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울에 살며 북촌 인근에서 일을 하는 작가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짧게 떠난 여행에 관한 기록입니다. 늘 익숙하게 지나던 거리와 풍경들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여행기가 작성된 시기는 2019년입니다. 초고 상태로 저장해뒀던 이야기를 끝맺기 위해 2021년에 발간했습니다.
오랜만에 길을 나섰다. 벌써 8월 말이다. 여름이 한풀 꺾이면서 날이 많이 시원해졌다. 모처럼 걸을만한 날씨라, 오늘은 삼청공원을 한 바퀴 둘러볼 참이다.
삼청공원 등산로를 돌려면 1시간 반이 걸린다. 점심시간을 활용해 오르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공원 안 쪽으로 걸으며 계절이나 흠뻑 느껴볼 생각이다.
아침을 거른 터라 샌드위치와 커피로 간단히 속을 채운다. 그동안 해외여행은 주로 유럽으로 다녔던 지라, 여행 중 '간단히 샌드위치'는 단골 메뉴였다. 여행객들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바쁜 일과 중에 점심은 샌드위치 등으로 때우고, 저녁은 제대로 차린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 보였다. 이렇게 빵을 뜯고 있자니 나의 지난 여행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삼청공원 가는 길. photo by_윤씨
날이 좀 시원해지긴 했어도, 한창 더울 정오라서 아스팔트는 뜨거웠다. 좀 더 시원해지면 올걸 하는 후회가 잠시 들었지만, 그늘진 데크에 올라서는 순간 기분 좋은 바람이 땀을 식혀줬다. 상쾌한 기분으로 입구까지 걸어간다.
삼청공원 가는 길에 놓인 데크. photo by_윤씨
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공원안내도가 눈에 띈다. 빨갛게 표시된 길은 너무 길어서, 노란색 코스 중에도 가장 짧은 코스 정도만 돌아볼 생각이다. 생각대로라면 감사원 앞 쪽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길을 헷갈리지 않길 바라면서 공원에 들어섰다.
공원안내도가 긴 등산로와 짧은 산책로를 알려준다. photo by_윤씨
익숙한 숲 내음이 난다. 지척에 도로가 나 있음에도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숲과 개울이 눈에 띈다. 도심에서 걸어 들어올 수 있는 거리에 이런 숲이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신기하다. 서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어느 도시든 산을 끼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실감 났다.
여름을 다 보낸 나뭇잎들은 손바닥만 하게 커져 있었다. 짙은 녹음은 봄의 색깔과는 크게 달랐다.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마지막 힘을 내고 있는 매미소리에 섞여 벌써 가을 풀벌레 소리도 간간이 들려온다.
산책로에서 볼 수 있는 여름 풍경. photo by_윤씨
지난봄의 삼청공원이 기억난다. 힘들었던 작년 한 해를 무사히 넘기고, 조금 여유가 생겨서 마음먹고 공원을 찾았었다. 벚꽃이 지기 전에 꼭 봄을 만끽하고 싶었다. 다행히 벚꽃은 만개한 상태였고, 바람이 불 때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꽃잎이 떨어졌다. 함께 나온 지인과 열심히 그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익숙한 일상의 공간부터 스쳐 지나간 여행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소에는 추억이 쌓인다. 그 추억들이 다시 찾은 장소에서 발길을 멈추게 하곤 한다.
지난봄의 삼청공원. photo by_윤씨
공원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든 사람을 정처 없이 걷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여행지에서도 숙소 근처의 공원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자 꾹 눌러쓰고 나가 걷기에 좋다. 걷다 보면 그곳의 아침 정취를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도심의 공원과 광장은 여행 일정 중간에 다리를 쉬어가기 좋다. 벤치에 앉아 요기도 하고 한 바퀴 둘러보며 그곳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쉬는지 구경도 한다.
오늘의 삼청공원은 나에게 '다리를 쉬어갈' 장소였다. 매번 오늘은 무엇을 보러 갈까 고민하는 와중에 잠시 아무 생각 없이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슬렁슬렁 걸으며 다시 부지런히 움직일 힘을 비축하는 일정이었다.
오늘의 일정 : 삼청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