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에세이 #15. 유럽
처음 해외여행을 간 것은 스무 살 때였다. 당시 유행하던 유럽 배낭여행을 운 좋게 떠날 수 있었다. 서유럽 열네 개 국가를 삼십일 만에 돌아보는 살인적인 일정이었던 것 같다. 일정을 아끼느라 밤기차도 탔다.
그렇게 정신없이 돌아본 어느 나라에도 나와 같이 생긴 사람은 없었다. 그 안에서 나는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낯선 사람들에게서는 낯선 향기가 났고, 나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날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잔뜩 긴장해서 어디서든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기차에서도 가방을 팔에 걸어 꼭 끌어안고 잠을 잤다. 가방은 늘 앞으로 매고 다녔고, 전철이나 트램, 버스를 내릴 때는 혹시라도 무언가 두고 내릴까 봐 몇 번씩 뒤를 돌아봤다.
어느 거리도 내가 살던 거리와 같지 않았고, 음식도 너무 달라 적응이 안 됐다. 집에서 컵라면을 잔뜩 짊어지고 온 게 그렇게 다행일 수 없었다. 유스호스텔의 화장실 변기 높이는 너무 높았고, 심지어 화장실 냄새조차도 너무나 달랐다.
경험이라기엔 충격에 가까웠던 그 여행 후 집으로 돌아와서도, 나는 한동안 공중에 붕 떠있는 것 같았다. 유럽에 다녀온 일이 현실감이 너무 없어서 꿈을 꾼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로 서울이 낯설었다. 평범하던 나의 일상에 이질감이 들었다. 예전에는 신경도 써 본 적 없던 것들이 갑자기 불편하고 이상해 보였다.
아마 그 여행을 통해 나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의문을 품고, 다른 것을 틀리다고 치부해버리는 것에 조금 더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도, 다르게 생긴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우리는 늘 익숙한 것을 찾고 편안함과 안정을 추구하지만, 성장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낯설음이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의 세계가 충격적으로 확장되는 경험은 유럽여행이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다. 이제는 그때 보다 한참 나이를 먹었지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많은 낯선 풍경과 낯선 이들을 만나고 겪어보고 싶다. 그래서 늘 깨어있고 싶다.