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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Oct 19. 2018

며느리의 일기장 11

착상이 어렵습니다.

 결혼한 지 1년쯤 되었을 때에 배란일을 맞추는 것 외엔 별다른 피임을 하지 않아도 아기가 생기지 않음에 의문이 생겼다.

더불어 한쪽 배가 골반염처럼 점점 아파진지 꽤 된 것 같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다.

산부인과에는 정기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몇 번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해봤기에 혹시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동안은 남편과 시간이 맞지 않아 혼자 갔었지만 그날은 남편과 동행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를 하고 진료를 보기까지 '설마 무슨 문제라도 있겠어? 걱정하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정확한 검사를 위해 초음파를 보던 중에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 봐요. 나팔관이 6배로 부어서 착상이 어렵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선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될 수 있다고 해주셨으나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아기를 지금 당장 가질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전에 생기면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진료를 받고 상담 후에 병원을 나섰다.

남편에게 상담 내용에 대해 말했을 때 생각보다 반응이 무미건조했다.

나는 마음이 무너져내리는데, 그저 미적지근한 반응이라니...

생각이 깊어지다 보니 시댁에 대한 원망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시댁 때문인 것 같아서.

며칠은 우울했던 것 같다.

여자로서 임신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현실 때문에...

아기를 낳고 키우는 모습을 항상 상상하면서 엄마가 될 준비를 미리 해놓으려 했었는데,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것 같았다.


 아기를 못 갖는 것이 저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나는 원망할 구석이 필요했던 걸까?

답답하고 힘들어서 눈물이 나왔다.

여자로서 기능을 잃은 것만 같고, 아직 어린 나이에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스스로가 가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결혼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왜 일찍 결혼했을까? 왜 이 사람이랑 결혼했을까? 왜 나는 아기를 가지기 어려운 몸이 되었을까?

이런 생각들은 나를 옭아매었고, 나는 예민해졌다.


 그렇게 계속 힘든 상태로 시간이 흐르고, 남편과 함께 시댁에 해당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시부모님과 우리 둘만 만나서 얘기하기로 했다.

말씀드릴 부분이 있다고 약속을 잡았다.

당일, 나갈 준비를 마쳐가는데 남편이 말했다.

"엄마가 약속 생겨서 오늘 못 만난다는데..."

화가 났다. 시댁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는 게 처음이 아닐뿐더러 항상 직전에 취소하시니까.

너무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나는 진짜 소송 걸고 싶어졌어."라고 말해버렸다.


 내 말을 들은 남편은 "우리 가족한테 소송 건다고? 이혼하자는 거야?"라고 말했다.

해서는 안되는 말이었다. 순간 화가 뱉은 잘못된 말이었다.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진짜 힘들어. 임신할 수 없는 쓸데없는 여자가 된 것 같아서. 근데 자꾸 원망하게 되고 그게 날 더 힘들게 해."

그러나 남편은 계속 화가 나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싸우고 서로 마음이 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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