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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nap Jan 23. 2018

파리 #1

회색 도시 파리에서 첫날.

2017년 12월 28일, 퇴근하자마자 공항으로 달려가서 수속을 밟기 위해 줄을 섰다. 사이판에서 돌아온 지 3일밖에 안되었는데, 프랑스 파리로 가기 위해 다시 출국 수속을 하고 있었다. 출국 수속은 항상 힘들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늦은 시간이라서 사람이 없었다는 것과, 매우 피곤한 상태이므로 비행기에서 숙면을 할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고, 정신을 차리니 경유지인 암스테르담에 도착한다고 한다. 다행히 경유시간이 길지 않아서 환승 수속을 밟고 암스테르담 공항 내부 구경을 하다가, 다시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해서 캐리어를 찾기 위해 기다리는 순간부터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온몸에 신경을 곤두 세웠다. 소매치기, 사인단, 팔찌 강매 등 관광객들을 상대로 워낙 악명이 높은 곳으로 유명한 도시였기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로 했다. 그 덕분에 예약한 호텔까지 오는 길까지 아무 탈이 없었을뿐더러, 지하철 환승 시 티켓 문제를 친절하게 대응해 준 매표소 직원, 길을 몰라서 헤매고 있을 때 먼저 다가와 길을 알려준 역무원, 이른 아침에 호텔에 도착했지만 얼리 체크인을 도와준 호텔 직원들까지 만났던 사람들 모두 친절하게 대해주어서 괜히 파리에 대해 내가 너무 나쁘게만 생각했구나란 미안함이 들었다. 


스페인 여행 첫날에 이런 감정에 긴장을 풀었다가, 바로 카메라 가방을 소매치기당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번 여행이 끝나는 순간까지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나는 아마 유럽 여행을 할 때마다 이렇게 긴장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내 카메라 가방의 주렁주렁 매달린 자물쇠와 카메라와 내 몸에 연결된 와이어가 그것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방에 들어와서, 캐리어와 카메라 가방을 놓고 나니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웰컴 드링크로 따뜻한 커피를 주셨는데, 비 오고 추운 파리의 아침에 얼었던 몸을 녹이기에는 충분했다.



커피 한 잔으로 장 시간 비행과 호텔까지 오느라 지친 피로를 잠시 풀고, 창문을 열어 호텔 주변 풍경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냥 골목길이었지만, 내가 파리에 있다는 것을 느끼기엔 충분한 모습이었다. 



커피 한잔 후에, 초췌해진 모습을 새로 단장하고 곧바로 밖으로 나왔다. 약속 시간에 지각했기 때문이다. 연말 여행으로 파리를 선택한 이유는 오늘 약속의 주인공 때문이었다. 와이프와 친한 친구가 파리에서 살고 있는데, 올해 5월에 결혼을 한단다. 그것도 파리에서. 


결혼식에 초대를 받기는 했지만, 5월에 다녀올 시간이 안되었기 때문에 연말 여행겸 친구도 볼 겸 해서 시간을 내서 온 것이었다. 물론, 비행기표가 성수기 대비 많이 저렴한 것도 한 몫했다.


약속 장소인 몽마르뜨 언덕 밑의 사랑해 벽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드디어 이번 여행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비가 오는 흐린 날이었지만, 그 마저도 예쁘게 보이는 파리였다.




파리의 지하철역은 오래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통로가 좁고 어두침침하고 심한 곳은 냄새가 나기도 했었다. 'Saint-Michel-Notre-Dame'역과 같이 RER, Metro 등 환승을 하는 큰 역은 넓어도 너무 넓어서 한참을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파리 지하철역 사이 간격은 우리나라처럼 멀지 않고 매우 가깝기 때문에, 환승을 해야 하는 거리는 그냥 걸어서 가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르고 편한 경우도 있었다.


지하철에서도 혹시나 소매치기당할까 봐 폰은 꺼내지도 않고, 주변 경계를 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곳을 향해 가기 때문에 길을 잃을 걱정은 없었다. 역 출구로 나왔더니, 와이프 친구가 먼저 도착해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 뒤로 나는 혼자 온 여행객처럼, 뒤를 쫓아다니며 사진 찍는 신세가 되었지만 저렇게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몽마르뜨 언덕에 오고 싶었지만, 여기에도 관광객들을 괴롭히는 무리들이 많은 곳으로 유명해서 걱정이 많았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랑한다는 말이 가득한, 사랑해 벽 (Le Mur des Je t'aime)


역에 나와서 조금만 걸어가니 사랑해 벽이 나왔다. 연인들 혹은 친구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한국어로도 적혀있었다. 파리에 대해서 검색을 하면 항상 나오는 명소였기에, 꽤나 큰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도착해서 직접 보니 건물 한 벽면 정도밖에 안돼서, 생각보다 작은 규모에 살짝 실망했지만, 내 차례가 다가오자 바로 환하게 웃으며 인증샷을 남겼다. 


사랑해 벽을 구경하고,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했다. 역시 현지인이 있으니, 지도를 보면서 길을 찾을 필요도 없이 편하게 뒤를 따라가면서 찍고 싶은 장면 마음 편하게 찍고 오랜만에 여유로움을 즐겼다. 



몽마르뜨 언덕, 회색빛 파리를 바라보다


높은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더니, 눈 앞에 몽마르뜨 언덕이 펼쳐졌다. 비록 사진으로 봤던 푸른 하늘에 녹색 잔디가 있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모습은 날씨와 상관없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몽마르뜨 언덕에 있는 건물은 사크레쾨르(Sacré-Coeur) 대성당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봤던 성당 중 두 번째로 예뻤던 건물이다. (첫 번째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La Sagrada Familia)이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언덕 위에서 파리 시내를 바라볼 수 있는데 첫 느낌은 회색 도시였다. 흐린 날씨와 안개로 인해서 회색빛이 가득했기 때문에다. 그 모습 또한 나름 운치가 있었다. 멀리 퐁피두 센터와 몽파르나스 타워도 보였다. 계획에는 포함된 곳이었으나, 결국 여행이 끝날 때까지 구경을 못해 다음을 기약한 곳이기도 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근처에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예약한 레스토랑의 이름은 'Le Cabanon de la Butte'였다. 크지 않은 작은 곳이었는데, 분위기만큼은 정말 좋았던 곳이었다. 읽을 수 없는 메뉴판을 받아 들고, 와이프 친구의 설명과 추천을 받아 각각 먹고 싶었던 메뉴를 주문했다. 



피처로 주문이 가능한 와인과 달팽이 요리인 에스까르고, 오리 스테이크, 고기가 들어간 수프, 마지막으로 디저트까지 주문을 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얘기를 들어보니 프랑스 인들은 오리 요리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오리 관련 요리들이 많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게 푸아그라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오리 스테이크를 주문할 때 굽기를 고를 수 있는 것이었다. 보통 스테이크를 주문할 때, 미디엄, 레어, 웰던 등을 고르는데 오리 스테이크인데 굽기를 고르라는 말에 적당히 미디엄 웰던으로 주문을 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으니,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애피타이저로 올리브와 바게트 빵이 나왔고, 주문한 피처 와인도 나왔다. 보통 잘 먹지 않던 올리브였지만 여기에서 먹으니 왜 이렇게 맛있는 건지, 계속 손이 갔다. 그리고, 바게트 빵도 한국에서 먹는 것과 다르게 담백하고 맛이 너무 좋아서 계속 먹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달팽이 요리는 1 접시에 12개였는데, 전용 접시가 있는 것도 신기했고 집어 먹을 수 있는 전용 집게가 있는 것도 신기했다. 외국인들이 젓가락질을 어려워하듯이, 나 역시 달팽이 집는 집게를 잘 사용하지 못해서 겨우겨우 하나씩 잡고 먹었는데, 내 입맛에 꽤 잘 맞았다. 비록 소스 맛이라고는 하지만, 달팽이 요리에 대한 편견을 사라지게 할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오리 스테이크도 비주얼로만 보면 우리가 아는 스테이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얘기를 안 하면 오리인 줄 모를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와인 한잔에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서로의 얘기를 나누었다. 전날에 퇴근하고 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성당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성당 입장은 무료라서, 누구나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었다. 어느 성당처럼 내부에는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들이 창문에서 화려한 빛을 내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의자에 앉아서 기도를 올리기도 했고, 나처럼 천천히 둘러보기도 했다. 다들 조용히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되지 않도록 이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고 있었다.



성당을 둘러보고 밖에 나왔더니 다행히 비가 그쳐있었다. 위에서 바라보는 파리 시내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였다.



몽마르뜨 언덕 뒤로 내려가면 화가들이 그림도 그려주고, 자신의 그림을 팔기도 하는 거리가 있다고 해서, 구경할 겸 발걸음을 옮겼다. 초입부터 많은 화가(?)들이 호객을 한다. 스케치북을 들고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하는데, 어느 글에서 이런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리고 돈을 주면 진짜 예술가들이 피해를 본다고 되도록이면 피하라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가격도 더 비쌀뿐더러, 이런 사람들에게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 싫어서 그냥 무시를 해버렸다. 



조금 더 내려오니, 넓은 광장에 화가들이 자리 잡은 곳이 나왔다. 날씨가 좋지 못해서 많은 사람들이 철수를 한 상태이고 몇몇 사람들만 나와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더불어 그림을 쳐다보고 있으면, 화가가 나와서 설명도 해주고 자신의 그림에 대한 자부심도 있어서 전시회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둘러보았다.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카페를 가서 쉬고 싶었지만, 이미 카페 내부에는 사람들이 만석이고 외부에는 비 때문에 앉을 수가 없었다. 와이프와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기로 했기에, 와이프 친구와의 만남은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지하철 역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따뜻한 뱅쇼를 파는 곳이 있어서 몸도 녹일 겸 한잔 하기로 했는데, 따뜻한 와인이라고 들어는 봤지 직접 마셔보니 꽤 매력적이었다. 그냥 와인보다 도수가 살짝 더 높은 듯하였으나, 따뜻한 와인이 몸속으로 들어오고, 적당히 기분 좋은 취기가 올라오니 금세 추운 것은 사라졌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러, 라파예트 백화점으로


뱅쇼 한잔을 하고, 지하철 역에서 와이프 친구와 헤어졌다. 쇼핑을 하기 위해 쁘랭땅 (Printemps) 백화점과 라파예트(Lafayette) 백화점이 있는 곳으로 갔다. 지하철역에서 나오니 언제 그렇게 비가 왔냐는 듯이 맑은 하늘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불과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날씨가 급변해있었다.



몽마르뜨 언덕에서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최악의 날씨는 두 번이 있었는데, 오늘 겪었던 몽마르뜨 언덕과 새해 첫날에 맞이한 폭우였다. 날이 맑아지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 쁘랭땅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고, 유명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기 위해 라파예트 백화점으로 이동했다. 워낙 백화점이 크고 넓어서 물어물어 이동하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건물 사이를 지나는 통로에서 밖에 쳐다보니 젖은 거리가 반짝여 보이는 것이 예뻐 보여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구경하기도 했다.


한참을 이동한 뒤에, 겨우 트리를 만날 수 있었다. 백화점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풍선으로 만든 트리였는데, 장관이었다. 와이프가 왜 이 모습을 보고 싶어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사진을 찍고 구경하다가 나가려고 하는데, 음악 소리와 함께 모빌들이 움직이면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장면마저 예뻐서 구경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이동하기로 했다.


코스 요리를 먹다가, 잠들어 버린 날


백화점 밖으로 나오니, 이미 어두워진 거리는 화려한 조명과 수많은 인파들로 인해 연말 느낌을 물씬 풍겼다. 예약한 레스토랑은 미슐랭 1 스타인 'Boutary'였다.


디너 코스가 인기 좋다고 해서 예약을 했는데,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곳이었다. 와인과 함께 디너 코스를 주문했는데, 음식이 나올 때마다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프랑스에서 코스 요리를 먹는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란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서 깨달았다. 한국에서 코스 요리를 먹더라도 음식 나오는 텀이 길지 않다. 오랫동안 먹어야 1시간~1시간 30분 정도.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코스를 먹었을 때, 런치이던 디너이던 기본 2시간 30분이었다. 그래서, 결국 레스토랑 몇 군데는 그냥 취소해버렸다.


이 곳의 코스 요리도 음식 나오는 간격이 매우 길었다. 다 먹고, 기다리다가 지칠 때쯤 다음 음식이 나왔는데, 파리에 아침 일찍 도착해서 지금까지 계속 걷고 구경하다 보니 피로가 너무 심하게 몰려왔던 탓인지, 중간중간 먹다가 졸기도 하고, 아무 말 대잔치에다가 중간에 기억도 살짝 안나기도 했다.


음식 맛이 훌륭했다는 것은 기억하나, 어떤 얘기들을 했는지 기억은 사실 잘 나지 않는다. 프랑스 인들은 식사 시간이 길다고 한다.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식사를 한다고 하는데, 이런 문화는 우리나라랑 안 맞는 것인지 나랑 안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이던 학창 시절이던 밥을 먹으면서 2시간 넘게 많은 이야기들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있다면 술자리 정도. 


와인을 항상 곁들이기 때문에 식사 시간이 술자리가 되는 것인지 주변 테이블을 둘러봐도 쉴 틈 없이 떠들고 있는데, 한 번씩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오히려 우리가 대화할 소재거리가 다 떨어져서 더 할 얘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식사 시간이 끝나고, 우버택시를 이용해서 호텔로 들어왔다. 아침에도 느꼈지만, 파리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좁아도 너무 좁아서, 캐리어 2개에 사람 2명이 들어가면 딱 맞을 정도였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바로 쓰러졌다. 첫날부터 너무 심하게 무리한 것 같았지만 짧은 일정 내에서 하루를 뿌듯하게 보냈다는 생각에 나름 보람 있는 하루였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베르사유 궁전을 둘러볼 계획이라, 항상 여행의 밤은 맥주로 보냈으나 이번에는 다 생략하고 그냥 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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