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반칙이다. '엄마'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벌써 눈물이 뚝뚝이다. 무슨 내용을 쓰더라도 감성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넘치게 된다.
엄마를 깊이 사랑한다. 엄마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내게 엄마가 너무 필요해서, 엄마는 절대로 보내줄 수 없다. 이게 엄마에 대한 솔직한 감정이다.
그렇지만 이런 감상적인 마음과 별개로 엄마는 참 답답하다. 하지 말았으면 하는 행동을 하고, 해줬으면 하는 말을 해주지 않는다. 다른 모든 집단과 마찬가지로, 가족도 서로 다른 인간들이 모여서 사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도, 내게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라 해도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나와 같을 수 없다.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공연을 보러 갈 생각에 연락을 드렸다. 보통은 엄마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만, 이 날은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아 아빠와 먼저 통화를 했다. 어떤 공연인지 말씀을 드렸더니, 예전에 봤던 게 아니냐고 물으신다. 같은 제목이지만 연출이 완전히 달라서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하셔도 된다고 설명을 드렸다.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으로 엄마와 통화가 되었다. 똑같이 공연명을 알려드렸더니 대뜸, "아빠가 그거 봤다고 싫어할 거야."라고 하신다. 그래서 이번에도 똑같은 설명을 반복했다. 같은 제목이지만 다른 작품이라고. 그런데도 "아니야, 그건 알겠는데 그래도 아빠가 싫어할 거야."라고 하신다. 아빠는 좋다고 하셨다고 그래도 기어코 "아니야, 아빠가 마지못해 그러자고 했을 텐데, 보고 오면 분명 불만족스러워할 거야. 엄마가 아빠를 알잖아."란다. 이쯤 되니 속에서 울컥 화가 치솟는다.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엄마는 어떤데요? 아빠는 괜찮다고 했으니까, 아빠 신경 쓰지 말고 엄마는 보고 싶어요, 별로예요?" 되물었다. 나는 그냥 엄마 본인이 이 공연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또 보고 싶지는 않다고 했으면 알겠다고 다른 공연을 보자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아빠가 싫어할 거라는 이유로 제안을 고사하는 엄마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꼭 엄마의 의사를 확인하고 싶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엄마는 괜찮은데... 그런데 아빠가 싫어할 거야."였다.
아... 이 답답함을 어찌해야 좋을까. 나는 이게 무슨 말인지 안다. 엄마는, 꼭 뭔가 거절하고 싶을 때 아빠 핑계를 댄다. 가고 싶지 않은 식당은 아빠가 싫어할 거라고 안 가고, 놀러 가자고 해도 아빠 때문에 멀리 가기 싫다고 한다. 사실 알고 보면 아빠는 별 생각이 없으시다. 그냥 엄마가 내키지 않을 뿐이다. 그럼 그렇다고 솔직히 얘길 하면 좋을 텐데, 자식 눈치라도 보시는 건지... 대체 왜 저렇게 밖에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시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지 마시라고 해도 돌아서면 또 똑같다.
물론, 왜 그러시는지는 안다. 평생 입맛 까다로운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만 만들고, 남편이 좋아하는 곳으로만 놀러 가고, 몸이 약한 남편과 자식들만 챙기며 살았던 양반이다. 이제 와서 본인이 좋아하는 걸 먹으러 가고, 본인이 보고 싶은 걸 보러 가는 결정을 내리는 게 어색하고 불편하실 것이다.
또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 때, 본인이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보다 남편이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했을 것이다. 피곤한 자리에 있을 때, "남편이 일찍 와서 저녁 챙겨줘야 된다"라며 자리를 뜨고,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을 때 "애들 시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못 가겠네"라고 거절하는 게 "난 먼저 가볼게"나 "이번에는 좀 빠지고 싶네"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라도, 더 이상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자식의 욕심이다. 엄마가 솔직하고 당당하게 원하는 것, 또는 원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랑하는 나의 엄마가 앞으로의 인생을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고,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 있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