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잃지 않는 삶을 향하여

『연당역·예미역』

by 정정심

"인생은 짧다"라는 말을 누가 처음에 했는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공감하는 말 중 하나일 것이다. 젊어서는 인생이 결코 짧다고 느끼지 않았다. 살아온 날들이 살아가야 할 날들보다 많아진 지금에서야 그 말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8, 90년의 세월이면 그리 짧다고만 할 수도 없는데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살며 무언가를 이루고, 성과를 거두기에는 그리 길지 않은 날들이라는 게 우매한 나의 깨달음이다.


10대에는 학교에 다니며 주어진 의무를 다하기에 바빴다. 20대와 30대에는 무엇을 먹고살아야 하나, 어떻게 돈벌이를 해야 하나,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잘못된 길은 아닌가, 삶에 대한 고민이 쌓이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며 직장과 가정을 얻게 되고 넘어지지 않으려 쉼 없이 앞을 보며 달렸다. 40대가 되어도 여전히 길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아직 독립 전이고, 모아놓은 돈은 여전히 부족했다. 건강에 이상 신호가 생겨 운동을 시작하며 또다시 바쁘게 전력 질주했다. 문득 고개 들어 앞을 보니 50대를 알리는 깃발이 나를 맞았다.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로이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삶, 바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이다. 밥 먹고 친구 만나고 수영장에서 가볍게 수영을 즐기는 일상생활은 30년쯤 더 할 수 있다고 후하게 쳐줄 수도 있지만 책 읽고, 글 쓰고, 연주회를 찾아가고, 튼튼한 두 다리로 자유로이 여행을 다니는 삶은 넉넉잡아 20년쯤 남지 않았을까. 요즘 들어 부쩍 내게 허락된 건강한 삶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고 느낀다. 이런 자각 덕분에 될 수 있으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마음속에 오래 담아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서 실천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평창 대관령 국제음악제 다녀오기. 몇 년 동안 벼르고 있던 일 중 하나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음악제 기간에 맞춰 평창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매번 다음 해에 꼭 가면 되지, 했는데 내게 대관령 국제음악제가 일순위는 아니었던지 이제야 찾게 되었다. 엄밀히 말해 “알펜시아 리조트에 일주일간 머무르며 대관령 국제음악제 감상하기”가 내가 바라던 바다. 대관령 국제 음악제가 열리는 연주회장이 알펜시아 리조트 내이기 때문이다. 리조트에서 휴식도 취하고 식사도 하며 여유롭게 음악에만 몰두할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은가. 아쉽게도 비싼 숙박료 때문에 알펜시아 리조트에서의 숙박은 포기해야 했다.


오랜 꿈이었던 대관령 국제음악제 개막공연과 처음 접하는 “트리오 콘브리오 코펜하겐”의 연주를 감상했다. 사흗날 아침, 한껏 달뜬 마음으로 연당역을 향해 차를 몰았다. 평창을 떠나오며 일주일간 알펜시아 리조트에 머물며 대관령 국제음악제 프로그램을 즐기려면 몇백만 원의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직장생활을 이제는 그만 접고 싶은데 남은 내 삶을 즐기려면 돈은 여전히 필요하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내 삶의 아이러니다.


연당역을 찾아가는 길, 시원한 커피 한잔이 생각나던 차에 카페의 위치를 알리는 길가의 이정표가 반갑다. 통행량이 많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카페가 적자 없이 운영될까, 언젠가는 작은 서점이나 북카페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 이런 작은 카페를 만나면 경제적 득과 실을 생각하게 된다. 카페를 나오며 주인장의 허락을 받고 부끄러운 나의 졸작, “괜찮아, 잘했어! 기차여행”을 한 권 놔두고 온다. 이 카페를 찾는 누군가가 내 책의 일부분이라도 읽어봐 주기를 바라며…….


철조망 사이로 드러난 연당역

연당역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굳게 잠겨있다. 철문밖에서 연당역을 바라보는데 거리가 멀다고 느껴진다. 물리적인 거리는 30미터쯤 될까 말까 한데 철문이 주는 심리적 거리는 500미터 이상이다. 역 주변에 있는 키 큰 옥수수와 참깨꽃이 삭막한 연당역 주변을 지킨다. 역 앞 다리 아래에 주민 쉼터가 있고, 거기서 휴식을 취하는 트럭 기사들도 몇 명 보인다. 게다가 빈 집이 아닌, 사람이 거주하는 주택도 몇 채 보이는데 나는 이곳 연당역에서 한없는 적막함과 쓸쓸함만을 보게 된다.


연당역을 떠나 예미역에 닿으니 내가 연당역에서 느꼈던 쓸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예미역 앞 허름한 미용실의 네온사인은 살아있음을 알리는 생명의 표식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식육식당의 청국장과 반찬으로 나온 가지볶음의 맛은 탁월했고, 역이 도로보다 낮은 곳에 있어 행여 수해 피해나 입지 않을까, 싶은 예미역에는 기차를 타려는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도로변에는 자전거를 차에서 내리는 사람과 배낭을 메고 성큼성큼 걷는 노인의 얼굴도 보였다.


예미역 앞에 있는, 노후된 상가

예미역 주변 역시 쇠락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삶의 의지를 놓지 않는 강인함이 아직은 남아있었다. 반면 연당역은 꺼져가는 장작에 물을 퍼부어 불씨마저 완전히 사그라든 듯한 모습이었다. 작은 희망이라도 볼 수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를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열차가 서지 않는 곳이라고 해서 다 적막하고 쓸쓸하지는 않다. 역 주변의 자연경관이나 역사(驛舍) 자체가 뿜어내는 존재감, 번성하던 예전의 흔적만으로도 역은 얼마든지 빛난다. 한 줄기 빛을 잃지 않는 삶……. 애처로운 연당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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