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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nap Dec 08. 2017

교토&오사카(Day 2)

교토를 거닐다.

알람 소리와 함께 아침 일찍 눈을 떴는데, 여태껏 여행을 다니면서 맞이했던 느낌과는 많이 다른 아침이었다. 항상 호텔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오늘은 일반 집에서 눈을 뜬 것이, 하룻밤을 잤지만 이 곳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이런 기분 때문에 에어비엔비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집에서 간단한 요리를 해먹을 수 있지만, 남자 둘이 여행 왔기 때문에 요리는 전혀 있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맥주캔 따는 것과 안주 뜯는 것 정도뿐이기에, 아침은 나가서 사 먹기로 했다.


어두워질 때 숙소로 왔기 때문에, 동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느낌이었는지 몰랐기 때문에 주변을 한번 거닐어보기로 했다. 숙소를 나오자, 어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금 생각면 하나의 추억이지만, 그날의 기분은 스페인에서 소매치기당한 것 다음으로 좋지 않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 것인지, 마을 자체가 조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도 없고 한가로웠다. 날씨가 좋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걷기 좋은 날씨라고 위안을 삼으며 버스를 타고 첫 번째 목적지인 금각사를 향해 가기로 했다.

숙소의 위치가 좋은 곳은 아니었기에 교통편은 불편했다. 기본적으로 10분 이상 걸어가야 했는데, 숙소의 위치가 마을 내부에 있으니 의지와 상관없이 항상 마을들을 구경하면서 걸어가야 했다. 그 덕분에 주민들에게는 일상이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구경거리가 되었다. 강을 건너가면서 바라본 모습 또한 오래된 일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 마치 경주에 처음 갔을 때 보고 느꼈던 그 기분을 교토에서 다시 한번 느꼈다.


교토는 경주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낡은 기와집, 작은 건물들이 붙어있는 모습들이 정겨웠다. 강 건너의 마을도 지나가면서 골목길부터 나무까지 하나하나 구경하면서 걸어갔는데, 어느 나라던 마을을 천천히 걷는 것은 그 나라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좋은 여행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관광객들이 자주 가는 포인트들이 그 나라의 전부인 것처럼 여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실제 주민들은 어떻게 생활을 하고 어떻게 사는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마을 걷기가 최고라고 생각된다.


4월에 일본에 오면, 화려하게 만개한 벚꽃을 볼 줄 알았는데 벚꽃이 대부분 다 지고 피었던 흔적들만 남아있었다. 그래도 그 모습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에 다행이라 생각하고 다음번에는 벚꽃 만개 날짜를 꼭 확인하고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마 벚꽃과 단풍시기가 아니면 교토에 또다시 올 날이 있을까?



걷다 보니,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원래 계획은 걸어가면서 편의점이나 24시간 식당, 또는 맥도널드라도 보이면 간단하게 아침을 하기로 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배가 고픈 상태로 버스를 기다려서 금각사로 바로 가야 했다.



4~50분을 달려서 목적지인 금각사에 도착했다. 일본어로 방송을 하기에 어디쯤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계속 구글 지도로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니 수많은 관광객들이 내려서, 큰 당황 없이 한 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행 와서 버스를 이용할 때는 공항버스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일반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가니, 이 또한 하나의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편의점이었다. 아침도 못 먹은 상태로 걷고 버스 타고 왔더니 너무 배가 고팠다. 그래서 일단 간단하게 뭐라도 먹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갔다. 내가 고른 것은 연어 삼각김밥이었는데, 생각보다 연어가 크게 들어있어서 맛있게 먹었다. 배가 고파서 더 맛있게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모든 음식이 입맛에 잘 맞았다. 빨리 해치운 다음, 금각사 티켓을 사기 위해 사람들 따라 같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위치를 모를 땐 그냥 따라가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걷다 보니 금각사 입구가 나왔다. 깔끔하게 정돈된 길을 따라, 매표소로 가서 티켓을 구매했다. 티켓을 부적으로 주는데 생각보다 꽤 컸고, 기념품처럼 가져가도 좋을 것 같이 예쁘게 만들었다. 다만, 이렇게까지 크게 할 필요는 있을까란 생각도 들었지만 여행객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기념품이기 때문에 나쁘진 않았다.




금각사(金閣寺)


금각사는 무로마치 막부의 제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별장으로 지은 건물이었으나, 나중에 사원이 된 곳이다. 건물의 벽이 금으로 발라져 있어서 금각사이다. 반대로 은각사도 있는데 은이 칠해져있지는 않다고 한다.

금각사는 꾸준히 보존된 건물이 아니라, 1950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1955년도에 재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남대문처럼 화재로 소실되어서 복원된 것인데, 이 역시 정신 나간 한 명으로 인해 문화재가 소실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금각사를 보기 위해 이 연못 주변에 둘러서있다. 그 틈에 끼어서 사진을 찍다가 오랜 시간을 머물면서 감상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천천히 걸으면서 전체적인 느낌을 보기로 했다. 잘 가꾸어진 정원처럼 되어있어서 산책하듯 가볍게 걷기 좋은 곳이었다.



여유롭게 둘러보면서 출구 쪽으로 나오니 시원해 보이는 녹차 아이스크림이 보였다. 갈증도 해소할 겸 일본에 녹차나 말차 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는 얘기도 듣고 해서, 하나 사 먹었는데 진한 녹차맛이 꽤 맛있었다. 다만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한 그런 맛은 아니었다.



금각사 주변에도 유명한 맛집이 있다고 해서, 미리 검색해와서 가려고 했으나 오픈 시간이 아직 1시간 넘게 남아있어서 기다릴까란 고민도 했다. 친구와 나는 의견 일치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바로 은각사로 넘어가기로 했다. 왠지 오늘은 타이트한 일정이 될 것 같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은각사를 향해갔다. 은각사 정류장에 내려서 조금만 걷다 보면 철학의 길이 나온다. 이름부터 심오하다. 철학의 길이라니.. 의미를 찾아보니 교토 대학 교수 니시다 기타로가 사색을 하며 걷던 길이라고 해서 철학의 길이라고 한다. 여기부터 은각사까지 이어지는 길이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으로 그렇게 이쁘다고 한다.


벚꽃과 함께 사색을 즐기는 길, 철학의 길


그래서 벚꽃을 구경하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인데, 내가 도착했을 때는 역시나 벚꽃이 거의 다 지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래도 꽤 많이 남아있어서 충분히 감상하기에 예뻤고, 하천에 떨어진 꽃잎들이 오히려 또 하나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천천히 걸으며 벚꽃을 감상하고 있으니 철학의 길에 대한 의미가 이해되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걷기에 참 좋은 길이라 느꼈다.



철학의 길에서 벚꽃을 구경하며 나답지 않은 사색을 즐기면서 은각사를 향해 걸어갔다. 은각사를 향해 가는 길은 금각사보다 볼거리, 먹거리들이 많았다. 은각사에서 구매한 입장권 또한, 금각사처럼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부적으로 주었다.


은각사(銀閣寺)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나무들을 잘 가꾸어 하나의 벽으로 만든 길이 나타났는데 지나가면서 미로를 통과하는 느낌이 들었다. 금각사와 달리 은각사 곳곳에는 바닥에 잘 정돈된 모래 정원이 나왔는데, 후지산을 형상화한 작품이 보일 때쯤 눈앞에 은각사가 등장한다. 금각사 대비 수수하면서 심심해 보이는 이 건물이 나에게는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은각사이지만 은이 칠해져있지는 않았다. 돈이 부족해서 그랬다는 말도 있는데, 이 건물이 은색이었다고 생각하면 어울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금각사보다 훨씬 더 잘가꾸워진 은각사가 마음에 들었다. 차분한 느낌이 드는 이 곳을 천천히 둘러보며 천천히 감상했다. 은각사 뒤로 언덕까지 이어지는 산책로 또한 상당히 잘 되어있었다. 마치 숲 속을 걷는 기분이 들었는데, 언덕 위에 도착하면 교토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속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교토에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금각사는 안 오더라도 은각사는 꼭 한번 더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는 것이 아쉬울 만큼 큰 만족을 준 은각사를 뒤로 하고, 밥을 먹으러 내려왔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삼각김밥 하나만 먹고 지금까지 돌아다녔더니, 너무너무 배가 고팠다. 맛집을 조사해 온 친구가 은각사 주변에 우동이 유명한 집이 있다고 해서, 그곳에 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미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다행히 대기줄이 길지 않아서 기다려서 먹어보기로 했다.



20여분을 기다리고 나니,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었는데 메뉴판을 보고 고민하다가, 국물에 적셔 먹는 우동을 선택했다. 보통 우리는 우동을 먹을 때, 면과 국물을 즐기지만 일본에서는 면을 더 즐긴다고 한다. 그래서 면에 간이 배게 하기 위해서 국물이 짜게 나온다고 한다. 처음 즐겨보는 우동 방식이라 많은 기대가 되었다.



기호에 따라, 조미료나 야채를 국물에 넣어서 맛을 낼 수 있었는데 처음 먹어보기 때문에 대충 그림으로 표시된 설명을 보면서 적당히 입맛에 맞게 조절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면이 나왔는데 내 입맛대로 조절한 국물에 적셔서 먹어보니 너무 맛있었다. 면발의 탄력도 정말 좋았고 국물이 아닌 간이 된 면만 먹는 것이 완전 내 스타일이었다. 가끔 컵라면 먹을 때, 국물을 많이 좋아하질 않아 다 버리고 면만 가끔 먹기도 하는데 내가 먹는 스타일이 이상하다고 생각 들었지만 이제는 어디 가서 당당하게 일본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첫 식사를 정말 만족스럽게 마치고 나서, 이번 여행에서 하이라이트로 계획한 청수사, 일명 기요미즈데라로 향했다. 가장 유명한 곳이니만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수많은 인파 속에 갇혀버렸다. 사람들 틈에 끼어서 목적지를 향해 반강제적으로 걸어갔다.


청수사(淸水寺), 기요미즈데라


청수사는 우리나라 말로 풀이하자면, '물이 맑은 절'이란 뜻이다. 이 절 역시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다.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과 재건이 반복되었는데, 현재 우리가 보는 건물의 대부분은 1633년에 재건된 것이다. 물이 맑다는 뜻과 다르게, '무대(舞台) 난간에서 뛰어내린 후 살아남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라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실제 고문서를 바탕으로 보면 생존확률은 80%라고 하는데, 죽지 않아도 불구로 살아야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무대는 우리가 청수사 하면 떠오르는 그 건물을 말하는 것이다.



본 무대로 가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구매해야 한다. 그전까지는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지만 여기에 온 이유는 유명한 무대를 직접 발을 내딛는 것이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 없이 입장권 구매 후 입장했다. 목조 건물 내부에 들어가면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여유롭게 사진을 찍으며 감상할 수 없었지만, 이 내부에 내가 들어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저 멀리 교토 타워도 한눈에 들어왔다.



중간중간에 향을 피워 소원을 빌 수 있게 해놨으며, 밑으로는 마시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약수를 마시기 위해 사람들이 줄 서있었다. 학업 등 각자가 원하는 약수를 마시면 이루어준다는데, 줄 서서 기다릴 만큼 이루고 싶은 소원이 없었기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이런 미신들이 내 소원을 이루어줬다면, 이미 난 억만장자가 되어있을 텐데.. 하나만 이루어졌어도 저 줄은 몇 시간이라도 기다릴 수 있었을 것이다.



무대를 빠져나와 걷다 보니, 사진 포인트가 나왔다. 청수사를 검색하게 되면 항상 보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였는데 나 역시 지나칠 수 없어서 사진을 열심히 찍기 시작했다. 아마 청수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여기가 아닌가 싶다. 벚꽃이 진 것도 아쉬웠지만 단풍이 절정일 때 오면 장관일 것 같아서, 다음 교토는 무조건 가을로 결정한 순간이기도 했다.



무대를 받치고 있는 구조물은 못이나 정으로 박은 것이 아닌 오로지 나무들로만 연결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버티고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저런 무게를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설계한 사람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한 바퀴를 둘러보니, 중간에 의식을 드리는 곳이 있어서 잠깐 틈에 끼어서 구경을 하다가 무엇에 대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니 관심이 금세 사라져서 청수사를 내려오기로 했다. 이번 여행에서 큰 기대를 한 곳이었기에 만족도 또한 매우 컸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벚꽃과 날씨였는데, 다음을 위한 기약으로 남기기로 했다.



내려오면서 기념 자석도 하나 구매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기념품으로 모으는 것은 자석밖에 없는데 수많은 기념품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자석 하나를 발견해서 고민 없이 구매했다.


원래 오늘의 계획은 기요미즈데라 까지였다. 그리고 끝나면 저녁에 기온 거리를 걸으면서 야경 구경을 하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애매하게 남았다. 카페에서 쉬기도 아깝고 그렇다고 기온 거리에 가기엔 아직 밝은 것 같아서 다음날에 가기로 한 후시미이나리로 가기로 했다. 이왕 걷는 김에 오늘 하루 최대한 걷고 오사카부터는 여유롭게 즐기기로 했다. 물론 이것도 지켜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여우 신사, 후시미이나리


이번에는 버스가 아닌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 마주하는 철로의 모습에 순간 대만 여행이 생각났다. 내가 대만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스펀과 지우통에서 느꼈던 기차와 철길 등 모든 것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모습이었는데, 여기에서 그 모습이 잠깐 떠올랐다. 물론, 예쁘기는 대만이 훨씬 예뻤지만 말이다.



여기도 청수사 못지않게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도 역시 소원 성취를 위해서 오는 곳인데, 학생들이 다른 곳 보다 많이 보였다. 학교에서 단체로 오는 것인지, 아니면 학업 소원 성취를 위해서 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여기는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기 때문에 돈을 내고 입장을 해야 하는 청수사보다 인기가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학생들과 관광객들 무리에 껴서 후시미이나리로 이동하는데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우동 이후로 먹은 것 없이 열심히 걷기 시작했더니 금세 배가 고파진 것이다. 친구와 고민 없이 삼겹살을 통으로 꼬지로 만든 것과 타코야키를 사 먹기로 했다. 삼겹살 꼬지는 생각했던 딱 그 맛이었는데, 하나만 먹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맛있었다. 그리고 타코야키도 한국에서 먹는 숨은 문어 찾기의 타코야키가 아닌 문어의 식감이 느껴지는 제대로 된 것이었다. 역시 맛있게 먹으면서, 남아있는 기간 동안 타코야키를 많이 사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열심히 걸었다. 후시미이나리에 도착하니 같이 올라온 수많은 인파 대비 생각보다 인원들이 많이 있지는 않았다. 빨간 건물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으나, 막상 다가가니 대부분 기념품 샵이어서 감흥이 많이 사라졌다. 여기에도 약수를 마시려고 많은 사람들이 줄 서있었다. 나의 목적은 빨간 기둥이 있는 통로였기 때문에 적당히 둘러만 보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우 신사라는 이름 때문에 여우를 모시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신의 사자가 여우인데 신과 같이 모시면서 발생한 오해라고 한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후시미이나리의 하이라이트 빨간 기둥으로 된 통로가 나온다. 이 기둥이 도리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이 통로를 센본도리이(千本鳥居)라 부른다. 소원 성취나 소원 성취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도리이를 봉납해왔는데, 현재까지 이 개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나리 산까지 이어져있다고 하는데, 다 둘러보는 데는 2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우리는 적당한 곳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


그리고 이 곳에 모든 인파들이 다 모여있었다. 같이 올라온 수많은 인파들이 이곳으로 바로 온 것 같았다. 사진으로 보던 빨간 기둥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남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른 아침 일찍 오지 않는 이상 그냥 이 사진을 위해서는 오면 안 되는 곳이었다. 그래도 사진을 좋아하는 나는 햇빛이 들어오는 시간대나, 비가 오는 날에 한번 더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 틈에 치여서 걷다 보니 중간에 잠깐 빠질 수 있는 통로가 나왔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작게 사당처럼 꾸며놓은 곳이 나왔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신사이기 때문에 왠지 마음대로 건드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용하게 구경만 했다.


사람들 인파를 잠시 빠져나와서 걷다 보니, 한 무리의 인파들이 빠져나가 잠시 조용해졌다. 그 틈을 놓치기 싫어서 빨리 통로로 들어와서 사진들을 찍었다. 한 번도 못 남길 것 같았던 사진을 드디어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찍은 사진 중 가장 뿌듯한 사진이기도 했다. 사람 오기 전에 찍어야 했기에 셔터를 막 눌러야 해서 100%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찍었다는 그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원하는 사진을 찍으면서 이 곳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신사에 대한 관심보다는 한 장의 사진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이 곳을 빠져나왔다. 여우 동상이 자리를 잡고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지만, 밑에서 사람들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고양이에 난 더 시선이 갔다. 얼굴 표정과 다르게 손길을 즐기던 고양이와 잠깐 놀다가 길을 내려왔다.



하루 종일 걷다 보니 가장 생각나는 것은, 진하게 내린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1일 3잔의 커피를 달고 살던 내가 여기 와서 커피를 제대로 못 마신 것이다. 커피가 간절하게 생각나던 찰나, 눈 앞에 마음에 드는 카페가 나타났다. 그 순간 나의 소원을 설마 이 카페로 이루어진 것인가 싶어서, 대충 눈여겨봤던 여우동상의 농간이라는 재미난 상상도 해봤으나, 카페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잊어버렸다.



생각보다 다양한 메뉴가 있었지만,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시원하게 한 모금을 마시자마자 "역시 이맛이야!"란 감탄사와 함께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후시미이나리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가 질려면 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그래서 오늘 많이 걸었던 다리를 쉬게 할 겸, 땀을 많이 흘렸기 때문에 숙소에 가서 재정비하고 나오기로 했다. 숙소 위치 때문에 지하철역에 내려서 역시나 아침에 걸었던 만큼 다시 걸어서 돌아가야 했다.




게이샤를 만날 수 있는 곳, 밤이 아름다운 거리, 기온 거리


땀도 씻어내고 지친 다리도 한번 풀어주고 나서 기온 거리로 가기 위해 나왔다. 숙소에서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하기도 애매해서 다시 걷기로 했다. 이날 걸었던 걸음수는 4만 걸음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거리의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온 거리의 오래된 전통 가옥들과 대리석 길, 은은하게 빛나는 전등과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 어우러져서 묘한 분위기를 나타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조화롭다 보니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였으나, 식당 앞에 있는 메뉴판을 보니 꽤 비싼 가격에 쉽게 들어가지는 못해서 나중에 다른 곳에서 먹기로 했다.



기온 거리에서 유명한 것 중 하나가, 게이샤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게이샤란 일본에서 요정이나 연회석에서 술을 따르고 전통적인 춤이나 노래로 술자리의 흥을 돋우는 직업여성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기생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여행객들이 기온 거리에서 게이샤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게이샤가 나타나면 소리를 질러 말해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다 같이 게이샤 뒤를 따라가면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게이샤의 걸음걸이가 상당히 빨랐다.


운 좋게도 내 앞에 게이샤 나타나서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다. 하얗게 화장한 모습이,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래도 말로만 듣던 게이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기온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게이샤들을 맞주칠 수 있었다.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기을 따라 걷다 보니 큰 도로가 나왔는데, 도로변을 따라 불을 밝힌 상가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사는 것 없이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곳이었다. 교토에 머무는 시간이 하루만 더 있었다면, 기온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오늘이 교토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밤이었다.



걷다 보니 배가 너무 고팠다. 뭐라도 먹었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아무 데나 들어가서 막 먹기는 싫었다. 그래서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소개하는 맛집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라멘집이었다. 1위를 한 적이 있는 곳이 근처에 있어서 지도를 보며 탐색하기 시작했다. 겨우 찾아서 왔는데 이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많이 기다려야 했지만, 이미 지칠 때로 지쳤고 배가 너무 고파서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예약대기에 이름을 남기고 밖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버텨야 했다.



드디어 우리 이름이 불렸고,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보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인기가 있다는 라멘, 교자만두, 가라아게와 시원한 생맥주까지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라멘을 먹는 순간 감탄사를 내뱉었다.


내가 태어나서 먹었던 일본 라멘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불맛 같은 것이 입안에 퍼지는데 진한 육수와 함께 환상적이었다. 일식 라멘을 별로 좋아하질 않는데, 아마 모든 곳의 라멘이 이런 맛이라면 지리지 않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원한 맥주와 음식들을 먹으면서 오늘 구경만 하면서 제대로 나누지 못한 대화도 나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시간도 늦어져서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택시나 버스를 탈까 하다가, 기온 거리가 좋아서 다시 한번 걸어서 가기로 했다.




완전히 어두워져서 초저녁과 또 다른 분위기를 내는 기온 거리를 걸으면서 마지막 밤의 기분을 만끽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고개 돌린 골목길에서 걷고 있는 게이샤를 보게 되었는데, 조건 반사식으로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다시 한번 게이샤는 정말 보기 힘든 것인가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기온 거리를 빠져나와서 숙소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간단히 마실 맥주와 과자 한 봉지를 샀다. 짐을 챙기면서 시원한 맥주와 과자를 먹으면서 다 못한 이야기를 마저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또 아쉬운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내일은 오사카로 이동해서 새로운 투어를 할 생각에 한 편으로는 설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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