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드 호수와 포스토이나 동굴
둘째 날 아침, 호텔의 조식을 챙겨 먹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슬로베니아를 여행 목적지로 넣었을 때, 단순히 가까워서가 아니었다. 블레드 성이 있는 블레드 호수와, 세계 최대의 동굴 포스토이나 동굴이 보고 싶어서였다. 렌터카 여행의 장점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것 같다. 달리다가 예쁜 곳이 있으면 잠시 세워두고 구경할 수 있고, 다른 곳으로 경로를 바꾸기도 참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구글 지도를 보면서 바로 검색해서 갈 때나 가능한 일이다.
인쇄해온 지도 한 장을 펼쳐두고, 혹여나 길을 잘못 들까 봐 보이는 길 이름과 국도 번호를 비교해가면서 1시간 정도 달려 블레드 호수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본격적으로 호숫가를 걷기 시작했다.
블레드 호수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이다.
첫 유럽 여행을 와서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니, 꿈인 것 같았다. 투명한 호수를 바라보며 걷거나, 울창한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을 때나, 주변 건물들을 지나갈 때나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없던 감성도 생기게 만들었다. 이때 챙겨간 카메라와 렌즈가 너무 아쉬워서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그늘로 다니다가, 호수 가운데 있는 블레드 섬으로 가는 배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뱃사공이 태워주는 것을 타고 가려고 배에서 기다렸으나, 생각보다 사람들이 탑승하지 않아 30여분을 기다리다 그냥 나왔다. 얼마 가지 않아 보트를 빌릴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그래서 노를 저어서 섬까지 가기로 했다.
급하지 않게, 힘들면 쉬면서 천천히 호수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블레드 성으로 다가갔다. 호수 위로 내리쬐는 햇볕이 뜨겁기는 했지만, 이 마저도 기분이 좋았다. 멀리 보이는 블레드 성을 호수 투어 마치고 가보기로 했다. 섬에 들어가면 마리아 교회가 있는데, 여기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잔하면서 호숫가를 한참 바라보았다. 많은 관광객들이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주변을 거닐면서 천천히 더위를 식혔다. 작은 섬을 한 바퀴 돌고 구경을 마치고 다시 노를 저어 호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산책로를 따라서 마저 걸었다.
블레드 호수의 물은 에메랄드 빛인데 너무 맑고 투명해서 물고기가 몇 마리인지 전부 셀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 빛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는 보석같이 아름다웠다. 이런 길을 급하게 걷는 것은 굉장한 낭비라고 생각이 되어 아주 천천히 걸으며, 쉴 수 있는 공간이 나오면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고 쉬었다.
아름다운 블레드 호수에 빠져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가, 시계를 보니 많은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래서 블레드 성은 결국 멀리서 바라보는 것 만으로 만족을 해야했고,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야했다.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는 포스토이나 동굴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긴 관광로를 제공하는 동굴인데, 너무 길어서 초입에서 기차를 타고 진입하는 곳이다. 더운 여름이라 시원한 곳을 구경하고 싶기도 했고, 동굴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 여행의 필수 코스로도 넣었다.
블레드 호수에서 1시간 30여분을 달려가면 도착하는 곳인데, 생각보다 슬로베니아 내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포스토이나 동굴에 도착해서, 표를 사고 옆의 동굴에 사는 생물을 키우는 수족관 같은 곳에서 처음 보는 생물들도 구경했다.
이때가, 2013년도였는데 한국인 관광객들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안내 가이드에 한국어가 있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다만 돈을 내야 빌릴 수 있었기 때문에, 그냥 구경하기로 했다.
입장시간이 되어 게이트가 열리고 기차를 탑승했다. 동굴을 기차로 들어간다는 것에 상당히 난 흥분했고 큰 기대를 하게 되었다.
포스토이나 동굴에서는 동굴 내에 서식하는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지내는 생물이기 때문에 빛에 상당히 취약하며, 플래시 잘못 터뜨리면 한 번에 실명이 온다고 했다. 그래서 기차에서 내리면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달리는 동안만이라도 사진을 찍었다.
내가 많은 동굴을 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 포스토이나 동굴보다 웅장하고 멋있는 동굴은 앞으로도 못 볼 것 같았다. 여기를 안 왔으면 평생 후회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기차로 한참을 들어가서 다시 도보로 한참을 이동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정말 경이로웠다. 특히, 중간에 동굴 내부의 모든 불빛을 끄는 시간이 있다. 매우 짧은 시간이었는데, 눈 앞이 캄캄해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정말 무서웠다. 만약 동굴에 혼자 갇힌다면 평생 못 빠져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동굴을 처음 발견하고 탐험한 사람도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투어를 마치고, 동굴 밖으로 빠져나왔더니 해가 지면서 우리를 눈부시게 맞이해주고 있었다. 어두워지면 길 확인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서둘러 류블랴나로 돌아가야 했다.
류블랴나로 도착할 때쯤 해가 지고 어두워졌지만, 다행히 아는 길들이 나와서 숙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가 않았다. 간단히 씻고 재정비를 한 다음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다음 날 크로아티아로 떠나기 때문에 슬로베니아 마지막 밤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괜찮은 레스토랑에 가서 메뉴판을 보는데 '류블랴나 스테이크'가 있었다. 내심 큰 기대를 가지고 메뉴를 주문했는데, 막상 나온 것은 우리나라 돈가스와 같은 것이었다. 스위스를 다녀온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슈니첼이라고 얘기를 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스테이크라 내심 기대했던 비주얼과 너무 달라서 그냥 당했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시원한 맥주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마쳤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아름다운 류블랴나의 야경을 바라보며 숙소로 이동했다. 류블랴나 성에 올라가서 야경 보는 것을 오늘로 미뤘지만, 일정을 마치고 오니 시간이 늦어버려서 결국 들리지 못하였다. 아직까지 두고 후회 중인데, 만약 슬로베니아를 갈 기회가 생긴다면 꼭 올라가서 류블랴나 야경을 바라보고 싶다. 물론, 블레드 호수와 포스토이나도 또 갈 것이다. 많이 아쉬운 밤이지만, 앞으로 남은 여행을 위해 다음을 기약하며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