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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Nov 06. 2018

며느리의 일기장 22

넌 왜 엄마 바쁠 때 안 도와주니? 1

 우리가 결혼하기 전 시댁은 작은 식당을 오픈하셨다.

결혼 후 시어머니께서는 가끔 나에게 알바의 명목으로 도움을 요청하실 때가 있었다.

내가 시간이 되거나 약속이 없을 때에는 가서 도와드렸는데, 그때마다 어째서인지 내 임금은 그저 시어머니께서 사주시는 음식 하나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애초에 돈을 바라고 도와드리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처음 나를 부르실 때에 "엄마가 급해서 그러는데 도와줄 수 있니? 아르바이트 비 챙겨줄게."라고 하셨다.

나는 안 그러셔도 된다고 답했고 주셔도 받을 생각이 없었다.

기분이 상한 건 항상 일이 끝나고 여유 있는 시간대에 다음날 식재료를 사러 시장에 가면 거기서 먹을 걸 사주시고는 "엄마가 이거 사줬으니까 됐지?"라는 식이셨다.


 뭘 바라고 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런 식의 대접은 기분이 상했다.

내가 꼬여서 그런 거일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먹고 떨어져라'라는 식의 말투로 말씀하셨으니까.

그래도 항상 일손이 부족하셔서 주변 분들께 아르바이트비를 드리며 일하셨으니까 시간이 될 땐 도와드렸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시간이 안될 때였다.


 내가 취업 준비를 위해 이것저것 하고 있었을 때 그땐 나도 내 나름의 스케줄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도와달라고 하시면 죄송하지만 어려울 것 같다고 사정을 말씀드렸었다.

그게 한 번, 두 번 쌓이다 보니 결국 "넌 왜 엄마 바쁠 때 안 도와주니?"라는 이야길 들어야 했다.

내가 시어머니 바쁘실 때 열일 제쳐두고 도와드릴 수 있는 상황이면 가능했겠지만, 나도 내 나름의 일의 우선순위가 있었다.


 시어머니는 내 사정을 듣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결국 나는 왜인지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러실 거면 애초에 '우리 아들 돈 너무 막 쓰는 거 아니니?'같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냥 내가 시어머니 비유를 맞춰드리지 않으면 다 아니꼬우셨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은 주변 사람들 모두가 본인께 맞춰주길 원하셨던 분이셨다.


 피곤했다.

항상 맞춰드려야 하고, 눈치 봐야 하고, 밉보이지 않으려 애써야 했으니까.

그분도 그분 나름대로 힘드셨겠지만, 인간관계가 어찌 일방적일 수가 있을까?

나는 그저 이런 힘든 시간이 빨리 지나가 안정기가 오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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