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Days
이비자의 2박 3일 중 오늘은 올드 타운을 구경하고,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는 날이다.
어떤 사람들은 스페인에 오면 이비자에서만 쭉 머물다가 가고 싶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지내다 보니, 많은 곳을 못 보고 일부분만 보고 돌아가기 때문에 무척 아쉬웠다. 다음에 오면, 세비야, 그라나다, 론다, 이비자, 마요르카 등 못 봤던 곳을 중심으로 집중 투자하고 싶어 졌다. 이비자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환락의 섬 이비자를 기억할 테지만, 난 그런 문화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섬 자체에 대한 모습이 그립고 아직 못 본 곳이 너무 많기에 그 부분들이 궁금해서 그리워질 것 같았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택시를 타고 이비자 올드 타운으로 갔다.
이비자의 택시비는 많이 비싸지만, 나는 시간이 아까운 관광객이기 때문에 돈보다는 시간이 아까워서 택시를 타야 했다.
이비자의 또 다른 매력. 올드타운에서 이비자를 바라보다.
택시 타고 이비자 올드타운으로 부탁드리자, 꼭대기까지 와서 외곽에 내려주었다. 외곽에서도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있어서 10분 정도 시간을 내어 이비자 항을 바라보았다.
이내 내부로 들어왔는데, 올드 타운이라서 마을 같은 느낌이 강할 줄 알았는데 요새의 느낌이 들었다. 성벽 같은 곳에 문이 있길래 들어가니, 조명들로 길을 안내해놓았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이내 확 트인 공간이 나왔다. 아직 외곽을 둘러보는 길이기 때문에 내부의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땡볕에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다시 올드타운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정신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타운 내로 들어가는 좁은 길이 나왔다.
그 길 앞에 가서야, 여기가 마을이라는 안내판도 보이기 시작했다. 올드타운 내부는 페인트도 다 까지고 벽도 많이 낡은 빈티지 느낌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천천히 둘러보니 사람이 사는 공간들이었다. 그래서,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조용 셔터만 누르면서 다녔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관광객들이 큰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조용 다녔는데 배려하는 문화가 보기 좋았다.
다들 눈으로 보는 것까지만 하지, 더 이상 그 사람들의 생활공간에 다가가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문화마을이나 이러 ㄴ곳에 가면, 자기 집처럼 들어가는 관광객들이 인증샷을 찍기 위해 민폐를 무릅쓰고 그냥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생활하는 주거 공간인데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상당히 방해를 준다. 부산 감천문화마을에서는 실제로 주민들이 관광객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곳의 문화와 생활을 존중하는 의식이 꼭 필요한 것 같다.
올드타운의 길이 하나같이 예쁘다. 천천히 구경하며 다니는데 지나가는 길마다 하나같이 예뻐서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손에 시원한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더운데 이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제일 높은 전망대로 향했다. 거기서 바라보는 이비자 항구의 모습이 그렇게 예쁘고 멋지다고 하길래 큰 기대를 가지고 올라갔다.
전망대로 가는 길은 마을과 다르게 돌담길이 나왔다. 여러 모습이 올드 타운에 있기 때문에 카메라를 가지고 온 여행객들이라면 나처럼 셔터 누르기에 정신이 없을 것 같다.
골목 사진을 찍으려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의 의도와 다르게 그 타이밍에 자전거를 탄 사람이 찍히면서, 의도와 다른 사진이 찍혀서 기분이 한층 더 좋아졌다. 이 맛에 손에서 카메라를 놓을 수가 없다. 다시 길을 따라 열심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기는 건물들의 높이가 좀 있어서 그늘 길이었기 때문에 시원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여태 마을이 화이트 톤이었다면 여기는 웜(Warm) 톤이어서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군데군데 기념품을 파는 상가들이나 시원한 음료를 파는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있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전망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나왔다. 이비자의 모습이 한눈에 확 들어오는데, 이 장면을 만나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이다.
하늘에 많은 구름들과 푸른 바다까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에 한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바라보면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즐겼다.
나의 여행도 이제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이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서 계속 사진 찍고, 여러 생각을 하며 이 순간을 즐겼다. 그러다 내려가서 점심을 먹고, 짐도 찾아서 다시 공항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올드 타운은 넓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구경거리가 많고 내려가는 길도 다양했다.
내려가다 보니 또 다른 전망대가 나왔다. 거기서 강아지 한 마리가 성벽 위에서 바람을 맞이하며 즐기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포즈를 잡는다. 심지어 아이컨택도 해준다. 사진을 아는 녀석이었다. 이 녀석 덕분에 잠시나마 즐겁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이 사진을 전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기에 그냥 소장하기로 한다.
다시 내려가다 보니, 중간중간 나오는 마을들이 위에서 봤던 마을 대비 훨씬 아름다웠다. 이제야 사람이 사는 공간에 발을 내디딘 것 같았다.
한참을 구경하며 내려가다 보니, 방향을 잃었다. 그래서, 일단 보이는 곳으로 무조건 직진했더니 다시 오르막길이 나왔다.
이때 돌아갔어야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계속 걷다가 결국 두 바퀴를 더 돌고 나서야 내려갈 수 있었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내려가도, 길이 워낙 복잡하고 다양해서 계속 헷갈렸다. 그냥 모르면 물어보는 것이 가장 나은 것 같다.
길을 헤매면서 걷는데, 계단에 앉아 반려견과 휴식을 취하시는 아저씨의 모습과 푸른 하늘을 보니 낭만이 가득해 보였다. 여전히 길을 못 찾아서 그냥 걷다 보니 사람 냄새가 나는 골목이 나왔다.
마치 일부러 이렇게 꾸민듯한 모습이 하나의 잘 셋팅 된 스튜디오의 느낌마저 들었다. 여기 살면서 사진만 찍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참 묘한 곳이다. 이비자 올드타운.
또다시 길을 걷다 보니,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걷는 강아지를 만났다. 너무 귀여워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땀이 많이 나서, 잠시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발코니에 널린 빨래들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빨래 조차 하나의 멋진 피사체가 되다니. 내려가는 길에 올드 타운의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구글 지도를 봐도 길을 못 찾는 내가 한심스럽다. 이 정도로 길을 못 찾은 적이 없었다. 항상 길 찾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 있는 나였는데, 아까 전에 지나쳤던 곳을 다시 만났을 때 허탈함과 한숨이 나왔다. 같이 휴식을 취하던 아저씨와 반려견은 이미 집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앉아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미 많은 시간을 소비했기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드디어 나가는 입구를 발견하고 내려가는데 기념품을 파는 아저씨가 있어서 잠시 둘러보았다. 여행지의 자석을 모으는 것이 나의 취미이지만 가격 보니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이 날 아저씨는 몇 개를 파셨을까.
올드타운을 내려왔더니, 레스토랑과 기념품 샵들이 즐비해있었다. 그러나 즐길 수도 없이 이미 시간이 많이 늦어져 식사는 패스하고 호텔에서 짐을 찾고 바로 공항으로 갔다. 이비자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싶었으나 지도를 보고도 길을 못 찾는 나의 능력 덕분에 아쉬움으로 남겼다.
공항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티켓팅을 하고, 수화물을 부치고 남은 시간은 맥주와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랬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도시인 바르셀로나로 다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이게 여행하면서 탄 6번째 비행기였다.
이비자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직항이 있기 때문에, 편하게 바르셀로나에 도착했고 이미 한번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공항버스를 타고 카탈루냐에 있는 숙소까지 아무 탈 없이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한 나는, 급하게 카메라 충전부터 하였다. 휴식도 좀 하면서, 여유를 가졌다.
이제부터의 바르셀로나 일정은 딱 2개만 하면 되었다. 한국에서 예약하고 온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경 및 '몬주익 분수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기'.
가우디 버스 투어를 하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봤기 때문에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과연 또 보는 것이 맞을까, 다른 것을 할까.. 수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하는 것으로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탑에서 바르셀로나 시내를 내려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남은 하루를 버틸 정도로 충전이 되자 다시 나는 숙소 밖으로 나왔다.
이비자에서 도착한 오늘은 아무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바르셀로나 그 자체를 즐기기로 했다. 일단 배가 무척 고팠기 때문에 또 검색하여 근처에 괜찮은 타파스 레스토랑 'CIUTAT COMTAL'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클라라가 아닌 시원한 맥주와 허니버터 소스 맛이 나는 감자요리, 소스가 맛있었던 생선요리, 한입 스테이크, 항상 옳은 새우구이로 배를 채웠다. 타파스가 양이 많지 않고 한입거리식으로 나와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배가 고파서였는지 원래 맛있는 곳이었는지 정말 맛있게 먹었던 곳이다.
배를 채우고 나서 카탈루냐 광장에서 람블라스 거리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다시 난 가방과 소지품을 다시 챙기기 시작했다. 이미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첫날에 겪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걷다 보니 하몽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하몽을 한국에 많이 가져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그냥 스페인에 있는 동안이라도 많이 먹는 것을 택했다. 마트에서 하몽을 사서 숙소에서 맥주와 먹기도 했었다. 하몽의 비주얼이 좋지는 않지만, 맛은 일품이기 때문에 지금도 시원한 맥주와 짭짤한 하몽이 생각난다.
길을 걸으며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큰 일정이 없어서인가, 많이 피곤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할 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숙소에 들어가서 쉬기로 했다. 물론 맥주와 하몽과 함께 말이다.
마지막 바르셀로나도 2박 3일 일정으로 이제 2일 남았다. 나의 스페인 여행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