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여행(Day3) #1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에 올라서다.

by MySnap

셋째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조용히 귀를 기울이니 빗소리가 들렸다. 어젯밤부터 모여드는 구름이 심상치 않더라니, 결국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부터 그린델발트에서 본격적인 스위스의 대자연을 즐겨야 하는데, 시작부터 비로 인해서 고민이 많아졌다.


소나기가 그칠 줄 모르고, 당장 할 것도 없어서 비 오는 그린델발트 역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되었을까, 갑자기 눈부신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나의 잠을 깨웠다.


설마란 생각에 가서 창문을 열어보니, 어느새 비가 그치고 푸른 하늘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비가 온 직후라서, 그린델발트는 더욱더 선명한 색을 띠고 있었다.

산속이라서 그런지, 하루에도 날씨가 몇 번이고 바뀌었다. 나갈 채비를 하는데, 다시 구름이 몰려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오늘은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융프라우에 갈 예정이다. 그래도 날씨가 흐리고, 멀리 보이는 산은 안개로 인해서 혹시나 올라가더라도 잘 안 보이면 어떡하지란 생각에, 실시간 융프라우 날씨 정보를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접속하니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소식을 바로 와이프에게 알렸고, 나와 와이프는 바로 떠날 채비를 갖추고 숙소를 나섰다.

주변 역을 기차로 횟수 상관없이 무료로 이동할 수 있는 VIP 쿠폰 5일권을 1인당 한화로 30만 원 돈을 주고 구입했다. 융프라우에 가기 위해서는, 클라이네샤이덱으로 가서 한번 더 환승을 해야 했기에 기차를 기다리며 역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구름이 몰려들면서 빛 내림이 발생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20여분 정도 기다리니, 클라이네샤이덱으로 가는 열차 편이 도착했다. 그린델발트에서는 인터라켄 OST와 클라이네샤이덱으로 가는 두 열차가 들어오는데, 30분 단위라서 시간만 잘 맞추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다음번에 스위스에 오게 된다면 역시나 그린델발트에서 숙소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차를 타고 클라이네샤이덱으로 가는데,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면서 많은 비가 내렸다.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 열차를 타는 사람들은 융프라우를 가던지, 라우터브루넨 지역을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모두 자연을 관람하기 위한 사람들이 이 열차를 탄다. 그런데, 비가 많이 내리니 다들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난 아침에 융프라우 실시간 모습을 보고 왔기 때문에, 나름 애써 태연한 척을 했지만 설마 그 사이에 바뀌었을까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유심을 구매하지 못해 확인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우산을 꺼냈지만, 많은 비가 내려와 결국 가방과 옷이 많이 젖었다. 융프라우행 열차를 타고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기차로 해발 약 4천 미터까지 올라가는 게 신기했다. 중간중간에 보이는 경치는 안개로 뒤덮인 산들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흰 도화지를 보는 기분으로 열심히 기차는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중간에 한번 경치 관람을 위해 5분간 정차를 해준다. 사람들이 내려서 보러 가길래 나도 따라 내려갔다. 처음으로 만년설이 뒤덮인 산을 봤는데, 기분이 묘했다. 여름휴가를 와서 눈을 보고 있으니 시원한 기분이 막 들었다. 실제로 역에 내리니, 차가워진 공기가 나를 맞이해줘서 더위 자체를 잊게 만들었다.


다시 기차를 탑승해서, 최종 목적지인 융프라우로 향했다. 도착해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한층 더 차가워진 공기가 나를 반겼다.


여기가 융프라우란다. 좀 더 따뜻하게 입고 오지 그랬니?


등산복 바지에 반팔티와 바람막이 하나만 입고 왔는데, '그걸로 괜찮겠니?'라고 융프라우가 말하는 것 같았다. 온몸을 감 싸도는 차가운 바람이 나를 툭툭 약 올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따라 걷다 보니, 스핑크스 전망대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나왔다. 이를 타고 올라가자 외부로 나가서 흰 눈을 밟으며 융프라우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왔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날씨에 대한 걱정이 확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뽀드득 소리를 내는 눈을 밟으며 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광활하게 펼쳐진 눈밭과 하얀 눈이 덮인 산을 보면서 감탄을 내뱉었다.


여기가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구나!


융프라우 높이가 4,158m라고 한다. 백두산이 2,744m인데 한참 더 높은 곳이다. 백두산보다 낮은 한라산도 오르기 힘든데, 훨씬 높은 곳을 이렇게 올라와있는 것이다. 내가 어느 정도 높이에 있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여기에 올라오면 융프라우(4,158m), 뮌히(4,099m), 아이거(3,970m) 이렇게 세 봉우리를 볼 수 있는데, 너무 웅장하고 멋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중에 트래킹을 할 때도 이 세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걸었는데, 그 풍경은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4천 미터의 높이에서 광활한 대자연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감탄하고 있는데, 눈 앞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눈 밖에 없는 곳에서 살고 있는 것도 신기했는데, 사람을 피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사진 찍기 위해 몰려들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한 동안 인기스타였다.


나와 와이프는 바람막이 하나만 입고 왔기 때문에, 이내 추위에 떨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얇은 패딩에 두꺼운 패딩까지 따뜻하게 입고 왔는데, 날씨 개념 없이 너무 당당하게 온 것이다. 사진을 찍는 손가락도 점점 감각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실내로 이동해 다음 코스로 구경하러 갔다.


얼음 동굴을 지나고 나니, 융프라우에서 꼭 찍어야 하는 사진 포인트인 스위스 국기가 있는 융프라우에 최종 도착하게 된다. 여기에 나와서 우뚝 솟은 봉우리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구글 지도에서 항상 보면 하얀 산으로 표시되는 곳에 내가 서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출발한 지 3일 만에 난 여기에 서있었는데, 참 신기했다. 더위를 피해 온 곳에서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으니 말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뼛속을 파고드는 찬 바람 때문에 고생했지만, 차마 이를 피해 들어갈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고 싶어서, 한 모습이라도 더 담기 위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웅장하고 멋있는 융프라우를 한참 감상하고 사진을 찍다가, 신라면을 먹으러 갔다. 융프라우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그 신라면!. TV 광고에서도 융프라우에서 신라면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을 드디어 하러 가는 것이다. 스위스 출발 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었기에 큰 기대를 품고 식당으로 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신라면을 즐기고 있었다. 퍼져오는 라면 냄새를 맡으며, 나도 신라면을 받아 들고 자리를 잡고 먹기 시작했다. 추위에 떨고 와서 그런지 따뜻한 국물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얼어붙은 몸도 녹는 기분이었다. 융프라우를 바라보며 먹는 신라면은 그 어느 요리도 부럽지 않았다. 평소에 컵라면을 잘 먹지도 않는 내가 스위스에서 신라면만 몇 번 먹었으니, 이때 먹은 그 맛이 참 감동이 있었나 보다.



라면의 양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서 천천히 먹다 어느새 다 비우고, 밖에 있는 간이 전망대로 나갔다. 따뜻한 국물로 배를 채워서 그런지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융프라우 VIP 권은 날짜와 상관없이 한번 올라올 수 있었는데, 곧 트래킹을 하러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두 번다시 볼 수 없는 이 풍경을 다시 한번 더 천천히 감상했다.


특히, 중간중간에 보이는 빙하의 크레바스를 보고 있으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을 하다가 저기에 빠진다면 아마 평생 나를 못 찾을 것 같았다.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까 전에 빙하를 밟으며 트래킹 하던 사람들이 왜 가이드를 따라가고, 몸을 밧줄에 묵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저 멀리 융프라우로 걸어 올라가는 3명의 등산객도 보였는데 괜히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유럽의 지붕을 한 바라보며 감하다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기차 시간이 다 되어 역으로 이동했다.


비 오는 아침을 맞이해 걱정했지만, 이렇게 화창한 융프라우를 볼 수 있어서 이번 스위스 여행 목표의 절반을 이룬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융프라우 위에 올라섰다면, 이제 밑에서 푸른 초원 지대에서 세 봉우리를 바라보며 트래킹을 할 차례다.


트래킹 또한 스위스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제 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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