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부산에서 바다를 보며 자랐다. 그래서 바다가 익숙했고, 국내 여행으로 인기 있는 부산이 나에겐 그저 그런 흥미가 없는 익숙한 곳이다. 설렘이란 단어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집. 편안한 곳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산에 주기적으로 내려갔던 것은 부모님을 뵈러였지 바다를 보러는 아니었다. 그래서 부산에 도착하더라도 집에만 앉아서 TV를 보며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이 전부였다.
사람들이 꼭 먹어고 싶어하는 밀면, 돼지국밥, 씨앗호떡 등은 내가 부산에 있으면서 남들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만큼 자주 먹었던 것들이기에 줄을 서서 먹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고, 먹고 싶다는 생각조차 안 들었다.
그러던 내가, 한 번씩 바다가 보고 싶으면 꼭 동해로 간다. 지금은 직장 때문에 경기도 서해 근처에서 지내고 있지만 바다가 보고 싶다면 근처 서해가 아닌 꼭 저 멀리 반대편 동해를 찾아간다. 그래서 고성, 속초, 강릉을 수없이 많이 다녀와봤다. 유별날 것 없어도 시장에서 사 먹는 군것질 거리와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이 전부라도 그저 파도소리 한번 들으려고 찾는다. 부산을 매번 찾아오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기분이겠지.
주말에 속초를 다녀왔다. 역시나 바다가 보고 싶어서였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한 카페였다. 그것도 바다가 보이지 않는 시내에 있는 곳이었다. 이제 바다 뷰는 쉽게 포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속초가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영하 10℃를 기록하는 날씨 덕에 따뜻한 커피가 더욱더 맛있게 느껴졌다. 거기에 달콤한 디저트는 아주 환상적이었다. 집 앞에서 또는 굳이 여기까지 안 와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인데 단순히 집과 멀리 나왔다는 생각만으로도 사람을 설레게 만들어줬다. 해외여행이 아닌 국내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인 것 같다.
커피 한잔의 여유로움을 느끼고 속초에 왔으니 바다를 보러 갔다. 확실히 동해 바다는 시원하고 깨끗했다. 서해바다의 탁한 색깔이 아닌, 항구 도시 부산의 정이 안 가는 바다 색깔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수평선이 속을 시원하게 해 준다.
어릴 때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는 광안대교가 없었다. 집과 가까워서 한 번씩 가면 속이 시원했다. 다만 주변 회센터들 때문에 바다는 깨끗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깨끗하지 않다.) 그러다가 어느 날 광안대교가 생겨났다. 밤에는 화려한 조명을 뽐내주고, 1년에 한 번씩 불꽃 축제를 하면서 지금은 부산의 상징이 되었지만 항상 볼 때마다 나는 속이 꽉 막힌 기분이 들었다. 어릴 때의 그 시원한 바다 모습은 이제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한 번씩 광안리 해수욕장을 찾아가면, 예전의 속 시원하게 볼 수 있던 그 모습이 그립기도 하다.
매서운 바닷바람이 나를 움츠려 들게 했지만, 그래도 속초 바다를 보니 속이 뻥 뚫렸다.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손과 발이 시릴 정도로 추운 날이었지만, 바다를 보러 여기까지 온 보람은 있었다. 이런 맛 때문에 멀어도 계속 찾아오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속초에 왔으니 영금정도 한번 들려본다. 정말 별거 없는 작은 정자이지만 부산에 있는 해동 용궁사의 감성을 잠시라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규모만 따지면 비교도 안될 정도로 초라하지만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만큼은 용궁사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속초에 오면 의무적으로 들려서 바다를 잠시 쳐다보고 내려간다. 속초에 왔다는 나 혼자만의 인증샷 같은 것이랄까.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영금정 바로 아래에 있는 어시장도 영금정처럼 의무적으로 항상 들린다. 매번 정신없는 호객행위에 얼마 못 버티고 나오는 곳이지만, 이번은 다르겠지란 생각에 방문하는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는 안 들리고 지나가면 약간 허전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12월 들어서 가장 추운 날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추위 속에서 해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의 모습에 계속 눈이 간다. 옆에 숯으로 피운 난로 같은 것이 매캐한 연기를 뿜고 있었지만 날씨 때문인지 실제로 관심을 가지는 관광객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래도 이런 것들에 익숙해진 할머니들은 지루함을 달래고자 계속해서 해산물을 하나라도 더 손질하고 계신다.
속초는 이제 익숙함 때문에 계획 없이 무작정 숙소만 잡고 올 정도로 편안한 곳이 되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부산에만 가면 집에만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부산에 놀러 간다면 검색해서 찾아가야 할 정도로 관광객들보다 정보가 더 없어졌다. 하지만, 앞으로도 난 바다가 보고 싶다면 속초를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