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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Oct 16. 2018

며느리의 일기장 9

언니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해.

 아가씨와의 첫 갈등은 남편과 내가 만나고 난 일주일 후부터였다.

아가씨와 나는 학교 선 ·후배 사이였고, 그래서 학교에서 자주 마주쳤다.

하루는 아가씨와 함께 대화를 하던 중에 "OO(남편 이름)이랑 언니랑 살 좀 빼."라고 말했다.

순간 훅! 들어오는 공격은 예상도, 방어할 준비도 하지 못했기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OO 이가 뭐야?오빠라고 해야지.^^"라고 말하자 아가씨는 그런 나를 보며 당황함과 동시에 분노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며칠 뒤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나에게 이야기했다.

아가씨가 시어머니께 내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으며, 시어머니께서는 당연히 오빠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다고.

그러자 아가씨는 불평불만을 했다고.

엄마의 편을 얻고자 한 사소한 고자질(?)이 나는 유치하고 황당하게 느껴졌다.

그것도 고자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연한 부분을 말해줬을 뿐인데.


 따지고 보면 아가씨는 참 무례했다.

아가씨야말로 당시와 현재까지 누가 봐도 날씬하지 않았다.

근데 왜 나와 남편에게 살을 빼라 말했을까?

그저 나에 대한 질투에서 나온 말이었을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그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하였다.


 후에 아가씨는 이래라 저래라 말이 많았고 나는 그 말을 몇 번은 웃어넘기고 몇 번은 반박하였다.

나의 반박에 매번 아가씨의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 되었다.

나에게 있어선 말도 안 되는 논리와 주장으로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가르치는 게 웃기기도 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참 살갑고 예의 있던 그 후배는 어디 갔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거기서부터 나의 시월드는 개장하였다.


 참 여러 가지 일이 많았지만, 내가 졸업하고 취업한 뒤 우리가 결혼을 이야기하던 즈음에 후배들에게서 다급한 전화들이 오기 시작했다.

"언니 △△(아가씨 이름)이 요즘 학교에서 애들 모아놓고 언니 얘기를 하고 다녀요."

"언니 △△이 요즘 난리 났어요. 언니가 이랬다니 저랬다니 말이 많은데 가만둬도 돼요?"

"언니 △△이가..."

한 달 동안 거의 7명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처음엔 황당했지만, 그 얘기를 듣고 가장 먼저 나를 걱정해준 후배들에게 고마웠다.

나는 일단은 가만두라고, 자기 무덤 파는 일에 관여해봤자 괜히 나만 손해라고 말했다.

후배들은 나를 참 많이 걱정해주었다.


 우리가 결혼 준비를 하던 중에 아가씨와의 갈등은 폭발하고 말았다.

아가씨는 점차 도를 넘어 자가발전을 하기 시작했고, 시댁 앞에서도 나에게 무례하게 행동하였다.

그동안 참았던 나도 한계를 느꼈고 시어머니께 파혼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시어머니는 이미 청첩장도 돌렸고 이미 마무리되어가는 단계에서 파혼은 안된다고 하셨다.

나는 이혼보다는 파혼이 서류상 남지도 않고 그게 서로에게 있어서 좋을 것 같다고 전해드렸다.

이유를 묻는 시어머니에게 아가씨가 그동안 나에게 했던 말과 행동에 대해 말씀드렸다.

시어머니는 일단 전화를 끊고 만나서 다시 얘기하자 하셨다.


 사실 시어머니께 파혼 선언을 하기 전 아가씨에게 전화해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너의 무례함에 대해 나는 더 이상 봐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그냥 파혼하겠다고, 너랑 가족이 되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아가씨는 그런 나에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언니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나에겐 '난 아무 잘못이 없어.'라는 말로 들려 더욱 화가 났다.

그리고 속으론 이런 생각을 했다.

'뭐 이딴 계집애가 다 있지?'


  그날 저녁 시어머니, 시아버지, 남편, 나, 아가씨가 오자 대면을 하였다.

나는 그동안 우리 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와 내 생각에 대해 말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시아버지는 아가씨에게 "네가 사과해."라고 말씀하셨, 나는 아가씨의 사과를 들었다.

근데 아가씨는 진심이 아닌 억지로 하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그걸 따져봤자 무슨 득이 있을까 싶어 그렇게 사과를 받고 그 일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아가씨와 나는 남이기 때문에 나와 남편이 만나면서 참 많은 갈등이 있었다.

나는 그걸 사람의 다름으로 여기고 좋게 넘어가고 싶었다.

서로 이해하다 보면 서로가 돈독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테니까.

근데 아가씨는 나의 실수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려 했다.

그 당시, 그리고 지금 아가씨의 생각은 내가 알 수 없지만 내가 느끼기엔 아가씨는 나를 쥐고 흔들고 싶은 것 같다.


 아가씨에게 혹은 시댁에 나도 100퍼센트 만족시켜 주진 못했다.

나도 사람이고 실수할 수 있으니까.

나는 그래도 서로 대화를 하고 이해해주고 개선해나가길 원했지만 그건 참 어려웠다.

아가씨와의 갈등은 내가 사과를 받으며 일단락되는 것 같았지만, 그건 나의 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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