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킹#5 : 쉬니케플라테, 마지막 목적지 인터라켄
벵엔에서 맞이하는 아침, 알람도 없이 개운하게 일어났다. 스위스 여행하면서 일찍 잠들어서 그런지 아침만큼은 항상 개운하게 일어났다. 마치 핸드폰 충전하듯이 그날 방전된 체력을 충전해서 다음날 아침에 완충과 동시에 눈이 떠지는 듯하다.
역시나 일어나서 더 잘 생각은 하지 않고 카메라를 챙기고 아침 산책할 겸 나왔다. 내가 사진을 시작하면서 큰 변화 중 하나가 부지런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여행 와서 투자하는 시간만큼 좋은 사진과 견문이 넓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잠깐 피로하더라도 최대한 시간을 많이 쓸려고 노력한다.
숙소 주변을 시점으로 벵엔 역까지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아침 7시도 안된 이른 시간인데, 이미 여행객들이 캐리어를 끌며 이동하는 소리가 산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숙소 앞의 잔디밭에 있는 썬베드에 결국 누워보진 못했다.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하면서 챙겨 오지도 않은 책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산책을 마친 뒤에 햇볕이 들어와서 그냥 패스해야 했다. 숙소 앞에 밑으로 이어진 길이 있었는데, 한 번은 가보고 싶었었다. 밑으로 내려가는 길인 것 같아서 사람도 없고 조용한 틈을 타서 내려가 보기로 했다.
하얀 건물의 집이 나왔는데, 알고 보니 그냥 개인 집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길이 좋아 산책길이 이어질 줄 알고 내려갔다가, 하마터면 남의 집으로 들어갈 뻔한 것이다. 괜히 소란스러워질까 봐 조용히 빨리 빠져나왔다. 그리고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집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다시 올라와서 역 방면으로 천천히 걷다가, 숙소 앞에 있는 교회로 갔다.
아직 햇볕이 들어오기 전이라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좋았다. 어제 앉아서 풍경을 감상했던 벤치에서 조용히 한참을 바라보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융프라우를 보고 있으니, 그냥 좋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특히, 스위스에서 아침은 선선한 바람 덕분에 기분 좋게 상쾌해졌다.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뒤에서 사람 소리가 들려서 봤더니 나처럼 사진을 좋아하는 여행객인 것 같았다. 카메라를 들고 자신만의 사진을 담고 있었다. 역시, 사진을 좋아하면 부지런해야 한다.
아침에 와이프와 한복 사진 촬영을 하기로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여기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 같아서 교회를 촬영지로 확정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위에서 바라보니, 기찻길 옆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어서 한번 들렸다 가보기로 했다.
기찻길 옆에서 자리를 잡았다. 기차가 오면 괜찮은 사진이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차가 언제 올려나 생각을 해봤는데, 기다려도 오질 않았다. 딱히 갈 곳도 없고 해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산 속이라서 기차가 움직이면 기차소리가 울려서 들리기 때문이다. 융프라우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멀리서 기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드디어 기차가 눈 앞에 나타났다. 지나가기 전에 급하게 셔터를 눌러서 결과물 보고,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좋아했다.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원하는 사진을 찍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는 벵엔 거리는 정말 한적했다. 캐리어를 끌고 가던 여행객들도 전부 기차를 타고 떠났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혼자 사진을 찍으며 걷는 걸 좋아하는 나에겐 최적의 환경이 되었다.
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사진을 찍으며 산책을 하다 보니 어느새 벵엔역에 도착했다. 크지 않는 마을이라 산책코스도 길지가 않아서 가볍게 다니기 좋았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와이프도 일어나 있었고, 간단히 아침을 먹기로 했다. 전날 뮈렌에서 장 봐온 시리얼과 빵과 남은 컵라면을 먹었다.
한국에서도 잘 안 먹는 컵라면을 스위스에서만 몇 번째 먹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냥 컵라면이라고 먹었는데, 한국에서 먹었던 맛과 스위스에서 먹었던 맛이 다르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제대로 느꼈다. 얼큰하고 매운맛이 없고 순한 맛에다가, 라면의 느낌도 동남아에서 먹는 약간 잘 끊어지는 면 스타일이었다.
어제 먹고 남은 것들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한국에서 가져온 한복을 입고 사진을 촬영하러 나갔다. 막상 나가려고 하니 부끄러웠다. 특히, 외국인들이 관심 있게 쳐다봤다. 생각보다 날이 선선해서 빨리 찍고 들어와서 인터라켄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10여분 동안 여러 컷을 촬영하고, 빨리 숙소로 들어왔다. 나도 처음 해보는 촬영이라 많이 서툴렀다. 포즈라던지 구도라던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냥 촬영을 했다. 다음엔 인물 촬영에 대해서 조금 더 공부를 하기로 생각했다. 항상 풍경과 여행을 다니면서 찍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인물 촬영에 대해서는 지식이 전혀 없어서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몸소 체험했다.
숙소로 돌아와 체크아웃하고 역으로 걸어갔다. 벵엔에 유명한 치즈 집이 있다고 해서, 치즈를 좋아하는 와이프가 한번 들려보자고 했다. 가게 앞에서 난 짐을 지키며 와이프를 기다렸고, 강아지는 누워서 주인을 기다렸다.
치즈 한 조각을 구매하고 뿌듯하게 나오는 와이프와 함께 다시 역으로 이동했다. 기차를 타고 라우터브루넨으로 간 다음, 인터라켄 OST로 가는 기차로 환승했다.
역시나 인터라켄 OST 역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스위스를 여행하는 사람, 다른 나라로 떠나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언제나 활기찬 곳이다. 기차역 바로 앞에 있는 COOP에 들려서 시원한 물을 사고, 구글 지도를 보며 예약한 마지막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여태 숙소가 기차역에서 가까웠다면, 이번 숙소는 도보로 2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무더운 날씨에 캐리어와 카메라 가방까지 들고 가니 힘들어서 사진 찍을 여유가 없이 그냥 지도만 보며 열심히 걷기만 했다.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인터라켄 오기 전부터 먹고 싶다고 했단 학센을 먹기로 했는데, 지도상으로 도보로 약 20분 정도 다시 걸어야 했다.
스위스 호텔을 예약하면, 무료 버스 티켓을 주는데 한 번도 이용 못해서 인터라켄에서만이라도 타보려고 했으나 버스 시간이 맞질 않아 결국 다시 걸어서 가기로 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레스토랑이 아직 오픈 1시간 전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다가, 배도 고프고 저녁에 먹기로 하고, 근처에 사람 많아 보이는 피자집으로 갔다. 스위스에서는 피자도 좋은 치즈를 사용하겠지란 생각하나만으로 고른 것이다. 맥주와 피자를 주문해서 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하며 점심식사를 했다.
배도 채우고 체력이 보충되자, 근처 COOP에서 간단하게 마실 것을 들고 강을 따라 걸었다. 더워도 너무 더워서 금세 체력이 바닥났다. 여행 7일 차가 되다 보니 체력 방전도 빨리 되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산에서 지낼 때는 시원해서 좋았는데, 막상 내려오니 햇볕이 너무 따가워서 조금만 걸어도 땀이 많이 흘러내렸다. 걷다가 벤치 앞에서 잠시 쉬면서 체력을 보충해야 했다.
말도 안 되게 예쁜 빛을 띠는 강을 바라보며 휴식시간을 가지다가 기차역으로 갔다. 빌더스빌로 가서 오늘의 목적지인 '쉬니케플라테'로 가기 위해서다. 올라가는데만 약 1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천천히 올라가는 기차인데, 오늘 아니면 더 이상 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가야 했다.
인터라켄 OST 역에서 한 정거장만 가면 환승역인 빌더스빌에 내려서 앙증맞은 빨간 기차를 타고 '쉬니케플라테'로 출발했다. 어릴 때 타본 비둘기호와 같은 수준의 속도였다. 느려도 정말 느렸다.
느린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겠지란 생각을 할 정도로 천천히 오르막길을 오르는 기차를 타며 밖을 보니, 멋진 풍경을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지나가는 표지판 글도 읽을 수 있었고, 호기심이 가는 것은 더 오랫동안 집중해서 볼 수도 있었다. 여행객에게 느린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1시간 동안 풍경을 바라보며, 드디어 목적지인 '쉬니케플라테'에 도착했다. 인터라켄의 무더위는 어느덧 사라져 있었고 시원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쉬니케플라테는 야생화를 보면서 트래킹을 할 수 있는 코스이다. 코스가 6개 정도 있는데, 가깝게는 1시간도 안 되는 코스부터 6시간 코스까지 원하는 데로 선택이 가능했다. 내려가는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1시간 30분 정도는 할 시간이 되어서, 가장 무난한 코스로 선택했다.
트래킹 코스 초입에는 수많은 야생화들이 자리 잡고 있다. 푯말에 이름과 설명이 있는데, 간혹 독성이 있는 꽃에는 경고 문구도 있었다. 특히, 눈을 비비지 말라고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는데, 트래킹 하다 보니 가장 눈에 쉽게 띄기도 해서 이렇게 경고문을 해놓은 것 같았다.
야생화를 구경하며 걷다가, 본격적인 트래킹 코스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번 스위스 여행의 마지막 트래킹을 시작했다. 여태의 코스와 다르게, 쉬니케플라테의 코스는 돌이 많았다. 그래서 샌들을 신고 트래킹을 하기에 약간 무리가 있을까 싶었지만, 경사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큰 무리가 없었다. 돌들이 많아서 가끔 공사장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주변을 보면 아름답게 펼쳐져있는 풍경 때문에 그래도 내가 스위스에서 트래킹 중이라는 것을 계속 인지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안개가 많이 껴서 몽환적인 느낌도 많이 주었다.
반지의 제왕에서 한번 봤을 법한 길을 걸으며, 이번 여행이 마무리되어가고 있다는 생각과 항상 여행의 끝에 몰려오는 여운과 아쉬움을 달랬다.
한걸음 한걸음 아쉽게 내딛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트래킹 코스를 완주했다. 코스의 끝에 소종이 있었는데, 이번 트래킹이 끝남과 스위스 여행도 이제 막을 내린다는 생각으로 크게 울려주었다. 소종 소리가 쉬니케플라테의 골짜기를 따라 멀리멀리 메아리쳤다.
기차역으로 돌아와서 내려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다시 천천히 1시간 동안 내려가야 했다. 트래킹을 하면서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역에 있었다. 전부 어디에 있었는지, 어떤 코스를 걸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앞의 야생화만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코스가 있었던 건 아닐까.
10여분을 기다리니, 기차가 올라왔다. 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며 빌더스빌을 향해 내려갔다. 인터라켄이 보일 때쯤 하늘이 열리면서 빛 내림을 선사했다. 마치 여행이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하지 마라는 것처럼 말이다.
1시간여 만에 다시 빌더스빌로 도착했다. 인터라켄으로 넘어가는 기차가 약 20분 정도 기다려야 했는데, 역 주변을 서성이다가 인터라켄으로 가는 105번 버스가 도착했다. 호텔 체크인을 하면서 104번과 105번 버스가 호텔 앞으로 온다고 한 게 기억나서, 일단 탔다. 무료티켓도 있으니, 안탈 이유가 없었다. 기차 도착하는 시간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인터라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점심때 못 먹었던 학센을 먹기 위해서, 레스토랑 근처에 내려서 다시 걸어갔다.
다행히, 레스토랑은 오픈해서 많은 손님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학센을 먹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나의 기대는 더욱 커져갔다. 메뉴는 고민할 것도 없이 맥주와 학센을 주문하고, 그동안 야채를 못 먹어서 샐러드와 염소치즈까지 3개를 주문했다. 손님들이 많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지만, 나온 음식들을 보자 지루함은 사라졌고, 배고픈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내가 기대했던 그 이상으로 맛있는 학센과 맥주를 먹으며, 인터라켄에서 꼭 먹고 싶었던 것을 먹었으니 더 이상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학센을 결국 남기고 레스토랑을 나와서, 낮에 들렸던 COOP에서 저녁에 마실 맥주와 기념품을 샀다. 그리고, 수제 초콜릿 집에 가서 비싸지만 그래도 맛이 궁금해서 하나 사들고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내가 예약한 호텔 밑에는 작은 펍이 있었는데, 저녁시간이 되니 사람들이 많이 북적였다. 유명한 맛집인가 싶어서 내려와 맥주를 한잔하려고 했으나, 역시나 씻고 나오니 나른해지는 몸 때문에 맥주는 포기하고 그냥 쉬기로 했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기차 타고 취리히 공항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이른 시간에 침대에 누웠다.
쉽게 잠들지가 않아서, 창밖을 바라보니 구름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세팅하여서 그린델발트에서 처럼 타임랩스를 담았다.
타임랩스도 다 담고 나서, 침대에 다시 누웠다. 오늘 밤이 이번 스위스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생각보다 일찍 드는 잠이 많이 아쉽기도 했지만, 스위스는 밤에 활발해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큰 미련 없이 하루의 마무리를, 이번 여행의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내일이면 공항으로 가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나의 스위스 여행의 일정은 잠에 들면서 마무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