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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갤러리 산책

북촌 여행 여덟째 날, 리만머핀 - 아트비트 - 아트링크

by 어슬


이 글은 서울에 살며 북촌 인근에서 일을 하는 작가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짧게 떠난 여행에 관한 기록입니다. 늘 익숙하게 지나던 거리와 풍경들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여행기가 작성된 시기는 2019년입니다. 초고 상태로 저장해뒀던 이야기를 끝맺기 위해 2021년에 발간했습니다.



지난 여행을 마치고 한옥마을을 내려오면서 우연히 지나게 된 올마이티버거 골목. 생각보다 엄청 많은 갤러리들이 밀집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다음에 꼭 들러봐야겠다 생각했는데, 마침 며칠 연속 야외 관광을 한 후라 시기가 적당한 듯 하여 오늘은 갤러리 투어를 돌기로 했다.



리만머핀, 아트비트, 아트링크 갤러리 photo by_윤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여정에 앞서 배를 채우러 갔다. 별 생각 없이 혼자 먹기 좋아 보이는 식당엘 들어왔는데 의외로 음식이 정갈하고 재료의 식감이 뛰어나서 깜짝 놀랐다. 문득 여행기를 마치고 나면 음식에 대해서도 다뤄볼까 싶어진다.

내가 처음 갤러리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던 것은 스무살 인사동에서였다. 지금처럼 서울 바닥에 외국인 관광객이 많지는 않았던 그 시절에도 인사동은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든 옛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관광의 명소였다. 스무살의 나는 특별한 목적도 없이 인사동을 드나들었고, 어느날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한 갤러리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전시중이던 동양회화 작품들을 구경하고 나왔다. 처음 들어갔을 때 인사를 건네야 하나 고민되고 그냥 둘러만 봐도 될까 걱정되던 그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후로 갤러리 투어는 많은 취미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미술관과 갤러리에 차이가 있다면, 미술관은 순수하게 전시관람을 목적으로 가면 되지만 갤러리는 작품의 판매를 기본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라 둘러보는 사람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그래도 한 번 발을 들이기 시작하면 동시대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매력에 계속 드나들게 된다. 내 집에 걸어두면 어떨까 상상하며 관람하면 재미는 두 배가 된다.

오늘 첫 번째로 방문하게 된 갤러리는 리만 머핀이었다. 밖에서 언뜻 봐서는 갤러리인 줄 모르고 지나칠만큼 간판도 없이 단촐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단출한 리만 머핀 갤러리의 전경. photo by_윤씨



전시공간은 작았고, 작품도 몇 점 없었다. 그렇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 소장하고 싶은 작품을 만나 버렸다. 호기롭게 가격을 문의했다가 금방 좌절하고 말았다. 역시 예술의 벽은 높기만 하다. 그래도,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만나 한참을 바라보며 서 있는 일은 분명 설레는 경험이다.



작지만 아늑한 리만 머핀 갤러리의 내부. photo by_윤씨


다음으로 방문한 갤러리는 아트비트였다. 이 곳에서 진행중인 전시의 이름은 블랙 커튼. 인물 군상을 주로 그리고 있는데,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였다. 인물의 얼굴을 뭉개는 방식으로 그로테스크한 연출을 한 탓에, 2층을 혼자 걸어다니자니 으슥한 느낌이 늘었다. 확실히 작품에서 독특한 개성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아무리 봐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컬렉션의 관점에서는 구입할 만 해 보였지만, 집안에 걸어놓기에는 좀 섬뜩하다. 제목과 잘 어울리는 전시였다.



아트비트 갤러리 전경. photo by_윤씨



새로운 작가를 알게되고 그에 대해 찾아보게 되는 것은 갤러리 투어의 또 다른 재미이다. 블랙커튼전의 서원미 작가가 그런 경우였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아트링크 갤러리였다. 이 곳에서는 마침 그 유명한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전시 중이었다. 전시도 전시지만 우선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공간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ㅁ자 한옥을 그대로 살려 튜브형 전시공간을 만들어놓았는데, 삼청동이 아니면 이런 공간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아트링크 갤러리. photo by_윤씨



'청량'이라는 제목의 전시에는 제목처럼 청량한 작품들이 가득했다. 작가 4인의 그룹전인 이 전시에서 가장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고려 청자 느낌의 석철주 작가의 작품이었다. 이 작품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석철주, 생활일기(들꽃이야기). photo by_윤씨



리만머핀, 아트비트, 아트링크 세 군데 갤러리가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진행중인 전시들도 그만큼이나 특색 있었다. 예술작품은 역시 감상하는 사람의 감성을 두드리는 역할을 하는가보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보다 훨씬 말랑해진 마음으로 이번 여행도 즐겁게 마무리했다.



오늘의 일정 : 리만머핀, 아트비트, 아트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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