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울에 살며 북촌 인근에서 일을 하는 작가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짧게 떠난 여행에 관한 기록입니다. 늘 익숙하게 지나던 거리와 풍경들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오늘은 어디로 떠나볼까?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하다. 아스팔트가 지글지글 끓는 폭염 속에서 야외 일정은 무리다. 오늘도 실내 관광 계획을 짜 본다.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던 단주의 간판. photo by_윤씨
Knitting studio 단주
지난 여행지인 학고재와 프린트 베이커리 앞을 지나 쭉 가다 보면, 오래전 데이트 명소였던 삼청동의 입구가 나온다. 그 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물이 골목 안에 숨어있다. Knitting studio 단주. 높게 솟은 건물 외벽에 작게 붙어있는 글자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증맞은 간판과 귀여운 캐릭터가 마중을 한다. 간판만 보고는 전통공예 공방 같은 걸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단주는 손뜨개 공방이었다.
단주의 앙증맞은 입간판과 귀여운 캐릭터. photo by_윤씨
지금껏 봐 왔던 손뜨개 공방은 빌딩 안 쪽이나 뒤편, 혹은 지하상가의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로 뜨개실과 뜨개용품, 도안 등을 팔고, 실과 도안을 사면 기본적인 뜨개 방법을 알려주는 식이었다. 뜨개 공방을 이렇게 멋지게 차려놓은 곳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알록달록한 색실들과 손뜨개 작품들의 조화. photo by_윤씨
부푼 기대를 안고 가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온갖 소재로 뽑혀 나온 색색가지 실뭉치들이 몽글몽글 쌓여있고, 그 실을 손으로 이리저리 엮어가며 시간과 정성으로 완성시킨 작품들이 곳곳에 진열되어 있었다.
단주는 이 곳에 자리 잡은 지 벌써 7년이 지난 '니트 카페'라고 한다. 카페라는 이름을 들으면 손뜨개 작품을 감상하며 커피를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인가 싶지만, 아쉽게도 카페는 회원들에게만 열려있다.
1층의 샵 이외에는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회원들을 위한 여러 종류의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 손뜨개 수업 이외에도 요가, 서양미술사 등 각종 문화 강좌가 진행되는 모양이다. 일정 없이 한가한 주말에 여기 들러 마음에 드는 실을 골라 잡아 2층의 카페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당장이라도 가입하고픈 충동을 느꼈지만, 시간과 여건을 고려했을 때 회원가입은 언감생심 안될 말이었다. 뜨개실과 공간에 대해 직원분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는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나왔다.
삼청동 거리에선 여전히 특유의 감성이 묻어난다. photo by_윤씨
여전히 매력적인 삼청동 거리
거리로 나섰다. 날은 정말 화창하고 좋았다. 찌는 듯한 더위만 아니라면 하루 종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잠시만 서있어도 등허리를 타고 줄줄 흐르는 땀이 무서워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삼청동 거리는 과거의 영광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쇠퇴했다. 큰길가에서도 '임대문의'를 써붙인 텅 빈 1층 매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삼청동을 일부러 찾아온 여행자들에게 이 거리가 어떻게 보일까 생각하면, 비어있는 가게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지만 삼청동의 매력은 줄어들지언정 사라지지 않았다. 이 동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공기와 색깔은 여전히 거리 곳곳에서 빛나고 있다. 부디, 삼청동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를 바랐다.
'점심시간 여행'의 고충
다음 목적지는 '예지방'이다.단주에서 큰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예지방에 닿는다. 예지방은 무형문화재 옥석장이신 김영희 장인이 운영하시는 궁중 장신구 갤러리이다.
옥으로 만들어진 각종 장신구들을 둘러보며 눈 호강할 생각에 들떠 가게를 찾았는데 웬걸...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문을 연단다. 허탈했다.
아쉬움을 안고 돌아나와야 했던 예지방. photo by_윤씨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다. 장인의 갤러리라고 하면 물건을 판매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있지 않을 테니, 굳이 이른 시간부터 하루 종일 문을 열어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쉽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점심시간을 활용한 여행의 뚜렷한 한계를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점심시간은 곧 다른 이들의 점심시간인 것이다. 언제든 다시 이런 상황에 부딪힐 수 있다.
그렇지만 여행에는 또 이런 작은 실패의 경험이 함께 해야 훗날 추억거리도 생기는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다행히도 먼 길을 떠나 왔을 외국인 관광객들과는 달리 나에게는 다음 기회가 있다. 언젠가 다시 찾아오리라 마음먹으며 일정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