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밥 안 먹었으니까 밥이나 먹여라
근래에 시댁에서 저녁을 많이 먹은 것 같아, 그날은 내가 대접하기로 마음먹었다.
식사 준비 전 시어머니께 전화드려 저녁식사를 함께 하실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시어머니는 좋다고 하셨고, 마침 남편도 야근이 없다기에 그날 저녁은 내가 요리를 해서 시댁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기분 좋게 요리를 해서 그런지 그날따라 평소보다 더 맛있게 조리된 것에 더욱 흥이 돋았다.
미우나 고우나 내 가족인 사람들이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다 보면 언젠간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사 준비를 마친 후에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남편은 사진을 보고 점수 좀 따겠다며 칭찬해주었다.
남편이 퇴근한 후 함께 시댁으로 넘어가려 하기 전,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엄마 지금 아버지랑 술 약속 생겨서 밥 못 먹는다. 대신 애 밥 안 먹었으니까 밥이나 먹여라."
남편은 또 내 눈치를 보았다.
내가 직접 받은 전화가 아니어도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다 들렸기에 이미 나도 마음이 상한 터였다.
"아휴 엄마는 매번 이러네..."
남편은 민망해서인지 혼잣말을 하였다.
기분은 상했지만 시댁으로 이동해 막내 아가씨를 챙겨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나마 다행은 모두가 맛있게 먹어준 거랄까?
난 입맛이 떨어져 거의 먹지 않았지만 기분은 좀 나아졌다.
아가씨 혼자 있는데 그냥 두고 나오기 마음이 안 좋아 같이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 시부모님께서 돌아오셨다.
"어이! 며느리~ 아직도 있었네?"
시어머니께서 취하셔서 말씀하셨다.
"네. 아가씨 혼자 있으면 심심할 것 같아서 같이 시간 보내고 있었어요."
시어머니께선 "그래? 오늘 밥 맛있게 먹었니?"라고 대답하신 후 방으로 들어가 주무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루를 돌아보니 허망한 기분이 들었다.
'내 노력은 항상 물거품이 되는구나.'
'이 상황이 과연 나아질까? 나 혼자 땅굴 파고 있는 거 아닐까?'
함께 걷는 길에 남편을 보니, 이 남자도 지쳐있었다.
그래도 이 상황을 계속해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으니 조용히 남편의 손을 잡았다.
별일 없었던 것처럼 오늘 먹었던 메뉴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레시피를 설명했다.
남편은 이제 주부가 다 됐다며 받아쳤고, 그렇게 사건을 나름대로 잘 마무리하였다.
그래도 그날은 집에 돌아와 설거지를 하며 상한 감정을 같이 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나마 편안하게 잘 수 있음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