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영혼 위에 새겨진 상흔이 낳은 환상
지나친 아름다움은 가끔 지독한 슬픔의 정서를 줄 때가 있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 동화임에도 불구하고 동화 속 스토리가 권선징악과 해피앤딩으로 늘 끝나지는 않습니다.
많은 동화들의 원형은 오히려 잔혹하고 신파적이며 자극적이었습니다.
세월을 거치고 구전되고 각색되며 지금의 정제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더불어 동화책 삽화가들의 그림 또한 성장을 거듭하였습니다.
산업혁명으로 중산층이 등장하고 자녀교육에 돈을 투자하기 시작하며 출판업과 동화책 시장이 커지는 와중에 일러스트레이션의 전성시대 - Golden of illustration의 시기- 를 맞이하게 되는 게 영국에서 시작된 이러한 흐름이 미국으로 번져 20세기 초반에 미국에서 일군의 뛰어난 작가들이 출현하게 됩니다.
버지니아 프랜시스 스테렛은 1900년 시카고에서 태어나 31살에 요절하고 3권을 책을 남긴 작가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이름의 그녀는
버지니아라는 이름이 주는 여성스럽고 처연한 느낌이 작품에서도 드러납니다.
둘 다 환경과 삶의 궤적은 달랐으나 섬세하고 예민한 성향, 타고난 예술가라는 점이 유사점입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듯 버지니아 스테렛은 내면의 상상력에 의존해 환상의 세계를 창작해내었습니다.
그녀 나이 겨우 19세에 첫 번 째 책을 출간합니다.
Old French Fairy Tales (1919-1920)은 다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프랑스 작가 Sophie Postopchine 원작 Ségur 선집의 동화책이었습니다.
이듬해에 그녀는 나다니엘 호손의 책 Tanglwood tales의 의뢰를 맡아 작업하게 됩니다.
그녀의 짧은 삶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시카고 예술 학교를 들어갔지만 어머니가 병환으로 앓아눕자 1년 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게 됩니다.
부모님의 죽음과 병마라는 고단한 삶 속, 조용히 침잠하며 그림을 그리며 견디어나가던 습성이 생계를 위한 사회생활 속에서 성실함으로 인정받아 동화책 삽화가로서 성공적이 데뷔를 이끌어내게 만듭니다.
그러나 1923년부터 그녀 자신도 병마에 시달리게 되고 유작이자 그녀를 지금까지 유명하게 만든 <아라비안 나이트>를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이국적이고 신비로우며 정교하기 그지없습니다.
버지니아는 평생 미국의 중부와 중서부인 미주리와 시카고에서 보냈고 전혀 외국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의 동화,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고 아라비안 나이트는 당시 가장 근대화되고 도시화된 상징 미국이라는 환경과는 거리가 먼 곳입니다.
밟아보지 않은 이국적인 땅의 모습을 온전히 상상해내어 창조한 그녀의 재능은 그래서 천부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화려한 색감과 디테일한 장식적 묘사가 자칫하면 그림의 테크닉적 완성도에만 주목하게 만들 것 같지만
오히려 너무나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라 묘한 애수를 느끼게 만듭니다.
밝은 색상을 주로 쓰되 과감하게 사용하는 검은색과 물결치는 선묘는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았고 그녀 특유의 화풍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녀가 창조해 낸 그림은 동화의 스토리를 눈앞에 바로 보여주듯이 구현해주기도 합니다.
나아가 스토리가 주는 상상력을 뛰어넘는 경지라고도 여겨집니다.
지금에 와서 동화책의 삽화는 책의 부속물이 아닌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장르로서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결과를 낳게 많든 것이 바로 버지니아와 같은 작가들에 의한 것입니다.
버지니아의 삶이 가진 다소 드라마틱한 비극성을 알고 작품을 바라보면 더 큰 파문과 울림을 가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