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백역』
함백역은 첫돌을 맞이하는 아기가 깨끗이 목욕을 하고 꼬까옷을 차려입은 모습이다. 여객열차가 오래전부터 서지 않고, 직원도 근무하지 않는다. 역사(驛舍)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을 뒤엎고 완전히 새 건물이다. 바닥에 깔린 잔디와 군데군데 놓인 디딤돌, 잘 손질된 나무가 역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철조망에 매달려 있는 다양한 크기와 색상의 자전거 바퀴도 제법 멋스럽다. 잘 정돈된 집에서 가족들이 편히 쉴 수 있듯 함백역도 언제든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다.
함백 탄광과 함께 전성기를 누리던 함백역은 석탄산업의 사양화로 1998년에 간이역이 되었다. 역사를 관리하던 한국철도 시설관리공단은 건물의 노후화와 청소년 탈선장소가 될 우려를 이유로 2006년에 역사를 철거했다고 한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지난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었던 함백역을 복원하기 위해 힘을 모았고, 2008년에 함백역의 모습을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예전에 지어진 역명은 보통 행정구역의 이름에서 따오는 경우가 많다. 영주역, 춘양역, 부산역, 대전역처럼 말이다. 반면 ‘함백역’이라는 역명과 ‘함백’이라는 지명은 ‘함백광업소’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탄광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수 있는 일화다. 정선군 신동읍 방제리와 조동리를 일컬어 사람들은 여전히 ‘함백’으로 부르고 있다.
아쉽게도 역사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닫혀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몇 가지 전시물이 보인다. 혹시 관리자 연락처라도 있을까 싶어 역사 주위를 돌며 살펴보는데 연락처는 보이지 않고 코레일 마크가 새겨진 차가 눈에 띈다. 아마도 시설물 점검을 하러 온 전기분야 직원들인 듯하다.
“안녕하세요, 제가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는 역 직원인데요. 혹시 함백역으로 들어가는 비밀 번호 아시나요? 잠깐만 둘러보려고 하는데요.”
사연 많은 역이니 이왕 온 김에 맞이방 안까지 보고 싶어 용기를 내 물어본다.
“함백역은 우리가 관리 안 해요. 마을 주민들이 직접 관리해서 우리도 비밀 번호는 몰라요.”
평일이라 방문객의 발걸음이 뜸해 문을 닫아놓았나 보다. 막상 들어가 볼 수 없다 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인생에서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더 크게 남듯 여행에서도 해보지 못한 것,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보다 크게 마련이다.
역의 수호신처럼 서 있는 비석의 글귀에 따르면 맞이방 안에는 기록 사랑마을 전시관이 있다고 했다. ‘기록 사랑마을’이란 행정안전부 소속 국가기록원에서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을 지정한 것인데 탄광촌의 생활상과 기록들을 간직하고 있는 조동8리 안경다리 마을이 우리나라 1호 기록 사랑마을이란다. 조금 전에 지나온 굴다리가 떠오른다. 안 그래도 동그라미 두 개가 보이는 통행로가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의 이름을 따서 안경 다리마을로 불리나 보다.
마을로 다시 내려가기 위해 역에서 나오려는데 선로를 점검하는 시설직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한낮 기온이 35도를 훌쩍 넘는 지금, 그들은 태양이 뱉어내는 열기와 땅이 내뿜는 열기를 고스란히 받으며 철길을 걸으려 한다. 더위와 열로부터 직원들을 보호해 주는 것은 얼굴을 가리는 모자뿐이다. 기차가 다니는 선로에 문제가 없는지 직원들은 두 발로 직접 걸으며 확인한다. 선로를 설치하는 것도 그들의 일이요, 망가진 선로를 보수하는 것도 그들의 일이다. 힘도 힘이지만 나름의 요령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젊은 신규 직원들이 멋모르고 들어왔다가 실제 일을 해보고는 이직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시설 직렬이다.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돈 버는 일은 누구에게나 녹록지 않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희망의 별,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같이 함백역은 앞으로도 그 자리를 빛내며 희망을 품고 있을 것이다.
노란 별 모양의 조각상에 적힌 글을 읽는다. 함백역이 희망의 별로 불릴 수 있는 이유는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염원이 모여 다시 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사람이 아닌, 모두의 마음이 모여 이루어낸 성과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직장생활에서도 나름의 희망 한 조각쯤은 가슴에 품고 있어야 견뎌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지 오래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돈일 수도, 자아 성취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개인적 발전일 수도 있겠지. 몇 년 남지 않은 직장생활을 해나가는 힘이 이제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이 되려나.
마을로 갔으나 주민들은 만날 수 없었다. 곱슬머리의 외국인과 다른 지역에서 왔다는 노동자들이 땅을 파헤치며 뭔지 모를 공사를 하고 있을 뿐. 문을 굳게 닫은 이발관과 작은 상점과 다방과 이제는 마을의 담장벽화로만 만날 수 있는 광부들의 얼굴이 보인다. 호젓함을 넘어 왠지 모를 서러움이 내 가슴속을 채운다. 마을을 둘러보고 나니 함백역이 주는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