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들의 호수, 플리트비체
슬로베니아에서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고서, 본격적인 크로아티아로 여행을 떠났다. 첫 번째 여행지는 요정이 산다고 하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다. 크로아티아 여행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기도 하다. 지도를 보며 혹여나 길을 잘못 들진 않을까 하며, 옆에 펼쳐진 푸른 들판을 감상하며 목적지를 향해 3시간 정도 드라이빙했다.
오늘의 일정은 플리트비체 한 곳밖에 없었다. 애매하게 시간을 나눠서 여러 곳을 보기보다 한 곳을 제대로 보기로 했다. 특히, 다른 곳은 몰라도 이 곳만큼은 양보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주변에 호텔이 많이 있는데, 방을 잡고 1박을 하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예약한 호텔 앞에 차를 세우고 바로 국립공원으로 가서 티켓팅을 했다. 여기서도 버스를 타고 어느 정도 올라가야 트래킹을 할 수 있는 코스가 나온다. 매표소부터 트래킹을 해도 되지만, 관광이 목적이었기에 약간 편한 방법을 택했다.
플리트비체에는 트래킹 코스가 A~K 경로까지 10개가 있는데, 짧게는 2~4시간 동안 일부만 둘러보고 나올 수 있는 코스가 있었고 내가 선택한 버스를 이용하고, 중간에 보트를 타는 4~6시간짜리 코스도 있었다. 그 외에 트래킹이 좋은 사람은 전체를 걸을 수 있는 코스도 있었다. 코스 초입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길 사이사이로 보이는 에메랄드 빛 호수라던지,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라던지, 숨 쉴 때마다 깊이 들어오는 맑은 공기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코스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호숫물은 정말 맑았다. 국내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투명함이었다.
헤엄치는 오리의 발이라던지, 물고기나 수초가 선명하게 잘 보였다. 블레드 호수에서도 맑다고 느꼈지만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지키기 위해서 취사, 수영, 채집, 낚시 등을 모두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중간에 식당도 없기 때문에 미리 먹을거리들을 챙겨 와야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걷기 위해서 찾아오지만, 코스가 다양하다 보니 북적거리며 걷는 길은 거의 없었다. 다들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하며 이를 즐기기 바빴다.
요정이 사는 호수, 플리트비체. 정말 요정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플리트비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요정이 사는 호수라는 표현을 봤었다.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예쁘길래 요정이 산다고 표현을 할까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막상 이 풍경을 보기 전까지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플리트 비체 초입부터 천천히 걸으면서 바라본 경치들이 잠시나마 의심했던 나의 생각들을 가볍게 뭉게 주었고 정말 요정이 나올 것 같다고 믿게 되었다.
특히,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내부에는 수많은 폭포들이 있다. 전부 인공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낸 폭포인데, 작은 것부터 큰 것 까지 세면 수백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귓가에 들리는 시원한 폭포 소리를 들으며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는 트래킹은 정말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여러 나라를 여행해봤지만, 가장 좋았던 나라가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고민 없이 크로아티아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지금도 휴가 여행지를 계획할 때, 크로아티아는 항상 매번 후보에 올라온다. 아직 못 가본 곳이 많기 때문에 매번 탈락하지만, 내년에는 우선순위에 올려두려고 하고 있다.
중간중간 벤치가 나오면 앉아서 쉬기도 했다가, 사진도 찍었다가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그냥 구경하면서 플리트비체를 즐겼다. 더군다나 오늘의 일정은 여기 한 곳뿐이기에 바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빨리 걸으면 할 게 없었다. 그렇기에 느긋하게 쉬면서 코스를 천천히 밟아나갔다.
한참을 플리트비체의 경치에 빠져들며 걷다 보니, 넓은 호수가 나왔다. 공원 내 가장 큰 호수중 하나였다. 보트를 타고 건너야 하는데, 친환경을 위해서 전기로 구동하는 보트가 운행 중이었다. 국립공원 내에서 보트를 타고 건너는 새로운 경험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국립공원을 가지고 있는 크로아티아가 정말 부러웠다.
보트를 타고 건너면, 테이블이 많이 있는데 여기서도 식사를 하거나 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었다. 여기에서 물 한 병을 사서 목을 축이고 땀을 좀 식히다가, 남은 코스를 마저 걷기로 했다.
길을 따라 자연스레 걷다 보면, 공원 내에서 가장 큰 폭포도 만나게 된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나 역시 줄 서서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었는데, 그 웅장한 모습이 사진 한 장에 담기지 않아서 많이 아쉬울 정도였다.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코스의 끝에서 나온다. 그것도 안내표지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충 감을 잡고 알아서 안쪽으로 들어가야지 볼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잠시 쉬기 위해서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 마주쳤는데, 눈 앞에 펼쳐진 장관에 소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이 보다 아름다운 국립공원은 전 세계에 없을 것 같다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이렇게 위에서 바라보는데 바닥이 보일 정도의 투명함과 절벽과 폭포와 나무 사이에 펼쳐진 호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아름다웠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위치를 알고 찾아가지만, 내가 방문했을 때는 이런 정보를 얻기 쉽지 않았었다. 잠시 쉬기 위해 들린 곳에서 이런 절경을 만나서 너무너무 행복했다. 이 풍경 하나만으로도 크로아티아 여행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았다.
이 풍경을 끝으로, 플리트비체의 트래킹도 끝이 났다.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와 숙소에 들어왔는데 산속에 있었기에 해도 빨리 졌고,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숙소에서 저녁을 하고 푹 쉬는 것 밖에 할 게 없었다. 다음날 일어날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