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휴가는 안녕하십니까?

충전되어야 할 존재로서의 인간

by 어슬

여름마다 우리는 휴가를 떠난다. 탁 트인 경관과 무더운 공기 사이로 스치는 한 줄기 바람. 도시를 벗어나는 순간 느껴지는 해방감과 휴가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 길어야 일주일 정도의 그 짧은 자유를 맛보고 모두들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간다. 골치 아픈 업무와 그 보다 더 어려운 사회생활을 좌충우돌로 돌파해 나가며 그 대가로 작고 소중한 일용할 양식을 얻는 그 자리로.


인간에게 노동이란 무엇인가. 현대사회에서 노동하는 인간이란, 기계 혹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대체재일 뿐이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은, 재화로 사용될 때에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것이 여타의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개인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자본주의 라이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 자기 노동력을 내다 팔아서 먹고사는 인간에게 휴식이란 사치의 다른 말이 되어버린다. 초과 노동이 곧 초과 수익이 되는 상황에 수익을 버리고 휴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피로하고, 지치고, 아프다. 잠을 자고 일어나도, 주말을 보내고 나도 여전히 15%만 충전되어 경고등이 깜빡이는 육신을 이끌고 다시 출근을 한다. 그런 우리에게 직장이 일 년에 한 번쯤 선심 쓰듯이 내어주는 것이 바로 '휴가'다.


언젠가부터 '재충전'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쓰인다. 어떤 경우는 '리프레시'라는 그럴듯한 단어로 대체되기도 한다. 재충전이라는 말이 주는 서늘한 느낌이 있다. 재충전은 방전된 전지 등에 전기를 다시 채워 넣는다는 뜻이다. 인간이 재충전되어야 할 존재가 되는 순간, 그것은 인간이 기계와 차이가 없어지는 순간이다.


바야흐로 로봇들이 날아다니고 인간이 우주로 진출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2020년대가 왔다. 왜 인간은 아직도 노동에서 해방되지 못했나. 왜 우리는 여전히 재충전을 목적으로 휴가를 떠나야 하는가. 왜 아직도 자유로울 수 없는가.


한 때는 노동만이 진정한 가치를 만들어내며, 불로소득은 나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불과 십수 년 만에 우리의 정서도, 나의 가치관도 많이 바뀐 듯하다. 부동산, 주식, 심지어 코인까지 광풍인 지금, 노동의 가치란 무엇일까. 땀을 흘려야만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이 절망의 다른 말이 되어버린 시대다. 모두가 불로소득을 원한다.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노동의 가치가 땅바닥에 처박힌 시대에 우리는 또 꾸역꾸역 휴가를 떠나고, 제한된 시간 동안 최대한의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다,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올여름, 당신의 휴가는 안녕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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