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킹#4 : 뭰리헨 - 클라이네샤이덱 , 청정마을 뮈렌
전날 밤에 은하수를 못 본 것이 아쉬워서, 새벽 2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들었었다. 아침이 되면 그린델발트를 떠나 벵엔이라는 지역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하수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테라스를 나가서 보이는 첫 풍경에서부터 구름이 보였고 내 기대는 물 건너갔다. 그래도 일어난 것이 아까워 구름 사이로 은하수가 보일까란 생각에 몇 컷 찍었지만, 역시나였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다시 잠들었다.
아침이 되어 오늘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날씨가 어떨까란 걱정에 테라스로 나가서 밖을 바라보았다.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오늘의 날씨도 대박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몇 번을 봐도 이 호텔에서 보는 뷰는 정말 환상적이다.
시계를 보니 조식 시간보다 훨씬 일찍 일어났다. 알람을 맞춘 것도 아닌데, 몸이 먼저 반응해서 상쾌하게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멋진 뷰를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 한 캔과 한국에서 사 온 컵라면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했다.
여행 와서 즐기는 이런 소소한 것들이 나에겐 하나의 낭만이다.
조식 시간이 되어 이동하기 전에 체력 보충을 하고자 든든하게 먹었다. 오늘 가는 곳은 벵엔이라는 작은 도시인데, 그린델발트에서 기차 타고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차로 들어갈 수 없는 마을이기 때문에, 이동하는 방법은 기차 또는 케이블카뿐이었다. 안내책자에서도 벵엔에 가기 위해서는 라우터브루넨에 주차를 하고 기차 타고 이동하라고 되어있다.
그린델발트 기차역에 도착하니, 클라이네샤이덱으로 가는 기차 시간이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인터라켄 OST로 가는 열차도 찍으며, 기차를 기다렸다. 매일 이른 아침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도착한다. 정말 다들 부지런한 것 같다. 여행을 다니면서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부지런했던 곳은 여기가 처음인 것 같다. 새벽 6시인데도 역은 항상 북적거려서, 가끔 '내가 늦잠을 잤나' 싶을 정도다.
사진을 찍으며 놀다 보니 클라이네샤이덱으로 가는 기차가 도착해서 멋진 풍경을 바라보고 이동했다. 몇 번을 봤던 풍경이라 그런지, 카메라는 꺼내지도 않고 그냥 바라만 보며 이동했다. 난 여행을 다니면서 핸드폰은 가방에 넣어도 카메라는 항상 손에 들고 다닌다. 조금이라도 멋져 보이거나 흥미가 가면 일단 찍고 본다. 놓치면 다시는 못 볼 풍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다못해 작은 서브 카메라도 들고 다니는데 이번에는 한 지역에 머물면서 같은 곳을 자주 이동하다 보니 카메라를 꺼내도 결국 똑같은 사진들만 여러 장 찍을 것 같아서 아예 눈으로 보기로 한 것이다.
경치를 바라보고 30여분을 달려서 환승역인 클라이네샤이덱에 도착했고, 곧바로 라우터브루넨 방면으로 기차를 갈아탔다.
여태까지 봤던 전혀 다른 풍경을 바라보며 벵엔으로 이동했다. 클라이네샤이덱으로 이동할 땐 아이거 북벽을 바라보며 이동했다면, 이 경로에서는 옆에는 빙하로 둘러 쌓인 융프라우를 바라보며 이동했다. 그동안 못 봤던 풍경이라서 한참을 감탄하며 바라봤다. 빙하가 녹아서 만든 폭포라던지, 중간중간 크레바스가 보이는 빙하라던지 모든 것이 멋있게 보였다. 나에게 시간이 일주일만 더 있었다면 벵엔까지 트래킹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코스를 트래킹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정말 부러웠다. 코스 자체가 어렵지도 않고 이렇게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 같았다.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한참 가다 보니, 저 멀리 자리 잡은 벵엔이 보였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많이 달랐다. 난 넓은 들판에 듬성듬성 있는 집들을 상상했다. 왜냐면 작은 마을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린델발트보다도 작은 마을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모습을 보고 약간 아쉬워했었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린델발트에서 한 번밖에 못 봤던 은하수를 다시 한번 감상하고 사진으로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밤에 불빛이 없어야 하는데, 이 정도의 마을이면 역시나 쉽지 않겠다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벵엔에 도착해서, 구글 지도를 보며 방향을 잡아갔다. 그래도 막상 도착하니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조용하고 한적했다. 지도를 보며, 숙소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벵엔에 올 때 차는 잠시 두고 기차로 이동하세요. 차량 진입이 안 되는 마을입니다.
차가 없다 보니 차도로 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을 유지에 필요한 차는 있었고 (그래 봤자 손에 꼽을 정도), 호텔에서 짐을 옮겨주는 차량들은 모두 전기로 구동하는 카트 수준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차는 없지는 않지만 외부에서 차를 가지고 들어올 수는 없는, 약간 애매한 마을이었다. 막상 실제로 차가 들어올 수 있다고 해도 길들이 전부 좁아서 교통 대란이 일어날 것 같았다.
걷다 보니 지도상에서 숙소라고 알려주는 곳에 도착했다. 호텔과 샬레 2개가 있었다. 그런데 좀 많이 애매했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샬레인데, 숙소 안으로 들어갔더니 리셉션도 안 보이고 안내판도 없는 것이다. 너무 조용해서 잘못 예약했나란 생각이 들어서 다른 샬레에도 가봤다. 역시나 불도 다 꺼져있었다. 10여분을 서성이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샬레 앞에 있는 호텔에 들어가서, 죄송한데 이 호텔이 아니라 옆의 샬레 예약했는데 리셉션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여기에서 한다고 하는 것이다. 진작에 처음부터 물어볼 걸이란 후회를 하면서도 잘 풀려서 다행이란 생각에 방키를 받았다. 방 넘버는 기분 좋게 1번이었다.
방을 보여주는데, 둘이 쓰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었다. 여태 호텔에서만 살았는데 여기는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까지 있는 것이었다. 와이프와 나는 숙소가 너무 좋아서, 여기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그러나 내일 인터라켄으로 넘어가면 그다음 날에 공항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다음에 스위스를 오면 이 숙소를 꼭 예약해서 한번 더 오기로 했다.
숙소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기분 좋게 좀 쉬고 싶었지만, 오늘의 일정인 뭰리헨과 새로운 트래킹을 하기 위해서 짐을 간단히 풀고 밖으로 나왔다.
사람이 없으니 상당히 조용한 마을이었다. 한적한 거리를 걸으며, 숙소 앞에 있는 교회에서 내일 아침에 한복 입고 촬영도 하기로 했다. 역에서 숙소로 오는 길에 봤던 케이블카 역에 도착했다. 때마침 출발시간과 딱 맞아서 기다리는 시간 없이 바로 타고 뭰리헨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점점 멀어지는 벵엔을 바라보며,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금세 뭰리헨에 도착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좋았던 날씨가 어느새 구름이 많이 꼈고, 케이블카에 내리니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걷다가 비가 오면 어떡하나란 생각을 했지만, 처음 트래킹을 했던 날의 좋은 기억 때문인지, 내심 이번에도 비가 내리기를 사실 기대도 했다.
뭰리헨 역에 도착해서, 20여분 꼭대기로 트래킹을 해야 한다. 제일 높은 곳에서 융프라우, 아이거 북벽, 뮌히를 왕관 모양처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로 클라이네샤이덱으로 트래킹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온 김에 한번 보고 싶어서 1시간 정도만 투자하기로 했다.
걷는 길이 너무 예뻤다.
이번 스위스 트래킹 코스 중에서 베스트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뭰리헨 - 클라이네샤이덱 코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정말 이 코스는 꼭 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와이프와 길을 걸으며, 계속 감탄사를 연발했다. 스위스에 오면 이 길은 다시 걸어보자고 할 정도였다. 그렇다로 다른 코스가 별로였던 것도 아니다. 어느 길을 걸어도 동화 같은 곳이었는데, 오늘 걷는 이 코스는 그냥 대박이라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뭐라고 표현을 하던, 실제로 보는 것보다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림 같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서 뻥 뚫린 풍경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어느새 꼭대기에 도착하게 된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그린델발트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벵엔이 보인다. 또 눈 앞에 3개의 봉우리가 보인다. 특히, 융프라우는 장관이다.
전망대에서 경치를 바라보고,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며 땀을 식혔다. 발가락의 통증 때문에 샌들을 신고 왔었는데, 전혀 힘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운동화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트래킹화를 신고 올라왔는데 샌들 신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가끔 사람들이 쳐다보기는 했지만, 전혀 걷는 것에 불편함이 없었고 그렇다고 위험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융프라우를 바라보며 걷기
정확히 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융프라우, 아이거 북벽, 뮌히를 바라보며 걷는다. 뭰리헨 꼭대기에 오를 때는 안 보이지만, 꼭대기에서 클라이네샤이덱으로 걸어가는 코스는 정말 환상적이다. 어느 정도 휴식시간을 가지고 이제 본격적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지금부터 끝까지 내 눈앞에 펼쳐진 저 세 봉우리를 바라보며 걸을 것이다.
흐렸던 하늘도 잠시나마 길이 열렸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트래킹을 하기 가장 좋은 조건으로 만들어주었다.
다시 시작점인 뭰리헨 역에 도착해서, 이정표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곳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목적지인 클라이네샤이덱으로 방향을 잡고 걸었는데, 이번에도 코스는 1시간 30분이다.
역 옆에는 목장과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꼭대기에 오를 때 잠시 앉아서 간단하게 빵과 과일을 먹었기에 바로 패스하고 트래킹을 바로 시작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트래킹의 맛도 알게 되었다. 손에 카메라를 쥐고 쉴 틈 없이 계속 사진을 찍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스위스에 트래킹을 하러 온다면 이 코스는 꼭 다녀오라고 추천하고 싶다. 트래킹 일정이 없더라도, 이 코스는 꼭 넣어라고 하고 싶다.
사진도 찍고 하다 보니, 이번에도 1시간 30분이 초과되었다. 그래도 너무너무 좋은 길을 걸었더니 힘들지도 않았다. 멀리 클라이네샤이덱 역이 보이는데 아쉽기까지 했었다. 코스 끝나는 지점 근처에 레스토랑이 있는데, 여기에서 경치를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와 간단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취리히에서 먹었던 감자전 맛이 나는 뢰스티와 소시지를 먹기로 했다.
트래킹 후에 먹는 맥주는 항상 옳다. 속까지 시원 해지는 맥주를 마시며 든든하게 식사를 마쳤다. 유심이 없기 때문에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보고, 한국 소식을 잠시 보다가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마저 걷기로 했다.
클라이네샤이덱에 도착해서 다시 라우터브루넨 방향의 기차를 탔다. 멋진 풍경을 바라보면서, 트래킹 하면서 지친 다리도 풀어주었다. 벵엔에 내려서 숙소로 들어갈까 하다가, 청정마을이라고 하는 뮈렌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뮈렌으로 가기 위해서는 라우터브루넨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Grütschalp'에 내려서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스위스 여행하기 전부터 와이프가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해서 시간도 남아서 한번 가기로 했다.
라우터브루넨에 도착해서, 케이블카 타는 곳에 이번에도 시간을 딱 맞춰서 도착했다. 기다림 없이 타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Grütschalp'역에 도착하니, 바로 갈아타는 기차가 있었다. 스위스는 환승 시스템도 너무 잘되어있어서 특별한 기다림 없이 바로바로 환승이 진행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뮈렌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마지막 기차 시간을 확인했다. 라우터브루넨까지 돌아가는 케이블카까지 생각하니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산속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관광객들이 어찌 알고 많이 찾아왔다. 뮈렌 마을도 역시 대부분 레스토랑과 호텔들이 많았다.
뮈렌 마을의 가장 큰 매력은 눈 앞에 보이는 융프라우라고 할까. 그린델발트가 눈 앞에 아이거 북벽을 두고 있다면, 뮈렌은 융프라우를 눈앞에 두고 있다. 1년 내내 만년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 외에 크게 매력을 느낄 수는 없는 곳이었다. 한번 궁금해서 오기는 했지만, 만약 다시 스위스에 온다면 들리진 않을 것 같다. 와이프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도 왔으니 마을 전체를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걷는 도중에 이 작은 마을에도 COOP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간단히 장을 봤다. 벵엔의 숙소가 요리 가능하기 때문에 훈제 삼겹살과 라자냐, 바게트,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를 샀다. 청정마을 뮈렌에 와서 장 보고 가는 것이 웃기긴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심심한 마을이라서 큰 재미는 못 보고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갔다.
보통 여행지를 떠나면 미련과 아쉬움이 남지만, 뮈렌만큼은 그런 느낌 없이 한번 와봤다란 생각만 가진 체 다시 라우터브루넨으로 갔다. 벵엔으로 가는 길에 폭포가 보였는데, 여기에서 유명한 폭포라고 했다. 바로 앞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폭포 뒤에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게 다라고 했다. 그래서 기차 타고 올라가는 길에 본 것이 전부였다.
벵엔에 도착해서, 숙소로 가는 길에 마을도 한번 둘러봤다. 처음 도착했을 때 숙소를 찾는다고 제대로 구경을 못했는데 오히려 뮈렌보다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앞에 있는 교회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좋다고 해서 가봤는데, 융프라우도 눈에 들어왔고 기차를 탔던 라우터브루넨도 보였다. 그리고 올라오면서 봤던 폭포도 바로 보였다. 벤치에 앉아서 조용히 경치를 관람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주변에 관광객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여유가 깨져버렸다. 그래서 그냥 숙소에 들어와서 저녁을 차려먹기로 했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창밖을 바라보니 끝내주게 멋있는 일몰이 펼쳐져있었다.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경험상 이 정도까지 펼쳐졌으면 자리 잡고 하는 순간에 다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그냥 바로 감상하는 것이 훨씬 나아서 창문 넘어 바라보기만 했다.
처음 사용해보는 조리기구들과, 부족한 도구들로 인해 생각보다 저녁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지만 그래도 한상 가득 차려놓고 보니 푸짐했다. 그린델발트에서 샀던 와인을 드디어 여기에서 오픈을 하고 맛있는 저녁식사 시간을 가졌다.
저녁을 마치고 따뜻한 물로 씻고 나오니 다시 온몸이 나른해졌다. 내일은 일어나서 인터라켄으로 이동해야 하는 날인데, 큰 일정이 없기 때문에 아침에 사진도 찍고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하루 건너뛰고 트래킹을 해서인지 금세 잠이 몰려왔고, 오늘 하루도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