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나는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다. 그때 우리 집 도시락의 단골 반찬은 계란말이, 감자채 볶음, 김, 김치였다. 엄마는 늘 보온 도시락에 국이나 찌개 하나, 밥 한 공기, 반찬 두어 가지를 싸주시고는, 찬이 부족할까 걱정되어 김치와 김을 따로 싸주시곤 했다. 나는 가리는 게 많은 까탈스런 아이였고, 비위가 약해 남의 집 반찬을 먹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친구들과 나눠 먹어도 내 몫의 반찬이 부족하지 않도록 늘 넘치게 도시락을 싸주셨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되었고, 술을 배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어딘가에서 누군가와 술잔을 기울이던 그 시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음식은 삼겹살이었다. 엄마는 삼겹살을 구워 주신 적이 없었다. 그 고소하고 느끼한 기름 냄새가 참 좋았다.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기름 맛도 좋았다. 바삭하게 구워서 과자처럼 씹어 먹는 맛도 별미였다. 삼겹살과 함께라면, 평소 즐기지 않는 소주도 마실만 했다.집에 들어가기가 아쉬워서 공연히 거리를 배회하던 시절이었다.
취업을 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내가 먹는 음식의 종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일식, 양식, 중식, 한식을 두루 섭렵한 것은 물론이고 인도, 베트남, 태국, 멕시코, 그리스, 스페인, 터키, 요르단에 이르기까지 수 없이 많은 나라의 음식들을 서울 하늘 아래에서 먹고 마셨다. 삼천 원짜리 떡볶이 한 접시부터 한 끼에 십수만 원은 거뜬히 나가는 프렌치 코스까지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먹고 마시는 일은, 격무에 시달리는 내게 허락된 유일한 유희였다.
그렇게 많은 음식을 먹어치웠지만,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대번 '엄마가 만들어 준 잡채'라고 말한다.
명절에 우리 집에서는 차례를 지냈다. 전 날부터 집안에는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느끼하게 깔리는 전 냄새부터 달큼한 갈비찜 냄새, 고소한 나물 냄새... 그중에서도 나는 명절날 아침 일찍 바로 만들어 올리는 잡채가 제일 좋았다.
상 차리느라 바쁜 와중에도 잡채만큼은 꼭 당일 아침에 만든다. 미리 만들어두면 당면이 퍼져 맛이 없다. 미리 준비한 각종 재료들을 후루룩 볶아서, 간장과 설탕으로 졸인 당면과 한 데 모아 섞어 만든 잡채. 상에 올릴 것만 따로 담아두고 얼른 접시와 젓가락을 가져다가 한 접시 담아 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맛있고 귀하고 비싼 음식들을 많이 먹어도 음식은 결국 엄마이고, 어릴 적 우리 집 식탁 풍경이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어도 기억은 그 시절에 멈춰있다. 나를 오롯이 길러낸 그 손이 만들어 주던 음식들. 평생 가도 잊을 수 없을 내 인생의 음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