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쉬기. 하더쿨룸&인터라켄OST&축제 속으로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온 몸이 무거웠다. 5일째인 오늘 결국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발 끝에 통증도 심해서 더 이상 트래킹 하기에도 무리가 있었고, 며칠간 많이 걷고 많이 돌아다녔더니 몸이 버티질 못하는 것 같다. 일어나기 힘들어서 침대에 누워서 테라스를 보니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좋았다. 첫 번째 호텔에서 볼 수 없었던 뷰였는데 이렇게 아침 일찍 멋진 풍경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스위스에서 맞이하는 아침이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발가락 끝에서 느껴오는 찌릿한 통증을 참으며 테라스로 나가서 뷰를 바라보다가 따뜻한 차 한잔을 내려왔다.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뷰를 보는데, 온몸에서 오늘 하루는 그냥 쉬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오늘은 그냥 쉬어. 아무것도 하지 마.
축 늘어져서, 멍 때리며 있으니 와이프가 일어나다가 역시나 몸이 무거워졌는지 다시 자겠다고 한다. 잠은 더 오지 않고 그래서 구름이 좋길래 타임랩스를 한번 돌려보기로 했다. 혹시나 해서 챙겨 왔던 장비들을 세팅하고, 끝날 때까지 다시 멍 때리기로 했다.
업로드 용량 때문에 화질이 저하되는 게 아쉽다.
1시간 정도 작업을 하고 나름 리뷰를 해보니 꽤 괜찮은 그림이 나온 것 같았다. 때마침 와이프도 일어나서 오늘 일정을 얘기하다가, 내 발가락 상태를 보더니 더 이상 걷는 것은 무리겠다 싶어서, 일단 인터라켄 OST로 가기로 했다.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그냥 구경하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여유 있게 경치도 보며 30여분 달리니 인터라켄 OST에 도착했다. 그린델발트에만 있었더니 여기는 도시의 느낌이 확 났다. 사람들도 확실히 많을 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한국어 때문에, 마치 한국에 있는 것 같았다.
기차 안에서 오늘 일정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쉬니케 플라테 간단히 보고 오려고 했는데 기차로 올라가는데만 약 1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이미 숙소에서 여유도 부리고 늦게 나오다 보니 일정상 무리일 것 같아서 원래 마지막 날 인터라켄 OST에서 머물 때 가기로 했던 하더쿨룸을 오늘 다녀오기로 했다.
빙하가 녹아서 만든 에메랄드 빛의 강을 보며 기차역 근처에 있는 하더쿨룸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갔다.
크지 않는 케이블카 앞자리에 다행히 앉아서 점점 멀어지는 인터라켄을 바라보며 하더쿨룸을 향해 올라갔다. 더운 날인데 에어컨이 없는 케이블카는 마치 찜통 같았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하더쿨룸에 도착했는데 산 위라서 그런지 약간 더 시원한 정도였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을 그늘이 없어서 그대로 맞이하며 전망대로 걸어갔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기다리거나 그런 것 없이 인터라켄의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었다. 튠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가 양 옆에 보였다. 유람선을 타고 관람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이번 일정에는 없기 때문에 다음에 스위스를 온다면 한번 타보기로 했다.
너무 무더워서 오래 있질 못했다. 생각보다 작은 사이즈의 하더쿨룸 규모에 금방 구경을 마치고 그늘에서 좀 쉬다가 맥주 한잔 할까 했지만 아꼈다가 점심을 먹으면서 그때 주문하기로 했다. 한잔에 기본 5천 원이 넘어가므로 쉽게 주문할 수가 없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여행하면서 앉으면 맥주 주문이었는데, 여기서 그랬다간 예산이 많이 초과가 될 것 같아서 꼭 마시고 싶을 때 아니면 몇 번 참아야 했다.
땀좀 식히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미리 숙소에서 알아봤던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걸어갔다. 지도를 보니 15분 정도 걸어가야 했는데, 너무 더워서 그늘만 찾아서 피해 다녔다. 산속에서 시원하게 즐기다가 내려오니, 더위를 버티기가 힘들었다. 마치 실내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밖에 나가면 더 더운 것처럼 말이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스위스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한국에서 한번 친구들과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밀양에서 하는 거였는데, 1시간 반을 달려가서 기다렸더니 우리 차례에서 비바람이 몰아쳐 결국 취소되는 바람에 못하고 돌아와야 했었다. 첫 패러글라이딩을 스위스에서 해볼까란 고민도 잠깐 들긴 했지만, 나중에 가격 때문에 그냥 포기했다. 위험하기도 했고 말이다.
목적지는 슈 레스토랑이었다. 라클렛과 슈니첼, 퐁듀가 맛있는 집이라고 해서 기대했다. 사실 난 스위스 하면 퐁듀라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다녀온 사람들 말로 퐁듀가 짜고 비싸기만 하지 맛은 없다고 했다. 와이프도 퐁듀가 별로라고 하길래, 궁금했지만 패스하기로 하고 라클렛과 슈니첼을 주문했다. 라클렛은 삶은 감자를 라클렛 치즈에 찍어먹는 것이었고, 슈니첼은 돈가스와 비슷했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즐긴 두 음식은 둘 다 맛있게 먹었다. 특히, 라클렛은 입맛에 맞아서 한국에 치즈까지 사들고 와서 또 해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옆의 공원에 계속 도착하는 패러글라이딩을 멍하게 바라봤다. 와이프가 온 김에 해보라고 부추겼다. 그래서 한번 해볼까 싶었지만, 굳이 해외에 와서 혹시나 다치거나 그러면 억울해서 그냥 안 한다고 했다. 한 번에 돈이 30만 원 가까이했기에, 또 쉽게 오케이 하기도 어려웠다.
밥 먹고 인터라켄 시내를 천천히 걸으며 구경했다. 일정도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었다. 보인은 매장에 들어가서 구경하고, 집에 꾸밀만한 아이템들도 한번 눈여겨보고 몸에 쌓인 피로를 풀어주었다. 스위스에 와서 취리히의 산책 이후 오랜만에 맞이하는 여유였다. 그래도 날씨는 어느 때 보다 더워서 걷다가 보이는 젤라또 가게에 들어가서 시원하게 한 컵 먹기로 했다. 다양한 메뉴가 있었지만 가장 궁금했던 쌀 아이스크림도 포함시켰다.
라즈베리나, 레몬맛은 다 아는 맛이었는데 쌀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 익숙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기억이 날 듯 말듯했다. 묘하게 끌리는 맛이었는데, 먹다가 생각났다. '아맛나' 맛이었다. 내가 자주 먹던 아이스크림인데 친구들은 아저씨 맛이라고 하며 안 좋아했다. 난 적당히 달달한 맛이 좋아서 자주 먹었는데, 그 맛을 스위스 젤라또 집에서 느꼈다. 비싼 돈 주고 먹었는데 아맛나 맛을 느끼니 좀 억울하기도 했지만, 시원하니 그냥 좋았다.
더위도 식히고, 나와서 공원에 앉아서 그냥 쉬기로 했다. 앉아서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와이프와 풍경이 어떨까, 지금이라도 해봐라 등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행글라이더가 멋지게 하늘을 가로지르며 내려왔다. 나와 와이프의 큰 관심사는 행글라이딩이 재미있겠다가 아닌, 저렇게 큰 것을 어떻게 접을까였다.
하나하나 조립을 풀고, 날개도 접히더니 손으로 들고 이동이 가능하도록 정리가 되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란 말을 반복하면서 멍하게 쳐다봤다. 너무 덥다 보니 서로 뭐 하자는 얘기도 안 했다. 그냥 멍하게 사람 구경을 하다가, 시계를 보니 1시간 넘게 앉아있었다는 것을 알고 와이프와 내려온 김에 유람선도 한번 타보자고 했다. 어차피 기차역으로 가야 했기에 근처에서 한번 들렸다가 가기로 했다.
강 옆으로 천천히 걸어서 경치도 감상하고 그늘에서 앉아서 쉬다가, 선착장으로 갔는데 사람도 없고 조용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원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끝났다고 했다. 시간표를 보니 우리가 너무 늦게 온 것이었다. 유람선은 우리 인연이 아닌가 보다란 생각에 그냥 호텔로 돌아가서 쉬다가, 저녁을 맛있는 걸 먹기로 했다.
일정이 없으니,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여행 와서 이렇게 쉬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여러 나라들을 여행 다니면서, 하루라도 일정이 여유로운 적이 없었다. 항상 바쁘게 다녔다. 사진을 찍어서 부지런했던 이유도 있지만, 하나라도 놓치기 싫어서 더 많이 돌아다녔었다. 이번 여행의 일정 자체가 여유롭기도 했었지만, 이렇게 하루를 그냥 갑자기 쉬는 걸로 빼버려도 전체 일정에 무리가 없으니, 여유도 있고 몸도 회복되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앞으로 가는 여행도 중간중간에 쉬는 일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기차를 타고 그린델발트에 도착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일단 호텔에 들어가서 씻고 좀 쉬다가 밥 먹으러 나오기로 했다. 호텔 뷰가 좋으니 숙소에서 쉬는 것도 마치 뷰가 좋은 카페에서 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같은 뷰를 몇 번이나 봐도 전혀 질리지도 않았다.
난 테라스에서, 와이프는 침대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휴식을 취하다가 해가 지기 시작하자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상가와 레스토랑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니 차량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국경일 축제기간이라 저녁시간 되니 차량을 통제하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해놓았다. 푸드트럭도 마련되어 있었고, 음식을 파는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도 테이블을 거리로 내놔서 많은 사람들이 음식과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전날에 불꽃 축제할 때 나오지 않은 것이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미리 검색했던 맛집에 도착했는데, 이미 자리가 만석이어서 대기를 해서 겨우 자리를 받았다. 축제기간이라 그런지 모든 레스토랑이 만석이었다. 메뉴 주문하는 것도 상당히 오래 걸렸다. 시간도 여유로웠기 때문에 보채지 않고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메뉴는 이 레스토랑에서 유명한 수제 햄버거와 점심때 맛있게 먹었던 라클렛을 주문했다. 그리고 당연히 빠질 수 없는 맥주도 같이 주문했다. 시간은 이미 저녁시간인데, 해가 늦게 지기 때문에 여전히 밝았다. 아이어 북벽 옆에는 달이 마냥 어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 구경도 하고, 축제 분위기도 느끼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신혼여행 때 라스베가스에서 햄버거를 질리도록 먹었기에, 올해는 더 이상 햄버거는 없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금세 까먹고 역시나 맛있게 잘 먹었다. 그리고 라클렛은 점심때 먹었던 곳 보다 감자의 양이 매우 적었지만 역시나 맛있었다.
아이거 북벽 옆의 달이 선명해지고, 축제의 분위기는 더욱 무릇 익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축제의 거리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하나가 되어 구경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에 갔을 때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혹시나 소매치기당할까 봐 조심했었는데, 여기는 스위스니까 마음 놓고 그냥 즐겼다. 가끔 인터넷에 소매치기가 있다고 했지만, 소지품은 작은 카메라 하나만 가지고 나왔기에 그냥 사람들 속을 활보하고 다녔다.
광대의 공연을 한참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지루해졌다. 다시 거리를 걸으면서 거리에서 파는 음식들을 침 흘리며 보다가 배만 안 고팠으면 먹고 싶다란 생각에 아쉬워하며 초입에서 노래를 부르던 밴드로 갔다. 노래가 매우 흥겨워서 앞에서 구경을 하는데, 흥에 겨운 사람들이 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 부부가 춤을 먼저 추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여러 팀이 나와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더욱더 흥이 나는 무대가 되었다.
나중에는 구경하던 관객들과 다 같이 춤을 추면서 즐겼는데, 여행 와서 느끼는 이런 즐거움이 너무 좋았다. 한동안 이어지는 노래와 다 같이 춤을 추며 웃고 즐기다가, 숙소로 들어와서 쉬기로 했다. 우리나라 국경일도 이렇게 다 같이 즐기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었다. '놀 줄 모르는 한국사람들'이었는데,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논다고 하면 항상 술을 마신다고 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더욱더 동감하게 되었다. 즐길 때 술이 들어가면 물론 흥이 겹지만, 이렇게 축제와 같은 분위기도 있었으면 했다. OO 축제 이런 것이 아닌 동네에서 말이다.
숙소에 도착해서 잘 준비를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하수를 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카메라를 세팅하고 몇 차례 촬영했는데, 구름이 많고 달 때문에 밝아서 그냥 포기했다.
그래도 새벽에는 관찰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 삼각대로 미리 구도는 잡아두고 은하수 확인하는 앱으로 시간대를 확인하고 알람을 맞추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