라고 대답드렸다.

시아버지께서는 남편 야근하면 혼자 먹어야 하는데 같이 가서 저녁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불편함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도 안 보셨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두 분께서 식사하시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그곳에는 두 분의 지인께서 계셨다.

항상 두 분과 함께하는 자리에는 지인분들과의 술자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더 이상 대수롭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냥 평소와 같이 어른들은 이야기를 나누시며 술자리를 이어가셨고, 나는 혼자 밥을 먹었다.


 그러던 중 한 분께서 나에 대한 칭찬을 하셨다.

'요즘 애들 같지 않다. 싹싹하다. 착하다. 재주 많다. 살림도 잘한다.'

뭐 이래저래 감사하게도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그날도 나에 대한 칭찬이 달갑지 않으셨는지 갑자기 나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셨다.


 "쟤가 뭐가 예쁘다고, 어휴 못생기고 뚱뚱한 것 봐. 쟤네 집에 한 번 가려면 문 밖에서 5분은 서 있어야 해."

못생기고 뚱뚱한 얘기를 하다가 왜 우리 집 밖에서 5분 기다리셔야 하는 이야기로 흐르게 된 건지...

시어머니께서 그 부분에 대해 서운하신 것이 있으셨나 싶어서 그냥 밥만 먹고 있었다.


 그러나 시어머니께서는 성에 차지 않으셨는지 "쟤는 쟤네 집 비밀번호도 안 알려줘."하고는 정점을 찍으셨다.

그러자 시부모님 지인 중 다른 한 분이 말씀하셨다.

"너는 왜 비밀번호도 안 가르쳐주니? 시어머니한테 집 비밀번호도 안 가르쳐주는 며느리가 어딨어!"


 내 집, 내 공간, 내 사생활이 담긴 내 쉼터를 결혼생활에서 가장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시어머니께서 언제든지 방문하시도록 돕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처음 비밀번호를 알려달라 하셨을 때 많이 고민했었지만 가구를 옮겨놓고 가셨을 때 알려드리지 않아야 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알려드리지 못했다.

내가 끝까지 책임지고 감당하지 못할 일은 애초에 시작하고 싶지 않았기에.


 "제가 어머니께 다른 부분은 다 해드리려 노력해도 그 부분은 어려워서요. 제가 뭘 숨기거나 하려는 게 아니라 저희 둘만의 공간인 사생활을 오픈하는 게 아직은 어렵더라고요. 저는 어머니께서 한 번 물어보시고는 다시 언급 안 하시기에 제 의견에 동의하신 줄 알았어요."

내 말에 시어머니께서는 기가 차다는 얼굴로 "그래! 너네 집 비밀번호 필요 없다! 내가 구걸해야 하니?"하며 호통치셨고, 분위기는 싸해졌다.


 그로 인해 나는 혼자서 안절부절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나는 마침 퇴근한 남편이 데리러 온 덕에 그곳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불안해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무슨 일 있냐 물었지만 나중이 되어서야 그 일에 대해 말해줄 수 있었다.


 아들과 며느리 집의 비밀번호를 아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 누군가에게는 알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 의견은 수렴되지 않은 채로 엉뚱한 곳에서 폭발해서 나를 공격하시는 시어머니의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그 모습은 비단 집 비밀번호와 관련된 문제만이 아닌, 나 자체에 대한 불만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혹 떼려다 혹을 붙여,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내 애교나 붙임성, 시어머니를 도와 일을 하거나 시댁에 자주 찾아뵙는 것 등의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냥 나는 이미 미운 털이 가득 박힌 미운 오리 새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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