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극적이다. 지금 막 격한 운동을 끝내고 나온 듯한, 웃통을 반쯤 걸친 채 침대에 앉아 있는 근육질의 노인. 소크라테스는 왼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자신이 돌아갈 고향이라고 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여정이라며 죽을 사람이 산 사람들을 위로한다.
자크 루이 다비드/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년 作
침대 끝에 비탄에 젖은 백발의 노인의 발밑에는 두루마리가 뒹군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던 제자 플라톤이다.그림 속, 노인 스크라테스는 젊었고, 청년 플라톤은 너무 늙었다. 곧 생사가 뒤바뀔 사제지간의 운명은 그들의 육체도 뒤바꿔 놓았다.
“이제는 가야 할 시간입니다. 저는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 떠날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느 편이 더 나은 쪽으로 가게 될지는 신을 제외하고서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아테네 시민들에게 담담하게 이별을 고했다.죽음은 오늘 집을 나서기 전 신이 이미 정해 놓은 여행 같은 것이었다.
황광우의 「철학의 신전」은 시인 호메로스와 철학자 플라톤의 대결을 다룬 이야기다. 플라톤의 사상을 되짚어보고 시인 호메로스의 작품을 분석하여, 호메로스와 플라톤의 세계관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본다.
호메로스의 영웅들은 신들의 대리자를 자처했다. 올림푸스의 신들은 영웅들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인간 대 인간, 신 대 신, 신 대 인간, 인간 대 신.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간에 무지막지한 그들의 창과 방패는 찌르고 막아냈다. 선홍색 피가 떨어지면 영웅의 목도 떨어지리라. 죽으면 끝이다. 내가 살려면 너를 죽여야 한다. 피하지 못할 죽음이라면 명예롭게 죽으리라.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는 트로이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가 하데스를 방문한 오디세우스에게 '개똥밭을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며 하소연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테네 인들에게죽음은 저승(하데스)에 하얀 숨결이 된 채로 존재하는 영원한 어둠이었다. 그들은 호메로스의 시를 배우고, 외우고, 즐겼다. 폴리스의 연극무대에서는 날마다 영웅의 이야기를 상연됐고, 누군가 큰 소리로 호메로스를 외치면 사람들은 의례히 신과 영웅의 향연에 취했다.
스승 소크라테스는 호메로스를 신봉하는 아테네 시민들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플라톤에게 호메로스는 미신이고 악습이었다. 스승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며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독배를 들이켰다. 소크라테스는 충분히 탈옥할 기회를 가졌음에도 '죽음은 직접 신을 볼 수 있는 여행'이라며 피하지 않았다.
호메로스는 소크라테스를 죽인 주범이었다. 호메로스를 죽여야 한다. 그러나 아테네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어쩌면 플라톤도 스승과 같은 죄목으로 재판정에 설지 모른다. 플라톤으로서는 자신도 살고 스승도 살리는 강구책을 찾아야 했다.
아테네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철학은 호메로스의 저승에 갇힌 하얀 영혼과 같은 것이었다. 플라톤에게 철학은 인간의 존재 이유였으며, 철학자가 정치를 해야 한다는 건 그의 오래된 야망이며 스승의 숙원이었다.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믿지 않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시인을 추방하라. 플라톤의 저서 「국가」는 호메로스의 죄를 심문한다.
'삶과 죽음, 영혼과 신을 둘러싼 플라톤과 호메로스의 대결' 다소 긴 소제목이 붙은 「철학의 신전」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화적 상상력과 고전에 밝은 지은이의 재치 있고 명철한 문장들이 우리의 눈을 밝게 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우리의 영혼에 신전이 지어질 것이다. 그 신전에 누가 들어갈 것인가. 영웅인가. 철인인가. 영웅과 철인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당신은 시와 철학의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신전의 주인이 될 것이니….
타계하신 그리스 신화 전문가, 이윤기 선생은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아직도 유효한 신들이 아니라 우편번호도 가르쳐주지 않고 떠나버린 신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이 신들을 만만하게 주물러서 다시 빚어낼 수 있다'라고 했다.
아직도 호메로스는 시인답게 하얀 숨결로 하데스에 갇혀 있을 테고, 플라톤은 플라톤답게 기억을 새롭게 해주는 레테의 강가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있을 테다. 우리가 만만하게 주물러서 빚어야 할 신들은 어쩌면 이들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