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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보다 더 좋은 북촌 볼거리

열한째 날, 민화박물관과 자개공방

by 어슬


이 글은 서울에 살며 북촌 인근에서 일을 하는 작가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짧게 떠난 여행에 관한 기록입니다. 늘 익숙하게 지나던 거리와 풍경들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여행기가 작성된 시기는 2019년입니다. 초고 상태로 저장해뒀던 이야기를 끝맺기 위해 2021년에 발간했습니다.



비가 온다. 꾸물거리는 날씨처럼 내 마음도 꾸물댄다. 성실함과 꾸준함, 두 가지 모두 나에겐 너무 부족한 덕목이다. 무거워지는 엉덩이를 힘겹게 의자에서 떼어낸다. 날이 아무리 궂어도 마음먹은 일은 끝내겠다는 각오로 북촌으로 나섰다.

가을비다. 비가 오는데 꿉꿉하지도 찝찝하지도 않다. 어느새 계절이 이렇게나 변했다. 비 오는 삼청동 거리는 인적이 드물다.

민화박물관을 둘러보고 칼국수를 먹어야지. 왠지 민화도 칼국수도 오늘 날씨와 잘 어울려 마음에 든다. 조금은 밝아진 마음으로 오늘의 첫 방문지를 찾아 나선다.

민화박물관은 대로변에 있었고 나는 지도 앱을 켜고 있었지만 박물관을 찾느라 조금 헤맸다. 그만큼 눈에 띄지 않는 공간이었다. 민화박물관이 위치한 건물 외벽 저 위에 작고 평범하게 간판이 붙어 있는 걸 한참 후에야 찾을 수 있었다. 박물관은 지하였다. 민화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대변하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안 좋았다.



20190904_121012_1-tile.jpg 민화박물관의 위치를 알리는 작은 간판들. photo by_윤씨



계단을 내려가는 길에 빼곡하게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갖가지 호랑이와 고양이 그림들이 교과서 한 귀퉁이에서 봤던 것처럼 눈에 익지만 색감이 예사롭지 않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아름답다. 아직 박물관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20190904_121058.jpg 민화박물관 가는 길. photo by_윤씨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여니, 넓지 않은 공간을 어르신들이 가득 채우고 앉아 민화를 그리고 계셨다. 분명 박물관이라고 알고 왔는데 무슨 일인가 당황스럽다.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오셔서 상황을 설명해주신다. 단체 교육이 있기는 하지만 전시된 작품들은 둘러볼 수 있단다. 열중해서 작업 중이신 어르신들께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한 바퀴 둘러봤다.

박물관 벽에는 흥미를 자극하는 작품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넋을 놓고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 바람에 식사시간을 놓쳐 버렸다. 오늘은 칼국수를 먹을 운명이 아닌가 보다. 칼국수를 포기한 대신 오는 길에 보았던 자개 공방에 들르기로 했다.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은 자개농. photo by_윤씨



3대째 내려오는 공방이라고 한다. 공방 주인장 어르신은 사극을 포함한 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에 자개 작품을 협찬해오셨단다. 최근에는 자개가 국내보다도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새삼 드라마 '킹덤'을 비롯한 한류 콘텐츠들이 빠르게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요즘의 상황이 실감 난다.


해외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해외 박람회에 출품도 하고, 외국 상점에서 구매를 위해 직접 이곳 북촌까지 방문하기도 한다고 한다. 주인 어르신은 해외에 쇼룸을 오픈할 준비를 하고 계시다고 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이렇게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어야 전통이 후대에 전수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렇지만 자개 기술 전수는 녹록지 않아서 자개공예를 할 수 있는 기술자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 공방도 가장 젊은 직원분이 60을 넘기셨다고 한다.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자개 산업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관심에 힘입어 화려한 자개처럼 자개 산업도 화려하게 부활하길 빌며 공방을 나섰다.


20190904_122704.jpg 살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던 자개 공예품. photo by_윤씨



식사를 거르고 일터로 돌아가기는 어려워서 간단히 덮밥을 한 그릇 해치웠다. 이렇게 또 여행을 마치고 나니 궂은 날씨에도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북촌'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한옥'이지만, 과거를 그대로 간직한 이 북촌이라는 마을에는 한옥만큼, 아니 그 이상 빛나는 보물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20190904_130956_1.jpg 오늘의 일정 : 민화박물관과 자개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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