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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Nov 03. 2018

며느리의 일기장 20

네가 병원 좀 알아보고 알려줘라.

 시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외숙모가 임신했는데 네가 병원 좀 알아보고 알려줘라."

아침 일찍 온 전화라 얼떨떨했다.

외숙모께서 최근에 임신하신 사실은 알았는데 아이를 원치 않으셨다.

그런데 내가 병원을 알아보라고?


 남편한테 전화해서 물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남편은 듣고 말이 없었다.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뒤 시어머니께 전화드려 알아봐도 없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시어머니께서는 "그래? 더 알아보지도 않고... 알았다."하시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그 이후는 나도 모르겠다.

시어머니께서는 그 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씀이 없으셨고, 그저 아들을 낳았으면 좋을 텐데 하고 하고는 마셨다.

나는 너무 충격적이라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어떤 결정을 하셨는지 묻지 않았다.

그 시기에 그 일 말고도 내가 고민해야 할 것들이나 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도 있었다.


 이 사건에서 나에게 병원을 알아봐 달라는 것 자체가 컬처 쇼크였다는 것이다.

한동안 그 충격은 가시지 않았고 잠을 뒤척였다.

그리고 얼마간은 시댁과 마주하지 않도록 피해 다니기도 했다.

머릿속에서 그 말이 둥둥 떠다녔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 상황들을 조금이라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금.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내가 어떻게 그 말들을 견뎌내고 참아낼 수 있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한 사람만 보고 견뎠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사람도 왜 의지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내 옆에 없는 그 사람이 더 이상 내 삶에 의미가 없어져서일까?


 어쩌면 인생에서 결혼을 처음 해봤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었던 실수일지도 모르겠다.

그 실수가 나를 무너뜨리기도 했지만 나를 성장하고 성숙하게 도와주었다.

가끔은 옆에 누가 있다 빈자리가 새삼 느껴져 어색하고 이상하기까지 하기도 하다.

그런데 돌아가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면 돌아갈 거냐 묻는다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고 싶다.

지난날의 나는 많이 지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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