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의 유희
2010년 노벨상 문학작가로 보르헤스와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대표자로
저항문학 작가로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도 나갔던 기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 바르고스 요사
1988년도에 출간된 그의 작품 <새엄마 찬양>은 바르고 사가 우리에게 지운 이미지에 위배되는 소설입니다
철 지난 에로티시즘이란 주제로 엮은 이 소설이 줄거리는 흔히 말하는 아침드라마 같은 자극적인 막장 스토리입니다.
요사는 워낙 거장급 작가로 남미의 현실을 잘 다루었기에 사회참여적 소설이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는 <새엄마 찬양>으로 대표되는 에로티시즘 계열의 소설을 꾸준히 썼습니다.
그가 <새엄마 찬양>에서 다룬 에로티시즘이 특별한 이유는 소설 속 여섯 개의 그림을 등장시켜 문자와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파격적인 시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학과 미술은 예전부터 불가분의 관계로 화가들은 전설, 신화를 그림의 소재로 즐겨 다루었고 소설가들은 그림을 소설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시켰습니다.
소설가와 화가들의 교류 또한 활발하고 빈번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그림"은 단순한 소재 혹은 모티브가 아니라 작품의 깊이와 줄거리가 가진 통속성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총 14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에는 소제목이 달려 있습니다.
그림은 총 6점으로 6개의 장 앞머리를 장식합니다.
페루의 중산층 가족 리고베르토 씨와 재혼한 아내 루크레치아와 아들 알폰소 하녀 후스티타가 등장인물의 전부로 줄거리는 양아들과 근친 관계에 빠져 파국으로 치닫는 매우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 등장하는 그림들은
야코프 요르단스의 <심복 기게스에게 아내를 보여주는 리디아의 왕 칸다 올레스>
프랑수아 부셰의 <목욕 후의 디아나>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아모르와 오르간 연주자와 함께 있는 베누스>
프랜시스 베이컨의 <머리 1>
페르난도 데 시슬로의 <멘디에타로 가는 길 10>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입니다
그림이 나오는 장은 원래 그림의 스토리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등장인물들의 환상을 교묘히 병치시켜 마치 다른 소설을 읽는 느낌을 줍니다
이 작품은 그래서 "포스트모던 에로티시즘 소설의 새로운 지평"이라고 평가를 받고
비평가 라파엘 콘테는 "겉보기에는 에로틱한 소설이지만 실제로는 짧은 대작"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성애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와 비정상적인 캐릭터 구현만 놓고 보자면 실은 아무런 매력이 없는 소설이지만
문학 형식의 실험과 파괴, 언어적 유희가 소설 전반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요사 스스로도 " 그림에서 느껴지는 에로틱한 이미지를 언급하는 유희적 글쓰기이다"라고 이 작품에 대해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나 문장을 가지고 노는 그의 수려하고 풍부한 문체는 바르고스 요사의 치밀함과 조밀함을 한 번 더 느끼게 해 주며
18세기의 에로티시즘 문학이 가진 잔혹함과 무거움에서 완연히 벗어나
20세기의 정서에 맞는 가볍고 화려한 에로티시즘을 만들어내었다는 점 또한 매력적입니다.
그토록 성애에 집착했던 리고베르토가 부인과 아들의 근친상간을 알게 디고 나서 루크레치아를 내쫓고 종교에 귀의해 스스로 욕망을 거세하는 모습은 바지막으로 등장하는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와 맞물리며 웃음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를 통해 바르 고사 요사식의 우아한 유머로 책의 마무리가 이루어져 리고베르토 가족의 비극적 운명이 희석되어 독자로서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