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울에 살며 북촌 인근에서 일을 하는 작가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짧게 떠난 여행에 관한 기록입니다. 늘 익숙하게 지나던 거리와 풍경들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신문기사에서는 이미 가을이 왔다고 하는데 어째서 아직도 땀이 흐르는 건지... 한국의 여름은 정말 너무 습하다. 전일에 이어 북촌 한옥마을 투어를 하려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안내소 직원분이 알려주신 루트를 따라 걸을 예정이다.
그래도 며칠 만에 기온이 많이 내려가서 그런지 한옥마을 입구에는 관광객들이 꽤나 많았다. 북촌의 명성을 새삼 실감했다.
한옥마을 입구에서
한복 대여점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다. 경복궁 입구 근처에만 모여있는 줄 알았는데, 한옥마을도 한복을 입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조금 더 들어가니 여기가 관광지라는 걸 대번 알게 해주는 기념품 상점들이 보인다. 해외 어딜 가도 볼 수 있을 법한 기념품 가게들에는 열쇠고리, 마그넷, 엽서, 전통문양의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잔뜩 쌓여있다. 한옥마을에 맞춘 듯 어울리는 전통찻집과, 음료와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식히라고 유혹하는 매점도 눈에 띈다. 관광객들 사이로 천천히 언덕을 오른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한옥마을 입구. photo by_윤씨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구멍가게. photo by_윤씨
골목마다 늘어선 각양각색의 한옥들
길을 따라 주욱 올라간다. 얼마 걷지 않아 익숙한 풍경을 만났다. '한옥마을'이라고 검색하면 흔히 볼 수 있는 그 유명한 사진 명소였다. 관광객들이 골목의 위와 아래에서 각자 다양한 포즈와 각도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람이 조금 뜸한 틈을 타서 얼른 한 장 찍었다.
한옥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명당을 찾았다. photo by_윤씨
길 한쪽으로는 고전적인 한옥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잘 수리된 크고 넓은 집들이 늘어서 있다. 그 맞은편으로는 한옥을 양옥 형태로 반쯤 고친 오래된 집들이 또 주욱 늘어서 있다. 어느 쪽이든 옛 서울의 정취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골목을 돌아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어느 집에서 밥을 짓는지 꽈리고추 볶는 냄새가 매콤하고 고소하게 났다. 허기가 진다. 아직 점심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얼른 돌아보고 배를 채우러 가야겠다.
좁은 골목 좌우로 늘어선 각양각색의 한옥집들. photo by_윤씨
북쪽으로 한참 올라가서 (개방되어 있지 않은) 이준구 가옥을 지나가니, 넓은 부지를 차지한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영국 국기가 걸려 있는 주택도 눈에 띄었다. 외교관 관사쯤 되는 듯하다. 북촌에 외국인들도 꽤나 살고 있나 보다.
북쪽 끝에서 방향을 돌려 다시 남쪽으로 언덕을 오른다. 부동산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아담하고 귀여운 가게를 발견했다. '동네분 프린트, 복사 무료. 삼청동 R부동산.' 문에 걸린 글귀도 정겹기만 하다.
부동산이라기엔 너무 예뻤던 아담한 가게. photo by_윤씨
부동산 바로 옆에서 만난 고양씨. 그림처럼 앉아 있다 눈이 마주치자 슬슬 걸어온다. 사람을 보고도 경계하는 구석이 전혀 없다. 반짝이는 목걸이가 걸린 걸 보면 집고양이인 듯한데, 잠시 동네 마실을 나오셨나 보다.
한옥마을 터줏대감인 듯한 고양씨. photo by_윤씨
위쪽은 생각보다 상점이 거의 없었다. 계속 걷기엔 아직 더운 날씨라 잠시 앉아서 땀 식히며 차 한잔 할 공간이 절실했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
걷다가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박물관을 찾았다. '북촌생활사박물관'이란다. 사설박물관으로, 북촌 사람들의 오래된 살림살이들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안에서는 꼬마들이 체험활동을 하는지 시끌벅적하게 소리가 났다. 왠지 들어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아 밖에서 기웃거리기만 하다 발길을 돌렸다.
언덕을 조금 올라왔다고, 경복궁과 광화문 빌딩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길 옆으로 눈을 돌리면, 인왕산이 겸재 정선이 그렸던 그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솟아있다.
멀리 인왕산이 보이는 풍경. photo by_윤씨
한옥마을은 주민들이 실제 거주하는 마을이라, 관광 에티켓을 지켜달라는 표지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내 집 앞이라 생각하고 조용히 둘러보자.
한옥마을은 주민분들이 사는 곳이니 구경은 조용히. photo by_윤씨
삼청동 쪽으로 거의 다 내려왔을 때쯤에는 조금 특색 있는 한옥들을 볼 수 있었다. 벽돌 건물에 한옥식 지붕을 얹거나, 목재로 된 문에 장석으로 장식을 하고, 벽돌로 축대를 쌓아 그 위에 한옥집을 올렸다. 한옥과 양옥의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살린 집들이 요즘 말로, 힙하다.
양옥과 한옥의 믹스 앤 매치. photo by_윤씨
슬렁슬렁 돌아 내려왔는데도 한 바퀴 둘러보는데 한 시간이 채 안 걸렸다. 그냥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을 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정말 이만한 구경거리가 없겠구나 싶었다. 평생을 서울에 살았으면서 왜 한 번도 이 곳을 찾을 생각을 안 해봤는지 모를 일이다.
진작부터 허기가 졌던 터라, 오늘 점심은 배불리 먹을 작정이다. 삼청동의 유명한 햄버거집, 올마이티 버거에서 배를 채우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오늘의 일정 : 북촌 한옥마을 한 바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