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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Nov 03. 2018

며느리의 일기장 21

애 밥 안 먹었으니까 밥이나 먹여라

 근래에 시댁에서 저녁을 많이 먹은 것 같아, 그날은 내가 대접하기로 마음먹었다.

식사 준비 전 시어머니께 전화드려 저녁식사를 함께 하실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시어머니는 좋다고 하셨고, 마침 남편도 야근이 없다기에 그날 저녁은 내가 요리를 해서 시댁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기분 좋게 요리를 해서 그런지 그날따라 평소보다 더 맛있게 조리된 것에 더욱 흥이 돋았다.

미우나 고우나 내 가족인 사람들이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다 보면 언젠간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사 준비를 마친 후에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남편은 사진을 보고 점수 좀 따겠다며 칭찬해주었다.


 남편이 퇴근한 후 함께 시댁으로 넘어가려 하기 전,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엄마 지금 아버지랑 술 약속 생겨서 밥 못 먹는다. 대신 애 밥 안 먹었으니까 밥이나 먹여라."

남편은 또 내 눈치를 보았다.

내가 직접 받은 전화가 아니어도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다 들렸기에 이미 나도 마음이 상한 터였다.


 "아휴 엄마는 매번 이러네..."

남편은 민망해서인지 혼잣말을 하였다.

기분은 상했지만 시댁으로 이동해 막내 아가씨를 챙겨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나마 다행은 모두가 맛있게 먹어준 거랄까?

난 입맛이 떨어져 거의 먹지 않았지만 기분은 좀 나아졌다.


 아가씨 혼자 있는데 그냥 두고 나오기 마음이 안 좋아 같이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 시부모님께서 돌아오셨다.

"어이! 며느리~ 아직도 있었네?"

시어머니께서 취하셔서 말씀하셨다.

"네. 아가씨 혼자 있으면 심심할 것 같아서 같이 시간 보내고 있었어요."

시어머니께선 "그래? 오늘 밥 맛있게 먹었니?"라고 대답하신 후 방으로 들어가 주무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루를 돌아보니 허망한 기분이 들었다.

'내 노력은 항상 물거품이 되는구나.'

'이 상황이 과연 나아질까? 나 혼자 땅굴 파고 있는 거 아닐까?'

함께 걷는 길에 남편을 보니, 이 남자도 지쳐있었다.

그래도 이 상황을 계속해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으니 조용히 남편의 손을 잡았다.


 별일 없었던 것처럼 오늘 먹었던 메뉴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레시피를 설명했다.

남편은 이제 주부가 다 됐다며 받아쳤고, 그렇게 사건을 나름대로 잘 마무리하였다.

그래도 그날은 집에 돌아와 설거지를 하며 상한 감정을 같이 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나마 편안하게 잘 수 있음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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