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는 거절이다. 거절. 거절받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나 봐요. 그 말을 듣고 있노라면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누구나 두려워하지 않나요?라는 말을 애써 하지는 않는다. 굳이 토 달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 남들보다 더 두려워하고 더 무서워하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아닐까. 부정할 수 없다. 사소한 거절조차 두렵고 작은 거부에 불안을 떤다. 심각하게.
종종 사람과의 만남을 무섭다고 느낀다. 다수 간 만남은 그래도 괜찮은데, 사람이 적어질수록, 하물며 일대일 만남에는 치를 떨게 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다지 재미있지도 공감이 가지도 않는 말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그 표정에 묻어나는 어색함을 남들은 잘 알아보고 그와 관련된 반응을 보인다. 말로써 하지 않아도 표정으로 느껴진다. 얘 지금 내 말 재미없구나. 특유의 민망해하는 표정. 비언어적으로 드러나는 나에 대한 책망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일대일 만남이 싫다.
나조차 내가 재미없는데 남들은 내가 재미있을까. 즐겁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는 무슨 느낌일까. 그래서 나와 대화하지 않는데, 남들은 굳이 시간을 내서 나와 대화를 한다. 시간과 감정을 버린 것에 미안함을 느낀다.
미묘하고도 미세한 반응과 말에 감각을 기울이고 있다 보면 거절이 두려워진다.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란 불안.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모른다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이기가 무섭다. 눈앞의 치료자가 어떻게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실은 그의 표정과 눈빛에서 나를 안쓰럽게 여기고 있다고 느꼈다. 나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구나.
그러나 입을 다른 말을 한다. 우울해 보일 것 같아요. 불안해 보일 것 같아요. 자존감이 낮아 보일 것 같아요. 증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네요. 타인의 감정에 끼어드는 건 공포다.
그럼에도 용기를 냈다. 사실 안쓰러워하신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아니면 민망하니까 말로는 못 했어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나 봐요. 또다. 이상한 오기가 발동했다. 그치만 말로 표현했으니까요. 스스로 대견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떤지는 판단 못 했지만.
줄곧 SNS를 통해서만 연락하던 지인과 첫 만남을 약속했다. 일정을 잡고 그 일정이 다가오는 순간마다 숨이 막혀왔다.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걱정과 걱정과 걱정 그리고 두려움과 두려움과 불안.
언니 혹시 다음에 시간 되면 그때 만날래? 보내놓고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반응이 오면 차단하려 했다. 숨으려고 했다. 무조건적으로 그럴 것이라 생각하면서. 약속 파투 내는 거 걱정 안 해도 돼. 오히려 좋아. 그 답변을 한참 바라보았다. 어쩌면 조금은…
미움받을 수 있는 용기라고들 하지. 나는 거절받는 것에 용기를 낼 것이다. 얼마나 어렵고 막막할지 감도 안 온다. 하겠다 해놓고 전혀 못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표현해 보고, 드러내보고, 네 말 재미없어.라고도 해보겠다. 내 얘기도 들어줘,라고 할 것이다. 이 다짐을 하기 위해 안아달라고 칭얼거리는 아이의 품에서 벗어났다. 이만 마무리하고 안기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