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책과 세계』︎

by 결락



텍스트는 콘텍스트를 이길 수 없다.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는 먼 옛날부터 있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가축을 키우고 농사를 짓던 때는 세계에 대한 화합이 있었다. 그러다가 문자를 발견하고 다듬더니 누구는 경직되게, 누구는 화려하게, 누구는 용감하게, 누구는 정교하게 텍스트를 다듬다가 콘텍스트를 더듬었다.


그러나 세계는 글자 밖에 존재하고 ‘원래 그대로’였다. 인간이 있었거나 없었거나 세계는 원래 그대로 운영되었고 원래 그대로의 질서로 굳어지고 흩어지기를 반복해 온 것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호모들은 세계가 두려웠을 것이다. 두려움을 카오스라 부르더니 나름의 질서를 인위적으로 배열하고 코스모스라 불렀다. 질서가 깨지는 혼돈이 두려워 텍스트를 기록한다.


신처럼 숭앙받는 텍스트가 있고, 피와 살이 튀기는 텍스트가 있고, 국가라는 괴물 ‘리바이어던’을 걱정하는 텍스트도 있고, 세계를 염려한 귀신이 무덤을 뛰쳐나와 쓴 텍스트도 있다. 말해 무엇하랴. 의식주는 기록으로 레시피와 노하우가 전수되고 하다못해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먹기 위해선 글자를 알아야 한다. 원래 세계에는 없던 글자들이었다. ‘내던져진’과 ‘원래 그대로’의 투쟁은 장엄을 넘어서는 서사가 있다면 ‘내던져진’과 ‘내던져진’의 전쟁은 서사가 없고 이기가 가득하다. 근본 없는 텍스트를 남발하며 ‘원래 그대로’의 본성은 애써 무시하고 알은 채 하려 하지 않는다. 질서와 도덕은 권력이 되고 그들만의 ‘원래 그대로’를 주장하며 눈을 감는다. 인문학의 고갈이며 텍스트의 남발이다.『︎책과 세계』︎의 저자 강유원의 말 대로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게 되는 것이다.


병들지 않으면 쉬지를 못하니 차라리 책을 든 병든 인간이 그나마 형편이 좋아 보인다. 비록 세계를 조금만 이해하는 텍스트라도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면, 여전히 ‘원래 그대로’인 세계에 안도하게 된다. 내던져진 인간은 원래 그대로의 세계를 이길 수 없다. 인간이 세계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 낸 문명은 ‘창백한 푸른 점’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미집에 불과하다. 어디까지나 세계 안의 문명일 뿐이지, 문명 안의 세계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책과 세계』︎는 한낱 개미 같은 인간들의 투쟁사다. 열몇 개의 투쟁사를 서사로 엮은 저자의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저자도 투쟁하였을 것이다. 텍스트 전반에 짙게 깔려있는 저자의 허무한 심정은 미처 내뿜지 못하고 남아 있는 폐 속 깊이 남아 있는 숨처럼 절박하고 쓸쓸하다.

‘먼 옛날의 서사시들은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 없어도 세계가 쓸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또다시 같은 것을 알아차리는 건 너무 허망하다. 쓰라린 것이다.’


우리는 태생부터 쓸쓸하였을까. 책의 말미에 쓰인 문장은 아직도 쓰라리다.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죽어간 인간들이 묻혀있는 무덤 앞 비문처럼 비통하고 허망하다. 세상의 모든 무덤을 돌아다니며 추모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며칠이 쓸쓸하였다. 먼 옛날 박동대던 초원의 북소리 같은.


인간이 아닌 생명들이 지구에 가득할 때의 그네들도 저편의 그림자로 사라졌듯이 인간도 세상의 그림자로 사라질 것이다. 부디 병든 인간들의 부질없는 글자이어도 최후까지 성실하게 새겨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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