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봉역』
“나는 이제 퇴근이에요. 오전에만 근무하거든요.”
명봉역에서 내려 승강장에서 한참을 머물던 내가 걸어 나오자 여사님 한 분이 역사(驛舍) 문을 잠그며 이야기를 건넨다.
“아, 그러세요. 늦게 나와서 죄송합니다.”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던 여사님은 명봉역 청소를 담당하는 인근 마을 주민이라고 했다.
“오후에는 기차가 없나 봐요?”
“기차 올 시간 되면 보성역에서 자동으로 문을 열어줘요.”
여사님은 기차에서 내린 동네 어르신 두 분을 자신의 차로 모셔다드릴 생각인가보다. 어르신들은 괜찮다며 손사래까지 치고는 여사님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차에 오른다. 이런 곳에 버스가 오기는 오는 건가 싶을 만큼 역사는 외떨어져 있다.
명봉(鳴鳳)역, 이름 그대로 봉황이 우는 역이란다. 명봉역은 전남 보성군 노동면 명봉리에 위치한다. 명봉이라는 지명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봉화마을 뒷산에 사는 수봉황과 봉동마을 뒷산에 사는 암봉황이 명봉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그리워하는 형국이라고 해서 생겨났다고 한다.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라는 건 이곳이 그만큼 오지라는 소리가 아닐까.
여사님이 어르신을 태우고 떠나자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도로가 있긴 하지만 차의 통행량이 많지 않은 듯하다. 역 앞에는 집 두 채가 서 있는데 빈집인 듯 대문이 굳게 닫혀있다. 보통은 무인역이라고 해도 기차가 다니는 곳이면 사람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남아있는데 명봉역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깊은 숲속에 혼자 뚝 떨어진 기분이랄까. KTX가 다니면서 역사를 외곽으로 이전한 곳은 옆 앞이 허허벌판인 경우를 종종 보았다. 여기는 무궁화호가 서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어쩜 이렇게나 쓸쓸한지……. 이런 곳에 아직까지 열차가 서는 게 신기할 뿐이다.
명봉역은 빨간 벽돌집이다. 역사(驛舍)를 빨간 벽돌로 지어놓아 다른 기차역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여사님이 잠그고 간 역사를 오래도록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한다. 첫째, 시내버스가 오면 무조건 올라탄다. 둘째, 무작정 길을 따라 걷는다. 일단 버스를 기다려보기로 한다. 30분 동안 빨간 역사를 보며 서성거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그러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길이 난 곳을 따라 그냥 걷는 방법밖에는 없지 않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할지의 문제가 남지만 검색을 하지 않는다. 그냥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되니까. 어디로 가든 반드시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일단은 여사님이 차를 몰고 가던 방향으로 가기로 한다. 조금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온다. 큰 도로를 계속 걸을 것인지, 아니면 좁은 길을 따라갈 것인지 선택하는 일은 쉽다. 난 언제나 큰 도로보다는 좁은 길 걷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좁은 길을 따라 걷다가 달려드는 큰 개 때문에 혼비백산한 적도 있고, 길이 막혀있어 되돌아 나온 적도 많지만 난 그래도 좁은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좋다. 오늘은 이 길에서 어떤 것들과 마주하게 될까,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은 늘 설렘 가득한 일이다.
도로 옆에 심어놓은 금사철이 노랗게 물들었다. 햇볕을 잘 받는 곳이라서 그런가, 정말 꽃보다 더 예쁜 진노랑이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철길 건널목이 보인다. 건널목 반대편에 집 한 채가 보이는데 TV 수신기가 보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듯하다. 철길 건널목 부근에 사람이 살고 있으면 관리하는 역에서는 신경이 많이 쓰인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 살건, 기찻길 옆 기와집에 살건 사람이 기찻길을 수시로 건너다녀야 하는 상황이면 기차역 입장에서는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다. 건널목마다 차단기가 있기는 하지만 고장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고, 더러는 차단기를 무시하고 통행을 해버리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차단기조차 없는 걸 보니 여기가 폐선(廢線)인가, 아니면 집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건가, 혼자서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아니지, 쓸데없는 걱정은 아니다. 철도인이면 당연히 하게 되는 안전에 대한 걱정이다.
조금 걷다 보니 목이 마른다. 가지고 간 물은 동이 났고, 설상가상으로 배도 고프다. 보건지소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어 물이라도 얻어 마실까 했는데 아쉽게도 문이 닫혀있다. 다행히 조금 더 가니 마을이 보인다. 그럼 그렇지, 역 근처에 마을이 있어야지! 마을이 만나니 한없이 반갑다. 물을 얻어 마실 요량으로 마을 초입에 있는 마을회관을 기웃거린다. 할머니 몇 분이 음식을 차려내기에 분주하다.
“안녕하세요? 오늘 마을 잔치 하시나 봐요. 다 모여계시네요? 물 좀 받아 갈 수 있을까요?”
“어디서 왔소?”
할머니 중 한 분이 묻는다.
“경북에서 왔어요. 명봉역 보려구요.”
“멀리서 왔구만. 이거 쪼까 잡숴보쇼.”
수박을 썰던 할머니가 내게 한 조각을 권한다. 배고픈 참이라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냉큼 받아먹는다. 올해 첫 수박 맛을 이곳, 명봉에서 볼 줄이야. 달고도 시원한 수박이 나의 허기와 갈증을 만나 더욱 달콤하게 느껴졌다. 염치없이 너무 허겁지겁 먹은 탓일까. 다른 할머니가 내게 하는 말, “이것도 쪼까 잡숴보쇼.”
이번엔 떡이다. 기정떡. 우리 지역에서는 기지떡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에선 기정떡이라고 부른다. 이 지역에 기정떡이 유명한 듯하여 어제 사 먹으려다가 낱개로는 팔지 않는다는 소리에 방앗간에서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오늘 뜻밖의 장소에서 맛보게 될 줄이야.
낱개 포장된 기정떡의 포장지를 벗겨 그 자리에서 먹어 치우고 싶었지만 나를 쳐다보고 있는 할머니들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떡을 가방 안에 잠시 넣어두기로 한다.
“같이 밥 먹을라요?”
떡을 건넨 할머니는 나의 배고픔을 꿰뚫어 보는 듯 이번에는 식사를 권한다.
“예? 아니요, 괜찮습니다.”
방안을 둘러보니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듯 앉을 자리가 없다. 배가 너무 고프지만 체면치레는 해야 할 것 같아 일단 거절한다. 마음속으로는 한 번만 더 물어보시면 염치 불고하고 바닥에 앉아서라도 밥을 얻어먹을 생각이었는데 아쉽게도 할머니는 더는 권하지 않으셨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물통에 물을 받아 나오면서 밥을 좀 달라고 할 걸 그랬나, 후회막심이다. 근처에 식당도 없는 거 같은데 오후 늦게까지 기정떡 한 조각으로 버텨야 한다.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본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마을회관에 모여있어서 그런지 조용하다. 생각보다 꽤나 큰 동네다. 동네 담장에는 벽화를 그려놓았다. 꽃과 나무, 장독대, 여인들의 베 짜는 모습 등 주제도 다양하다. 담을 지나 동네의 끝자락인 듯싶은 곳에 작은 정자가 있다. 정자 주위로는 냇물이 흐르고 주변은 온통 나무와 이름 모를 식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6월의 볕치고는 꾀나 더운 날씨인데 정자에 앉아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마을에서 정자까지는 5분 이내의 거리다. 그런데도 마치 딴 세상이기나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아마도 바람 소리 때문이 아닐까.
정자 안에서 바람 소리에 귀기울인다. 다른 일을 할 것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조용히 앉아 바람 소리를 듣기만 하면 된다. 갖가지 나뭇잎들이 바람을 만나 내는 소리가 황홀하다. 더러는 포르테로, 또 더러는 피아니시모로 나를 찾아온다. 내 귀를 편안하게 하는 소리가 마음 깊은 곳까지 전해진다. 사방이 탁 트인 탓에 바람의 향연이 더욱 다채롭다고 여겨지는지도 모른다. 나는 정자에 앉아 바람이 내게 베푸는 연주회에 오롯이 몰두한다.
예전에, 궁중에서 ‘쥐부리글려’라는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해 입궁한 궁녀들에게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는 의미로 횃불로 입을 지지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궁중에서 입단속 잘하라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현재를 살아가는 나 역시 말의 함정에 빠져들 때가 있다. 상대방이 속상해서 한 말을 어느 순간, 내 처지를 합리화 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 ‘아차, 실수했구나’라며 후회하지만 내뱉은 말을 되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직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한 탓이다. 사람의 말은 걸러낼 게 많지만 자연의 소리는 마음껏 받아들여도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
정자에서 마을과 연결된 데크를 지나오며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명봉은 나에게 봉황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바람의 설레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