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이야기
저문 마음에 꽃물이 들었다고
머언 산 바라보시다가
발소리 분분하게 새벽에 떠나신 님
서산에 노을이 곱게 물들 때,
가슴마저 붉어지시면
내 님 다시 오시겠지
짙푸른 하늘만 보고 또 보고.
-詩 소풍, 전문
병원 옥상정원에서 아들의 담배를 뽑아 피우시며
이제는 달의 저쪽을 더듬으시는
당신의 시든 눈가에 걸린 잘 익은 달빛에도
아버지, 당신의 이마가 까매지셨다고
사라진 당신의 길들이 아들의 얼굴에 생겼다고
-詩 아버지의 길 中에서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꾸어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그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그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다.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노무현 대통령 후보 출마 연설 中에서
당신은 흘러 왔습니다. 가파른 골짝과 평평한 들판을 지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무위의 法을 체득하여 당신은 흘러 왔습니다. 졸졸, 웃으며 흐르는 시냇물이었다가, 거친 숨소리를 내는 범람의 계곡이었다가, 잠시, 갈대숲에 머물다 새로운 물살에 밀려 유유히 당신은 흘러 오셨습니다. 지금, 당신의 얼굴로 모여든 물줄기를 봅니다. 세월을 봅니다.
당신은 세월을 가슴에 고스란히 담아내셨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시대라고 부릅니다. 바다라고 부릅니다. 당신은 바다가 되셨습니다. 이젠 당신의 바다에서 해는 뜨고 지고, 외로운 섬들도 잠이 들 것입니다. 편안히 계셔 주십시오. 우리가 그리로 흘러가겠습니다.
바람이 모여드는 강가에서
어른들은 낡아지고 있었지
물빛이 좋다고 웃기만 하던 사람
술잔 뒤에 숨어서 탄식만 하던 사람
저마다 왔던 길은 다른 것인데
외로움이 흘러 흘러 한길이 됐지
잠자리 하나가 어깨를 치고
참붕어 햇살 물고 물 따라가고
갈대밭 왜가리는 제 길만 갈 뿐
인연이란 이렇게 한 길로 가는 거지
함께 할 때가 진짜 외로운 거지
흘러감이 정해진 강물이라 하여도
머물 때는 제 빛으로 빛나야 하지
둑방, 노을 속에 사라지는 자전거처럼
우리도 시간 속에 저물어 갔지
구두를 벗어놓고 울기만 했지.
-詩 강가에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