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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Oct 16. 2018

며느리의 일기장 10

엄마도 너네 옆집으로 이사할까?

 우리가 신혼집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당시 우리 옆집은 비어있었는데, 그 집이 마음에 드셨는지 어머니께서 "엄마도 너네 옆집으로 이사할까?"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왜, 싫으니?"하고 물으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가족들이 그건 아니라고, 서로 불편하고 힘들 거라고 만류했기에 어머니께서 이사를 선뜻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포기를 모르셨는지... 결국 근처에 사시던 다른 친척분을 우리 옆집으로 이사시키셨다.

처음엔 별일 없었지만, 그 친척분께서 술을 드시면 우리 집에 와서 2차로 한 잔 더 하시려 하시기도 하셨다.

그 외에 급한 일이 있거나 심부름 거리가 있으면 집에서 쉬고 있는 내가 해결해야 했다.

개인적인 사유로 거절하거나 불편해하면 그게 또 비난거리가 되었다.

남편도 내가 그런 부탁을 안 들어주면 약간은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의도치 않게 나는 모두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결혼 후 몇 달을 쉬던 나는 새로운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준비 기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 당시 남편은 매일같이 야근해야 하는 바쁜 시기였던지라 불이 오랫동안 꺼져있으면 여러 질문을 받았다.

"엄마가 요즘 여보 친정에 가있냐고 물어보더라."던지, 어쩌다 친척 분을 마주칠 때면 "요즘 집에 안 들어오니?", "친정 갔다 왔니?"

별거 아닌 질문이지만, 그 당시에 내가 느낀 압박감이란...

매사에 알게 모르게 나의 생활에 집중되어있는 시선들이 불편해졌다.


 이러한 일들이 계속 반복되자 내 생각은 극단적인 쪽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나 감시하려고 친척분을 이사시키셨나...?'

그러다 보니 집 밖에 나갈 때도 창문을 통해 친척분이 밖에 계시는지, 누가 지나가지는 않는지 눈치를 보다가 외출하곤 했다.

집에 많이 늦게 들어올 것 같은 날은 미리 불을 켜놓고 나가기도 했다.

그런 행동도 몇 번 하다 보니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던 중 좋은 기회가 생겨 전셋집을 얻어 이사하게 되었다.

시댁과는 차로 30분~ 1시간까지도 걸릴 수 있는 거리였고, 집을 이사하기로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옆집 사시는 친척분은 나에게 이사할 집 시세와 평수를 물으셨다.

대답해드리자 그 돈으로 여기서 더 큰집에서 편하게 살지 왜 이사 가냐고 멍청하다는 듯이 나무라셨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전 어릴 적부터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에 오니 불편한 게 너무 많아요. 어디 나가려면 한참 걸려서 마음먹고 나가야 하고, 문화생활도 즐기고 싶은데 여긴 너무 제한적이라서 살기 어렵더라고요. 거기가 여기에 비해 시세가 높지만 그만큼 생활권은 좋잖아요."

내 대답을 들으시곤 "그래도 네 남편 직장이 여긴데 그쪽으로 가면 네 남편 출·퇴근은 어떡하냐."라고 말씀하셨다.

"저도 여기서 희생하고 1년 동안 살았잖아요. 부부인데 맞춰가야지 어떻게 한 쪽에만 맞춰살아요. 이제 남편도 저한테 양보하고 이해해줄 때가 된 것 같아요. 제가 힘든데 남편이 저를 이해해줘야지 누가 저를 이해해줄까요."

그러자 그분은 아무 말씀 없이 멋쩍게 웃으셨다.


 이런저런 반대와 불편한 시선이 있었지만 우리는 이사를 했고, 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자유를 얻은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남편도 처음에는 "집 근처에 영화관도 있고 편의점도 가깝고 이래저래 이사하길 잘한 것 같아."라고 말하며 만족을 보였다.

그리고 한동안은 행복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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