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안끼엠 호수 주변을 걷다가 매우 위험한 확률 게임에 직면했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 것이었다. 비보호 좌회전이면 적당히 차가 안 올 때 눈치를 보며 가면 되지만, 여기는 차와 오토바이가 끊이지 않게 지나갔다. 한참을 횡단보도에 서있었다. 혹시나 마음 착한 사람이 멈춰 주겠지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하지만 나의 기대와 달리 나를 위해 멈춰주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현지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냥 지나간다. 그냥 아주 자연스럽게. 뛰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고. 여행자 보험을 가입 안 하고 온 것이 잠깐 후회되었지만, 건너보기로 큰 다짐을 했다. 현지인들의 성공률 100%에 자신감을 얻은 나도 첫 발을 내디뎌서 길을 건넜다. 걱정과 달리 아무 문제없었다. 오토바이부터 차들까지 나를 교묘히 비켜갔다. 한번 성공하고 나니 자신감이 생겨 두 번째부터는 너무 쉬웠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차가 오던 말던 일단 건너고 봤다. 전깃줄에 이어서 오늘 교통 흐름을 보면서 여기는 불규칙 속에 규칙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