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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락 Feb 29. 2020

나의 노무현, 봉하에서

김해 이야기

나의 노무현, 봉하에서




몇 년 전, 사람을 떠나보내고 시를 썼다. 거자필반 去者必返, 믿고 믿었는데, 보고 또 보았는데, 그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게 끝이었다. 하늘이 무심한 게 아니라 사람이 무심한 거였다.


저문 마음에 꽃물이 들었다고
머언 산 바라보시다가
발소리 분분하게 새벽에 떠나신 님
서산에 노을이 곱게 물들 때,
가슴마저 붉어지시면
내 님 다시 오시겠지
짙푸른 하늘만 보고 또 보고.

-詩 소풍, 전문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를 닮아가는 나의 얼굴에도 허탕인 걸 알면서도 무수히 걸어가야만 했던  당신의 길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노무현, 그 이름으로 만들어진 주름을 본다. 대통령이 만들어진 길을 본다.


병원 옥상정원에서 아들의 담배를 뽑아 피우시며
이제는 달의 저쪽을 더듬으시는
당신의 시든 눈가에 걸린 잘 익은 달빛에도
아버지, 당신의 이마가 까매지셨다고
사라진 당신의 길들이 아들의 얼굴에 생겼다고

-詩 아버지의 길 中에서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꾸어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그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그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다.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노무현 대통령 후보 출마 연설 中에서

그의 언어는 불 속에서 통째로 단련된 의지였고, 그의 소리는 나를 무쇠솥처럼 달아오르게 만든다. 폰에 저장된 연설을 듣노라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주먹이 꽉 쥐어진다.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만에 권력을 맞바꾼 주먹, 그 주먹으로 눈물을 닦기엔 너무 아깝다.





바람이 불 때 찍었는데, 바람개비는 멈춰져 있다. 바람이 잡힐 리도 없고 시간이 멈춰질 리도 없지만, 봉하에서는 어떻게든 붙잡아야 될 미련만 쌓여간다. 흔적은 상징이 되었고 상징은 그리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리움은 산사람만 못 하다.





성산포의 시인 이생진은 아주 상사병이 도져서 "보고 싶을 땐 차라리 눈을 감으라고, 눈 감으면 보일 거다."라고 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몇 년이 흘렀다. 이젠 눈을 감아도 보고 싶은 걸 볼 수 없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뒷짐을 지고, 팔짱을 끼고, 눈을 껌뻑인다. 일어 선 채 자전거의 페달을 밞고 선 그의 두 발은 살아있는 것일까. 아니다. 눈 감으면 그가 없다는 게 실감이 나리라. 곁에 있을 사람의 뒷모습이 약해 보이고 쓸쓸해 보이면 그 사람이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서성이다 알게 되는 것들, 그는 없다. 또 알게 되는 것들, 나는 살아있다. 내가 없어져야만 알게 되는 것들은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을 확인하기란 너무 쉽다.






주인 없는 빈 집에는 한지로 된 창문이 깃발처럼 흔들려도 아무도 닫아주지 않았다. 바람이 문을 닫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의 무덤에는 바람에도 달아나지 않는 발 없는 언어들이 나부끼고 있다. 그의 가슴께가 따뜻하시겠다.





당신은 흘러 왔습니다. 가파른 골짝과 평평한 들판을 지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무위의 法을 체득하여 당신은 흘러 왔습니다. 졸졸, 웃으며 흐르는 시냇물이었다가, 거친 숨소리를 내는 범람의 계곡이었다가, 잠시, 갈대숲에 머물다 새로운 물살에 밀려 유유히 당신은 흘러 오셨습니다. 지금, 당신의 얼굴로 모여든 물줄기를 봅니다. 세월을 봅니다.

당신은 세월을 가슴에 고스란히 담아내셨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시대라고 부릅니다. 바다라고 부릅니다. 당신은 바다가 되셨습니다. 이젠 당신의 바다에서 해는 뜨고 지고, 외로운 섬들도 잠이 들 것입니다. 편안히 계셔 주십시오. 우리가 그리로 흘러가겠습니다.




화포천에서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제 자리를 두 바퀴 돌았다. 그분이 새가 되었을 리도 없을 테고 내가 새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닐 텐데, 꼭 찍어야만 되겠다는 오기가 솟구쳤다. 왜 찍었을까. 사진을 찍어 놓고 나에게 물었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의 침묵은 백 가지의 소리보다 힘이 세다. 손이 쉬려웠다.


바람이 모여드는 강가에서
어른들은 낡아지고 있었지
물빛이 좋다고 웃기만 하던 사람
술잔 뒤에 숨어서 탄식만 하던 사람
저마다 왔던 길은 다른 것인데
외로움이 흘러 흘러 한길이 됐지
잠자리 하나가 어깨를 치고
참붕어 햇살 물고 물 따라가고
갈대밭 왜가리는 제 길만 갈 뿐
인연이란 이렇게 한 길로 가는 거지
함께 할 때가 진짜 외로운 거지
흘러감이 정해진 강물이라 하여도
머물 때는 제 빛으로 빛나야 하지
둑방, 노을 속에 사라지는 자전거처럼
우리도 시간 속에 저물어 갔지
구두를 벗어놓고 울기만 했지.

-詩 강가에서, 전문





겨울이 되면 나무는 입을 닫아 버린 듯하다. 나무가 침묵할 때는 해가 말을 하고 사람이 그 말을 이해하려고 한다. 비로소 풍경이 되는 것들. 비로소 봉하에서, 화포천에서, 풍경이 되어버린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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