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여행(Day2)

취리히에서 새벽 산책

by MySnap

둘째 날 아침. 무엇에 이끌린 것 같이 난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다. 전날에 비행시간과 대기시간을 합해 약 15시간을 이동하여 도착하였지만, 신기하게도 다음날 아침 멀쩡한 체력으로 충전이 되어 개운하게 일어났다.


창밖을 보니 푸른 하늘과 멋진 구름이 빨리 나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카메라를 주섬주섬 챙기고 있으니, 그 소리를 듣고 와이프가 일어났다. 그리고 같이 가겠다고 해서 산책 복장을 하고 호텔 문을 나섰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산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었고,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차도 없고 사람도 없었다. 한 손에는 카메라를 쥐고 리마트 강을 따라 그냥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밤에 도착해서 자세히 안보였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고, 멀리 만년설에 쌓인 산도 보였다. 오늘 오후 2시 기차로 그린델발트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그전까지 여유롭게 취리히를 조금 더 즐겨볼 계획이다.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이라곤, 캐리어를 이끌며 기차역으로 가는 관광객들 뿐이었다. 구글 지도를 보며 리마트 강 건너편으로 가보기로 했다. 반대편이 구시가지인 곳인데 길 따라 내려가면서 산책하기 좋고, 유명한 그로스뮌스터 성당도 있다. 일단 그로스뮌스터까지 천천히 걷기로 했다.



리마트 강에는 유독 백조들이 많이 있었다. 내가 백조를 처음 봤을 때가, '슬로베니아' 여행을 갔을 때였다. 블레드 호수 주변을 걷고 있는데, 호수 끝 자락에 백조 한 마리가 있었다.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길래, 난 용기를 내어 옆으로 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얌전한 줄만 알았던 백조가, 내 다리를 쪼기 시작하는데 갑작스러운 공격에 줄행랑을 쳤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내 기억에 백조는 난폭한 동물로 되어있다.


그래도 이 곳에서 여유롭게 유영을 하거나, 모여서 쉬는 백조들을 보니 주변과 어우러져 멋진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와이프는 백조를 따라 걸으며 관심을 보였는데, 신기하게도 백조들이 멀리서부터 바라보고 다가온다. 아마도 먹이를 줄 것이라 생각했겠지..




리마트 강을 따라가며 풍경 감상, 사진 찍기, 이야기하기. 그리고 다리 위에 서서 한참 바라보기. 취리히 새벽 산책을 하면서 누린 여유다.


스위스 여행을 계획 중인 사람이라면, 추천을 해주고 싶다. '취리히에 머무는 시간이 부족하고 아침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본다면, 조금만 부지런해져서 아침 일찍 산책을 나가라고 말이다.


난 걷다가 한 번씩 뒤 돌아보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누가 왜 걷다가 뒤를 한 번씩 돌아보냐고 물어봤다. 난 항상 대답한다. 뒤도 궁금하니까.



한 번씩 뒤돌아보면 내가 지나왔던 길이 보인다. 앞만 보며 걷다가 놓친 장면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저 길을 따라 걸어왔구나 하며, 그냥 지나쳐왔던 길도 새롭게 보인다.



다리 위에 서서 건너편을 바라보다가,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되어 돌아가는 길은 반대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여유를 부리며 걸었는데도, 어느새 산책의 목적지인 그로스뮌스터에 도착했다. 고요하고 웅장한 건물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내부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하지만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해서 외관만 둘러보기로 했다.



잠시 강을 바라보는데, 어느 한 부부가 리마트 강에서 나처럼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때마침 내비친 햇빛 덕에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런 모습을 위에서 보고 있는데 보는 사람마저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이었다.



그로스뮌스터에서 그냥 내려가긴 아쉬워 위로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조용한 취리히의 골목길을 조금 더 걸으며 아침의 여유를 느끼고 싶어서였다. 골목 사이로 비추는 햇볕이 취리히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침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 빛을 느끼며 천천히 걸었다.




반대편에서, 애완견과 산책을 하는 부부와 마주쳤는데 기분 좋게 아침인사를 건넨다. 이에 나도 따라서 같이 아침인사를 건넸다.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느끼지만, 특히 유럽 쪽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 참 보기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로 마주쳐도, 그냥 지나가기만 하고 오히려 먼저 인사 건네기가 참 어색하고 어렵다.


스페인에서도 그랬고,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에서도 그랬고, 지금 스위스에서도 그렇고 길가다가 마주친 사람들에게 간단한 아침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항상 그때는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귀국하면 그러질 못한다. 여행의 감성은 귀국하면서 바로 사라지는 것 같다.



걷다 보니 이내 배가 고파졌다. 어제 기내식 이후에 밤에 먹은 치즈 몇 조각과 맥주가 전부였으니 배가 안고플 수가 없다. 그러나, 이른 아침시간이라 문을 연 곳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나간 골목길에서 오픈한 작은 카페를 만났다. '시나몬 롤과 카푸치노'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고민도 없이 이끌리듯 들어가서, 아침으로 메뉴를 주문했다.



따뜻한 커피와 달달한 시나몬롤을 즐기면서, 아침의 여유를 느끼는 중이었는데 아까 전에 만났던 산책하던 부부를 만났다. 애완견도 우리를 보자 한번 봤다고 인연인지 다가와 아는 척을 하며 지나갔다. 그리고 그 부부와 나는 서로 다시 한번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이런 것도 작은 인연인지라,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소소한 재미의 일부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걸어왔던 길의 반대편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 거리는 여전히 조용했다. 취리히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나와 그 부부들 뿐인 것 같았다.



다리 위에 서서 유유히 떠도는 백조 한 마리와 풍경을 감상하다가, 반대편으로 넘어가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취리히에선 유난히 고급차가 많이 보였다. 명품 브랜드들도 길가에 자주 보였다. 물가가 비싸지만, 잘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어딜 가나 다 있나 보다. 서울 강남과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당신은 스위스에 있어요!


라고 말해주듯 골목길 스위스 국기들이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 보니,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왔다. 왠지 저 길로 가면 뭔가가 나올 것 같은 직감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올라가 보니, 역시 나의 직감은 맞았다. 넓은 공원이 나왔고, 나무들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들이 기분 좋게 나를 맞이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좀 쉬다 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공원에는 나보다 먼저 도착을 해서 자리를 선점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도 역시 나처럼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진은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사진을 좋아하다 보면 부지런해진다고 하는데 어딜 가나 공통적인가 보다. 자연스레 나도 그 주변으로 가서 위에서 바라본 리마트 강 주변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밑에서 강을 따라 걷던 길을 위에서 바라보니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공원에서 사진을 찍다가 가만히 앉아서 그냥 바라봤다. 이 여유가 너무 좋다. 아침 일찍 나서서 피곤해하던 와이프도 어느새 좋다고 같이 즐기고 있었다. 나올 때는 피곤했지만, 막상 나오니 풍경이 너무 좋아 고맙다고 한다.

공원에 있는 그네를 타면서 쉬다가, 한 바퀴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밑에 내려오니 작은 공원이 있었는데, 빨간 장미꽃이 예쁘게 펴있어서 그냥 지나치긴 아쉬워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점점 시간이 지나자 주변에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에 고양이랑 마주쳤는데,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고 그냥 자기 갈길을 간다. 어느 순간부터 난 고양이가 좋아졌다. 키우고 싶지만, 그 많은 털을 감당하기도 힘들고 더군다나 퇴근하기 전까지 혼자 집에다 방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책임을 다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일단 참고 있다. 와이프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지만 같은 이유로 안 키우고 있는데,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되면 각각 한 마리씩 키우고 싶다.


점점 햇볕이 진해지면서, 더워지기 시작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어제 지나쳤던 역 앞의 스타벅스가 생각나서 거기에서 시원하게 한잔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숙소로 방향으로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스타벅스에 도착하니, 다행히 오픈 중이었다. 기분 좋게 들어가서 가격표를 보는데 나와 와이프는 심각해졌다. 가격이 비싸도 너무 비싼 것이었다. 한국에서 두 잔 마실 돈으로 여기에선 한잔밖에 못 마셨다. 아메리카노 두 잔에 만원이 넘어간다.


그래서 '두 잔 vs 한잔'으로 고민이 되었다. 결국 1잔으로 나눠마시자로 타협을 봤다. 차마 손이 떨려서 두 잔을 주문할 순 없었다. 잠시 기다려서 받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하니 갈증이 확 내려간다. 한 손에 아메리카노를 들고 옆에 있는 통신사에 유심을 사러 갔다.


그러나, 일요일이라서 쉰다는 것이다. 일요일에 문을 여는 곳은 공항에 있는 'Salt'지점인데 다시 기차표값을 왕복으로 내고 유심으로 하러 가기에는 너무 시간과 돈이 아까웠다. 어차피 이번 여행의 일정은 오늘 이동할 그린델발트에서 대부분 보낼 예정이고, 미리 계획은 짜 왔기 때문에 유심 없이 그냥 이동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미리 받아온 구글 지도는 역시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이 된다. 왜냐면, 여행 끝날 때까지 유심 없이 호텔 와이파이로만 지냈고, 길은 GPS 정보로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노를 한 손에 쥐고, 어제 그냥 지나쳤던 호텔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둘러보고 들어가기로 했다. 역시 역 주변은 가장 활발한 것 같다. 캐리어를 이끄는 소리가 대부분이었지만, 각자의 여행을 위해 떠나는 모습이 곧 기차역으로 떠날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호텔로 들어와, 씻고 체크아웃 준비를 했다. 기차 시간 전까지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근처의 맛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체크아웃 후, 짐을 맡기고 다시 식당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번에 갈 식당은 자물쇠들이 달려있던 작은 다리를 건너야 있는 곳이었다.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11시 오픈이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볼 땐 10시 오픈이라고 하길래 시간 맞춰서 왔는데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 레스토랑에서 먹을까 하다가, 그래도 찾아왔으니 한번 먹고 가자고 생각을 하고 주변 산책을 하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아침에 '시나몬롤과 카푸치노'를 안 먹었으면 아마 못 버텼을 것이다.


아침에 산책하며 못 걸었던 곳을 위주로 걸었다. 처음 보는 'PolyBahn'이라는 것도 구경해보고, 타볼까 고민도 했지만, 그럴 필요성은 없을 것 같아 뒤로하고 그냥 길 따라 걸었다. 그러다가 교회 앞의 벤치에 앉아서 사람 구경, 차 구경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여유를 부리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다 되어서 다시 레스토랑으로 이동을 했고, 처음부터 계획했던 '학센과 뢰스티, 그리고 맥주 2잔'을 주문했다. 주문받는 분을 불러 메뉴판의 음식을 빨리빨리 찍었더니, 천천히 하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는 스위스야, 서두를 필요 없어.'


라고 한다. 배가 고팠던 나머지 급하게 주문을 했던 모습이 빨리빨리 요청을 하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래 여기는 스위스니깐'이라는 생각으로 맥주를 먼저 받아 들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한 번씩 주방 쪽을 힐끔 쳐다봤다. 언제 나올까란 생각에.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로 인해, 모든 것에 대해서 성격이 많이 급해진 것 같다. 음식 주문, 줄 대기하기, 인터넷 속도 등에서 조금이라도 늦으면 답답해진다. 오늘 아침의 이 일로 인해, 식사 시간은 느긋하게 가지기로 했다. 밥 먹는 시간에 투자를 조금 더 해야 다음 일정에도 지장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음식이 언젠가는 나오겠지란 생각으로 기다리다 보니,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맛도 훌륭했다. 특히 소시지랑 감자전처럼 나온 '뢰스티'는 한국에서 익숙하게 먹었던 맛이기도 했다. 시원한 맥주와 같이 즐기며, 식사다운 아침을 마쳤다.


기다린 시간 대비, 먹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그래서, 기차 시간 전까지 여유가 더 있었다. 소화도 시킬 겸 아침에 갔던 곳 보다 조금 더 내려가기로 했다.


아침에 조용했던 거리가 북적이고 있었다. 와이프와 같은 생각을 했다. '아침 일찍 나와서 다니길 잘했다.'라고.

활발해진 거리를 따라 다시 그로스 뮌스턴으로 갔다. 아침에는 들어갈 수 없던 내부를 들어갈 수 있었다. 두꺼운 철문을 밀며 내부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이 나왔다.



사람들은 내부로 들어가면서 짧은 감탄사를 뱉었지만, 나는 '아.. 내부는 이렇구나'란 생각만 들었다. 이유인즉슨, 작년에 다녀왔던 스페인 여행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세비야 성당을 보면서 느낀 그 웅장함이 아직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그로스 뮌스터의 내부에 대한 감동은 사실 없었다.


아침부터 많은 것을 하였지만, 그래도 시간을 짜내서 여유를 부리고자 그로스 뮌스터의 밖에서 잠시나마 앉아서 주변을 구경했다. 이미 한번 봤던 풍경이었지만, 조용했던 아침과 달리 북적거리는 소리가 새로운 느낌을 주어 활발해진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가만히 앉아서 멍하게 풍경을 감상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취리히에서 2박을 했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어젯밤에 도착해서 오늘 아침에 산책하고 밥 먹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고 있지만 크게 할 것이 없었다. 쇼핑을 하기엔 전부 비싸고, 명품 브랜드들이 많았고 기념품으로 내가 모으는 자석도 1개당 약 1만 원 수준이어서 여러 개 살 수도 없었다. 처음 스위스 여행을 계획할 때, 취리히에서 2박을 해볼까도 했지만 이번 여행의 일정은 전부 와이프에게 맡겼기 때문에 하루 도착해서 자는 것 밖에 없어서 사실 혼자 좀 아쉬워했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다니다 보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들었다. 1박만 계획한 것이 다행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취리히 여행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그렇다고 지루한 도시는 아니다. 아마 나에게 시간을 주고 사진을 찍으며 보내라고 하면 2일은 충분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몇몇 포인트를 들려야 하는데 못 간 곳이 많기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힘을 내서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오늘은 취리히에서 무슨 행사가 있는 것 같았다. 길마다 코스를 만들어두고, 경찰들과 행사 진행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구경하고 있으니, 자전거를 탄 선수들이 코스를 통과하고 있었다. 많은 박수와 응원으로 힘을 보태주고 있었다. 나도 같이 옆에서 박수를 치며 응원을 했다. 꽤 더운 날씨였는데, 이를 무시한 듯 경기를 펼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자전거 경기만 있는 줄 알았는데, 마라톤 하듯 러닝 하는 선수들도 보였다. 정확히 어떤 경기를 진행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응원해주며 지켜보았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취리히에서는 코스에 선수들이 없으면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선수들이 뛰고 있는 길에서는 그냥 사람들을 통제하지도 않았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주고, 자기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옆에서는 대회를 펼치고 있었다. 선수와 구경하는 시민들에 대한 배려인 것인지, 아니면 당연히 지켜야 할 매너이기 때문에 따로 통제를 안 하는 것인지 거저 나로서는 신기하기만 했다.


나는 괜히 피해를 줄까 봐 멀리 떨어져서 호수를 바라보며 백조들과 풍경 사진을 담았다.



시계를 들여다보자, 이제 취리히를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내려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서 호텔로 갔다. 그래도 마지막 아쉬움 때문인지, 못 지나갔던 길로 지나가며 한 모습이라도 놓치기 싫어서 열심히 구경하며 갔다.



호텔에서 짐을 챙기고 취리히 중앙역으로 갔다. 다시 보니 플랫폼이 많아도 엄청 많다. 40몇 번대 까지 있었던 것 같다. 약간 남은 시간을 COOP에 가서 간단히 마실 것들과 사기로 했다. 스위스 여행 가기 전에 추천받았던 음료 'rivella' 블루를 마셨는데, 맛은 있었지만 엄청나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 먹은 리미티트 에디션 망고'맛은 맛있어서 몇 번 사 먹었다.


스위스의 기차 시스템은 아주 잘 되어있다. 그래서, SBB란 어플을 보면 나오는 시간이 아주 정확해서 이것만 잘 활용해도 여행에 큰 차질이 없다.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고 출발한다. 한국에서 미리 필요한 구간을 예매해놔서, 정해진 플랫폼에서 기다렸다. 기차에 탑승하니 내부도 깔끔하고 편하게 잘 되어있어서, 여행을 하면서 교통 때문에 불편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스위스에 오면 다들 기차로 여행을 하는구나 싶었다.




역시나 정확한 출발 시간에 기차는 출발했다. 나는 루체른과 인터라켄 OST에서 각각 한 번씩 환승을 해서 그린델발트로 간다. 풍경이 그렇게 좋다고 하는데, 내심 큰 기대를 가졌다. 여행 전에 기차 구간에 대해서 어떤 방향의 자리가 경치가 좋다고 설명을 봤으나, 막상 다 까먹고 그냥 탔다. 반대편에 보이는 호수를 부러워하며 가다가, 자리가 생기면 이동해서 보고 사진도 찍었다.


출발하고 얼마 안 되어서 점점 하늘이 흐려졌다. 취리히에서 맑았던 하늘이 루체른을 지나고 인터라켄 OST로 향하면서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던 산들도 이내 안개 때문에 전부 사라졌다. 날씨 어플로 봤던 그 걱정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린델발트의 일정부터는 대부분 트래킹의 일정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비가 와서 못하면 어쩌지.. 숙소에만 있으면 어쩌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 그건 나중의 일이고, 지금은 그냥 비 오는 대로 즐기기로 했다. 밖은 어두워져 예쁜 풍경들은 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신기하게도 날이 다시 맑아졌다. 우중충했던 풍경들이 확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를 놓치기 싫어서 일단 카메라를 급하게 쥐고 열심히 이것저것 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시 비 오면, 카메라를 내려놓고 창밖을 멍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브리엔츠 호수로 유명한 브리엔츠를 지나, 인터라켄 OST에 도착을 해서 마지막으로 그린델발트행 열차를 탔다. 비는 다행히 오지 않았지만 구름이 많이 낀 하늘 틈으로 멀리 '아이거 북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통 산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의 크기가 가늠이 되었지만 눈앞에 약 4,000m 높이의 산을 보고 있으니 그 높이가 짐작이 안되었다.


분명히 한눈에 들어오긴 하는데, 그 웅장함을 눈으로 척도 할 수 없었다.


보는 내내 '아 대박이다,, 내가 생각했던 스위스 풍경이다'를 반복하면서, 계속 머릿속은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란 생각을 했다. 우니라나에서 봤던 산들도 한참 높다고 생각했는데,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저 높이가 4,000m 면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보다도 훨씬 더 높은 것인데,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인가? 란 생각도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린델발트가 어느 높이에 있는지부터 생각했어야 하였다는 부끄러움부터 들긴 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와이프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이야기하며 막상 와서 보니 너무 좋다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스위스는 이런 모습이라고. 와이프는 두 번째 오는 것인데도 여전히 좋다고 한다. 이해가 되었다.


인터라켄 OST에서 30분을 더 달려, 최종 종착지인 그린델발트에 도착했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파란 하늘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에도 날씨가 수십 번 바뀌는 것 같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아 내가 산속에 오긴 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예약한 호텔이 역 바로 앞에 있어서 걸어서 15초 정도 걸린 것 같았다. 지도를 보고 근처이긴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는데 역에서 바로 호텔로 갈 수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숙소가 가까워서 편하다란 생각을 하며 방을 배정받았지만, 와이프와 내가 기대했던 '아이거 북벽'뷰가 아니라 기차역 뷰였다. 다른 지역 대비 숙소비가 비쌌지면, 돈을 투자한 대비 뷰가 마음에 안 들어 숙소에서 한동안 서로 시무룩하게 있다가 그래도 정신 차리고 다음날 트래킹을 위해 필요한 음식들을 사러 COOP으로 갔다.


COOP으로 가면서 만난 '아이거 북벽'은 웅장하고 멋있었다. 다시 한번, 저 모습을 봐야 하는데란 생각으로 장을 보러 갔다. 물과 소시지, 빵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맥주와 저렴한 와인을 사들고 숙소로 들어왔다. 짐을 두고, 날도 좋아졌으니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장보는 사이에 파란 하늘은 다시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와이프가 예전에 묵었던 숙소가 더 좋았다고 했다. 위치는 많이 올라가야 했지만, 그래도 뷰가 이럴 거면 차라리 예전 숙소로 갈 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야기도 나온 김에 그 숙소까지 한번 천천히 걸어가 보기로 했다. 스위스에서 내가 생각했던 그린델발트의 풍경은 도시처럼 발달되어있지 않고, 상점이 많지 않은 조용한 모습을 생각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달랐다. 레스토랑, 상가, 호텔이 전부였다. 그리고 보이는 수많은 한국인들을 보며 여기에선 한국말로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천천히'아이거 북벽'과 지금 봐도 읽기 어려운 2개의 산을 바라보며 걷다 보니, 와이프가 묵었다던 숙소가 나왔다. 나름 블로그로 소개가 된 곳인지 한국인들이 많은 곳이었는데, 위치상으로 기차역과 많이 걸어야 했고 한 시간에 한 두대만 다니는 버스로 이용하기에 많이 불편한 곳에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다시 한번 그 숙소를 보니 와이프는 옛날 생각이 난다고 좋아했고, 기념사진을 남기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스위스에서 해는 저녁 8시 이후로 졌기 때문에 해가 진다고 느껴지면 이미 밤 9시는 다되었다. 그렇다 보니 하루가 꽤 길게 느껴졌다. 밤은 짧고 낮은 길고, 여행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어두워진 길을 따라 다시 호텔로 들어왔다. 내려오면서부터 먹구름이 많이 낀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괜찮겠지란 생각을 했다. 많이 피곤한지 와이프는 일찍 잠들었지만, 나는 멀뚱히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때우다가 맑은 공기의 스위스니깐 별이 많겠지란 생각으로 장비를 챙겨서 나갔다.


먹구름이 그래도 지나갔겠지란 생각으로 막상 나가서 사진을 찍으니, 구름 때문에 별은 보이지도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 몇 번 시도를 했지만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그냥 포기하고 숙소로 들어와, 나도 정리하고 여행의 둘째 날을 마무리 지었다.


눈뜨면 제발 푸른 하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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