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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물고기도 아닌데 깊이 잠수하곤 한다. 그럴 땐 진짜 내가 인외, 물고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구도 꺼내지 않았으면 하고 꺼내줬으면 하는 곳으로 숨을 참는다. 꾸준히 잘 치료받고 있었으면서, 정신과에 가지 않았다. 정신과에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고 마음은 불안했지만 어쩐지 편안함을 느꼈다. 내 감정을 쏟아내지 않아도 되고 깊이 들여보지 않아도 된다는 약간의 편안함이었다.
약도 뜻하지 않게 단약 하게 되었다. 한 달가량을 아예 먹지 않았다. 처음엔 괜찮았다. 일주일 중 절반을 울면서 지내기도 하고 갑자기 덜컥 우울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살 만했다. 그러나 점점 돌아가고 있었다. 정신과에 발 들이기 전으로. 아무나 만나고 아무나 자고 아무에게나 사랑을 갈구하던 때로. 그 누구든 내 곁에 있어주기만 하면 되던 때로. 그걸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정신없이 휘둘리던 때로.
마음도 마음이지만 너무 어지러웠다. 도통 어지러워서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몇 번을 휘청거리고 몸에 문제가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검색해 보니 세로토닌 어쩌고 증후군이랜다. 약을 먹기 시작할 때부터 단약 부작용에 대해 익히 듣긴 했으나 진짜 그럴 줄은 몰랐다. 종종 일을 지속하기 힘들 정도로 심했다. 정신과에 다시 간 건 내 마음보다는 몸이 적응하지 못해서가 컸다.
많이 걱정했다. 날 책망하면 어쩌나, 왜 안 왔냐고 물어보면 어쩌나. 그러나 날 본 선생님의 첫마디는 잘 지냈는지, 어땠는지. 그저 나의 안부였다. 마음이 놓이긴 했지만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정적이 몇 분이고 이어졌다. 그러다 몇 마디 하는 나의 증상들. 이만큼 우울했고 이만큼 울었고 잠을 어떻게 잤고. 속마음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 이야기가 훨씬 쉬우니까.
그러다 정말 할 말이 떨어졌다. 10분을 가만히 있자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아 결국 토로했다. 불편하다고. 뭐가 불편한지 들여보는 것조차 불편하다고. 사람들의 반응이 무섭고 선생님의 반응조차 두렵다고. 선생님은 이 시간만큼은 불편할 때마다 바로바로 말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게 시작이라고 했다. 여기서의 나를 조금씩 확장해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럴 마음은 딱히 없었으나 노력하겠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하지 않았던 이야기다.
나는 여기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내가 왜 우울한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얘기해 봤자 나도 남도 불편한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할 말이 떨어졌다.
내 증상에 대해 토로하기에는 글이 너무 단조롭고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안 떠오른다. 그래서 말하기로 했다. 이거라도 말하고 쓰면 좀 쓸 거리가 나올까, 그리고 내가 편할까 싶어서.
나는 전형적인 성폭력의 피해자고 가정폭력 피해자다. 모르는 사람, 혹은 사람들이 내 몸을 더듬고 만지고 날 끌고 가곤 했다. 집에선 눈치를 봤다. 화가 나면 방에 가두고 문제집을 다 풀 때까지 나오지 못하게 했다. 물도, 밥도 없는 내 좁은 방에 틀어박혀 문제집을 풀었다. 요령도 없는 한심한 아이는 정말 몇 시간이고 걸려 처음부터 끝까지 다 풀었다. 답안지를 볼 생각도 못 하고. 멍청했다.
배가 너무 고파 혼자 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쓰레기란 말을 들었다. 들을 만했다. 참으로 그랬다. 먹지 말고 굶어 죽어야 했나 보다. 너무 마음이 불편해 설거지라도 하고 있으니 혼자 처먹고 설거지는 왜 하냐며 또 욕을 들었다. 엄마. 기억은 하려나 모르겠네.
딸내미를 발로 차는 기분은 어땠는지, 손찌검하는 분노는 썩 풀렸는지 궁금하다. 밉다.
그런데 사랑해서 괴롭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끝없이 밀려나고 거부당해왔다. 그래서 난 사람들이 무섭다. 내가 사랑할수록 너무 무섭다. 그들에게 거부당한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알기에, 얼마나 지치고 눈물 나는지 알기에. 내 존재를 거절당하는 것이다.
혼자 몇 년씩 알바하면서 등록금 다 내고 생활비도 해결하며 돈 하나 안 드는 딸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난 무서웠을 뿐인데. 날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아서, 날 내칠 것 같아서. 손 내미는 나를 쳐낼 것 같아서 무서웠을 뿐이었다.
아빠는 날 좋아했다. 날 좋아했던 아빠는 새 가정을 꾸렸고 손자가 생겼다. 아빠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은 그 손자다.
아빠마저 빼앗겼다며 울었다. 전 아무도 없는데 누가 절 돌봐줘요. 이 말을 하며 오랜만에 간 정신과에서 펑펑 울었다.
아빠는 분명 말했다. 아빠는 평생 내 아빠라고. 분명히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하는 거짓말이 익숙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